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요즘 TV 드라마 《일지매》를 보며 전혀 영웅답지 않은 영웅의 연기에 즐거워한다. 또 오우삼 감독의 블록버스터 영화 《적벽대전》을 보면서 《삼국지》 원전(原典)의 스펙터클한 변화에 새삼 혀를 내두르고 있다.

그런데 1970년대 초입부터 정확히 2005년 4월 25일까지 우리 옆에는, 이 모든 주제 속에서, 인간적 웃음과 날랜 농담과 고전의 깊이 사이를 종횡무진 했던 작가와 그의 작품이 숨 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자신과 그가 다룬 매체는 매우 소박했던 작가가 존재했다. "고우영 스스로가 문화현상이었다"(조선일보 2005년 4월26일자)는 신문 칼럼이 타계와 동시에 터져 나왔던 한 만화가.

16일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에서 개막한 《고우영 만화: 네버엔딩 스토리》는 한국 현대 대중문화의 정신적 구조 중 일부를 형성했음에 틀림없는 고(故) 고우영(1938~2005) 선생의 회고전이다. 아니, 그의 사후(死後), 미술 영역에서 고우영의 만화 예술에 바치는 사랑과 존경의 흥미로운 헌화이다.

왜 흥미로운가? 이 전시가 소위 '회고전의 문법'이라는 것을 충실히 따르는 듯하면서도, 그 일반 문법을 벗어나는 여러 시도를 통해 '만화가 고우영 신화화하기'를 피하려는 양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시는 작가가 생전에 출판했던 수많은 만화책들, 육필 원고, 안경이나 찻잔 같은 유품을 좌대 위의 투명한 상자에 넣고 근엄한 조명 아래 전시한다. 대형 벽에는 생전 고우영의 만화와 인생에 대한 일갈이 하늘의 별자리처럼 아름답게 인용돼 있다. 그러니 "그 자체가 문화현상"이었다는 고우영이 관객의 내면에서 신화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중인 만화가 고우영의 그림.

하지만 이 회고전에서 감상자의 그런 감동과 몰입은 '즐거운 의미'로 분산된다. 예컨대 젊은 미술가 그룹이 고우영 만화의 장면들을 차용하고 각색해 만든 미술관 초입의 설치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역시 미술보다 만화가 더 재미있어"라고 낄낄댈 것이다. 그러나 미술관 2층에서 마주치는 강경구, 윤동천, 이순종, 주재환 같은 미술가들의 드로잉, 벽화, 사진작품을 보면서는 우리의 주인공을 잠깐 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전시장 구석의 임시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가루지기 리덕스》, 즉 고우영 원작의 만화 《가루지기》의 영화 버전에 대한 김홍준 감독의 새 영화가 관객의 관심을 '고우영'으로 귀환시키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렇듯 전시는 죽은 한 작가를 폐쇄된 특정 장르 속에서 금박의 우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전시 문맥 속에 여러 장치를 가설했다. 그런데 만화에서 미술로 위치를 이동시켜 보고, 원전에서 '네버엔딩'하는 재생산 스토리를 산출해보며, 미술가들의 작품과 만화가의 작품을 이미지 상으로 동거시키는 모색을 통해, 고우영의 만화는 '결코 죽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을까? 분명한 것은 고우영이 고성능 영상 매체나 현란한 영상 테크닉이 아니라 오직 텅 빈 지면과 잉크와 필선만으로 만화를 그렸다는 사실이고, 어떤 세대는 그 만화를 보면서 유년과 청년기 정신의 잔뼈를 키웠다는 사실이다. 전시는 9월 12일까지. (02)760-4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