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제앰네스티, 초심으로 돌아가라

조선일보
  • 하태경·열린북한방송 대표
    입력 2008.07.21 23:03

    北 인권탄압은 외면하면서
    南 촛불시위 균형잃은 진단

    하태경·열린북한방송 대표
    여러 국제 인권 단체 중 국제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단체다. 이 단체는 영국 변호사 피터 베넨슨이 1961년 '업저버'지(誌)에 '잊혀진 수인들(The Forgotten Prisoners)'이라는 글을 쓰면서 시작되었다. 1970~80년대 한국의 양심수들은 크리스마스철이 되면 외국 어린이들로부터 영어로 된 격려 카드를 받은 기억이 있다. 그 덕분에 차디찬 겨울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이 활동의 주역이 바로 국제앰네스티였다. 국제앰네스티는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 개선의 친근한 벗이었다.

    그런 국제앰네스티가 돌연 쇠고기 촛불 시위 현장에 등장했다. 한국의 인권 탄압 현실을 조사하기 위해서란다. 70~80년대와 달리 이번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아직도 한국이 박정희, 전두환 시절처럼 인권 후진국인가?

    사실 국제인권단체의 존재 의의는 스스로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나라의 국민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은 70~80년대의 한국과 질적으로 다르다. 한국 정부에 여전히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충분히 자정 능력이 있다.

    한국이 충분히 자체 해결 능력이 있음은 앰네스티 조사관의 18일 보고서 초안도 재확인해 주고 있다. 보고서 총평은 "시위 참가자와 경찰 모두 상당한 자기 통제력을 보여 주었고 이는 한국 시민 사회와 법치주의의 건강함을 보여준다"고 진술하고 있다.

    사실 국제앰네스티는 인권 자정 능력이 있는 나라에 개입해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정작 자신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나라에 노력을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국제앰네스티 런던 본부에서는 대체로 1명의 분석관이 일본, 남·북한, 대만, 몽골 등 5개국을 담당한다. 사실상 한 사람이 이 5개국을 모두 담당하기는 여간 벅찬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우선순위를 잘 정하지 않으면 시간을 허비하고 아까운 생명을 놓칠 수도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5개국 중 인권 탄압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는 북한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앰네스티는 한국이나 일본 등 인권 선진국에 투여하는 노력의 10분의 1도 북한에 쏟지 않고 있다. 북한 당국에 북한 내부 인권 조사를 공식 요구한 것은 1979년에 한 번 있은 뒤로 지금까지 전혀 없었다. 국제앰네스티 홈페이지에 실린 인권 소식도 1998년 이후로 일본은 92건, 한국은 85건이지만 북한은 14건에 불과하다.

    국제앰네스티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문제보다는 일본의 사형제도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그 둘 중 무엇이 더 절박한 문제인지는 너무나 명백하다.

    굶주림을 피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보다 더 좋은 쇠고기를 먹기 위해 촛불을 드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균형감각의 상실이다. 물론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인권 문제를 담당하는 국제인권단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는 더욱 절박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의 편이 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되지 않을까?

    누구나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국제앰네스티도 그런 것 같다. 그러나 국제앰네스티가 타성에 빠지기에는 아직도 억압과 고통 속에 신음하는 민중이 너무 많다. 특히 휴전선 너머 저쪽에는 말이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앰네스티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수인들에게 카드 보내기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70~80년대 한국 양심수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수인들의 이름은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발간한 '잊혀진 이름들'에 나온다. 앰네스티가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다시 가장 고통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친근한 벗으로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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