[태평로] 소(牛)의 입장에서 보니

    입력 : 2008.08.06 22:05 | 수정 : 2008.08.13 13:22

    비명에 고깃감도 서러운데
    한국선 3살도 늙었다 하네

    최보식·사회부장
    여름휴가로 인도(印度)에 갔을 때, 숱한 소(牛)들을 봤다.

    차 지붕 꼭대기까지 승객들을 태운 고물버스들과 오토 릭샤(오토바이 엔진을 단 삼륜차), 군중(群衆)이 마구 뒤섞인 혼잡의 거리에서 소들도 어슬렁거렸다. 클랙슨을 빵빵거리면 소들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것이었다. 과연 소들의 천국(天國)으로 불릴 만했다.

    하지만 이 '천국'에 사는 소들은 하나같이 갈비뼈가 부챗살처럼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살집이 없어 목덜미의 가죽이 아래로 축 처졌다. 등가죽에는 온통 피부병이다. 소들은 거리에 쌓인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먹다 버린 음식찌끼와 오물 묻은 휴지를 씹어댔다.

    소를 식용(食用)으로 삼지 않는 인도에는 약 3억 마리의 소가 있고, 이 중 1억2000만 마리는 아예 주인 없이 공해와 매연, 소음 속의 거리를 떠돈다. 이런 '자유방임'을 소의 천국이라고 외지인들은 합창하지만, 당사자인 소의 견해를 들어봤을까.

    '소의 천국' 인도에서 돌아와 출근하니, 서울 도심에서는 '30개월 이상 미국 소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여전하다. 벌써부터 '전문 시위꾼'에 의한 반정부·반미시위가 됐지만, '광우병'이니 '미친소'의 간판은 그대로 달고 있다.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48억 분의 1, 길가다 벼락 맞을 확률보다 더 낮다. 아무리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도 자녀를 걱정하는 부모 마음이나, "살 날이 10년밖에 안 남았다"고 겁내는 철부지 아이들이 진정될 리 없다. 그래서 촛불 들고 몰려나왔겠지만, 소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30개월 미만의 소만 수입하라'는 시위는, 평균수명 15~20년인 소를 생후 30개월 이전에 도축하라는 뜻이다. 소의 입장에서는 단명이요, 비명횡사요, 제대로 청춘의 꽃도 피워보지 못한 요절인 셈이다. 당초 식육용(食肉用)의 소 팔자를 타고났다 해도 이렇게 명을 재촉하니 박정하기 짝이 없다. 어느 강심장의 소라도 서울 도심의 시위 장면을 본다면 벌벌 떨지 않겠는가.

    중국 고전 맹자(孟子)에도 죽으러 끌려가는 소가 나온다. 개인 식탁용이 아니라 나라 제사용으로 쓸 소였다. 그럼에도 이 장면을 목격한 제나라의 선왕(宣王)은 "소가 떨며 사지(死地)로 끌려가는 정상을 차마 볼 수 없다. 놓아주라"고 명했다. 이에 맹자가 "왕 노릇을 잘 할 수 있겠다"고 칭찬한다. 소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리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배운 사람은 한낱 가축이라도 그 죽는 꼴을 보지 못한다. 죽을 때 내지르는 비명소리를 들으면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해,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맹자 시절에는 한 마리 소의 죽음을 놓고도 '가르침'이 있었건만, 요즘 세상은 "30개월 미만의 소만 먹겠다"고 석 달 넘게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파와 이념을 떠나서도 너무 동정심이 없지 않은가.

    지금쯤이면 생명존중단체나 가축사랑모임에서 뛰쳐나와 '우리 한번 소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자'며 시위를 벌일 때가 됐다. 식단에서 쇠고기를 치우고 우리나라를 채식주의 국가로 만들자고…. 물론 세상은 결코 소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 대부분은 쇠고기 등심과 갈비맛을 잊을 수 없다. 아마 여름철이 지나면 그 시위가 언제 있었느냐며 까맣게 잊고,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헛된 낭비의 세월을 보냈는지도 잊고, 심지어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서는 안 될 것처럼 목청을 높였던 이들조차 그 쇠고기를 틀림없이 먹고 있을 것이다. 소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배신감도 없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