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BBC 방송은 시청자들에게 전화와 인터넷으로 '위대한 영국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100만 명 넘게 참여한 조사에서 1위는 처칠이었다. 그는 셰익스피어, 다윈, 뉴턴, 엘리자베스 1세, 넬슨, 크롬웰 등 영국과 세계 역사를 장식한 인물들을 따돌렸다. 설문에서 BBC가 제시한 다섯 가지 위대한 이유들 중에서 응답자들이 처칠의 위대한 점으로 가장 많이 든 것은 '리더십'이었다.
▶처칠이 두 차례 총리로 재임한 기간은 영국이 매우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그는 유럽 대륙이 점차 독일 손에 넘어가고 있던 1940년 5월 총리가 돼 존망의 기로에 선 영국을 승전으로 이끌었다. 1945년 총선에서 패배해 물러났던 그는 1951년 다시 총리로 복귀해서는 '수정 보수주의'를 통해 오늘날 영국의 기본 틀을 다졌다. 처칠이 정부와 국가를 성공으로 이끈 방식은 리더십 연구자들의 단골 연구 주제다.
▶이명박 대통령이 처칠의 외손녀가 쓴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를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했다. 처칠의 저서와 연설문, 편지, 메모, 일화 등을 통해 처칠의 리더십을 14개 항목으로 정리한 책이다. 제목은 처칠의 총리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따왔다. "제가 바칠 수 있는 것은 피와 노력, 그리고 눈물과 땀밖에 없다"는 전설적 문장도 이 연설의 일부다.
▶이 대통령은 책을 선물하면서 "직원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취임 반년 만에 큰 어려움에 직면한 이 대통령은 "굴복하지 말라" "용기를 가져라" "당당하게 맞서라" "실패를 무릅써라"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어라"는 메시지에 감명을 받은 것 같다. '돌파의 CEO 윈스턴 처칠'이라는 부제(副題)도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처칠의 리더십 바탕엔 국민의 애정이 있었다. 우편물에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영국인에게, 런던'이라고 쓰면 그에게 전달될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 굵은 시가를 물고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처칠의 모습을 영국인들은 사랑했다. 저술가 앤드류 로버츠는 히틀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비교해 처칠의 리더십을 '영감을 주는 리더십'이라고 표현했다. 청와대 직원들은 대통령이 선물한 책을 읽으며 "사람들을 감동시켜라"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라" "열린 마음을 지녀라" "실수에서 배워라"는 메시지도 유심히 새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