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드럼과 대화하는 즐거움을 깨닫다

입력 2008.07.12 02:47 | 수정 2008.07.27 21:03

[조선닷컴 주말특집] 스타를 넘어서다 <제1편>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모든 이의 주목을 받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스타라 부른다. 스타의 사소한 말 한마디, 작은 행동은 대중을 울리고 웃긴다. 덕분에 많은 청소년은 스타를 꿈꾼다. 스타는 비단 대중문화 뿐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 존재한다.

누구나 별이 될 수 없기에 그들은 동경의 대상이다. 하지만 정작 스타는 외롭다고 말한다. 정상에 섰을 때 내려가야만 하는 운명을 보고 혼자 울음을 삼킨다고 고백한다. 각 분야의 최정상에 섰다가 내리막을 걸어본 스타들을 만나기로 했다. 인생을 고속(高速)주행한 이들에게 삶은 어떤 맛인지 궁금했다.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

당장 비라도 쏟아질 것 같은 한여름 오후. 경기도 분당엔 후텁지근한 열기가 넘쳤다. 만나기로 약속한 사내는 골목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헐렁한 반바지에 검은 선글라스. 그를 만나기 위해 몇 번이나 전화를 했다. 잦은 통화에 짜증이 난 건 아닐까? 눈을 마주치려 허리를 깊게 굽히지 않고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짙은 선글라스는 그의 마음을 엿보려는 시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저녁에도 검은 안경을 쓰시나요?” “누가 쳐다보는 게 싫거든요.” 사내는 얼른 돌아서서 엉거주춤하게 걸었다.

그가 운영하는 작은 술집으로 향했다. 술도 팔고 공연도 한다는 ‘버디(Buddy)’는 지하에 있다. 문을 열자 케케한 내음이 후각을 파고 든다. 커다란 드럼 하나에 테이블 여섯 개. 사내의 생계를 책임진 술집엔 단 한명의 손님도 없었다.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펜과 수첩을 꺼냈다. 그는 마실 거리를 권하는 대신, 음악을 틀었다. 심장을 두드리는 드럼 소리가 술집을 울린다. 사내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비로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천천히 조화를 이루는 기분이다. 사내는 80년대 최고의 밴드,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53)씨다.

 드럼과 대화하는 남자

주씨와의 대화는 느리게 진행됐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날씨와 사내의 느릿한 말투는 닮았다. 그는 자주 ‘그런 게 있다’고 표현했다. 주씨에게 ‘그런 것’은 남도 사투리의 ‘거시기’와 동격이다. 드럼의 의미를 물었을 때 사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연습을 오래하면 드럼과 대화를 하게 돼요. 드럼은 마음을 담아둘 공간이자 엄마 품과 같은 거예요. 아무튼 그런 게 있어요.”

주씨는 5살에 기타를 처음 만났다. 한글보다 악기를 더 빨리 배웠다. 열살 터울의 형이 기타를 가르쳤다. 형의 실력을 따라 잡기 위해 악착 같이 연습했다. 기타가 익숙해지자 베이스기타, 피아노, 드럼 순으로 섭렵했다. 그 가운데서도 드럼이 제일 좋았다.

“드럼을 치던 어느 날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졌어요. 아, 정말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자나 친구보다 더 좋았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죠? 정말 그런 게 있어요.”

당시 악기 좀 한다는 친구들은 클럽으로 모였다. 라이브음악을 하는 클럽은 신촌, 종로, 무교동, 이태원 등에 많았다. 그 곳에서 다른 악기를 다루는 친구와 합주를 했다. 묘한 재미가 있었다. 말이 아닌 음악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학교 가는 시간이 아까워 가출도 했다. 결핵도 앓았다. 그럼에도 드럼만 만나면 하루에 15시간씩 연습했다. 클럽에서 ‘드럼하면 주찬권이다’는 말이 돌았다. 그렇게 찾아 들어간 밴드가 들국화다.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이 그의 음악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스타의 순간은 짧았지만 음악의 즐거움은 길다고 말했다.

 들국화, 찰나의 추억

대한민국 음악 애호가에게 1985년은 들국화로 기억된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세계로 가는 기차’ ‘축복합니다’의 선율이 흐르면 팬들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영광의 순간을 함께 한 사내에게 들국화는 어떻게 기억될까.

“우리가 스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어. 그냥 음악할 만큼 돈도 주고, 매일 공연이 있으니까 기분 좋았지. 팬들이라고 알아봐주고 소리쳐주면 그게 더 신기했다니까.”

그는 어느새 말을 놓고 있었다. 들국화라는 이름 만으로 사내의 어깨는 으쓱해 보였다. “라이브공연도 음반으로 내고, 재벌 집 아들도 술 먹자고 찾아오고. TV 광고모델 제의도 받고. 모든 게 신기했어.”

영광은 길지 않았다. 출연료는 매니저가 가로챘다. 1집 이후 음반은 줄줄이 실패했다. TV 광고모델 출연은 무산됐다. 긴 머리카락을 잘라야 한다는 조건을 거절한 때문이다.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다시 배고픈 생활이 시작됐다.

 음악 위해 룸싸롱도 나갔다

음악에 대한 사내의 애틋한 열정이 가슴에 와닿았다. 문득 그가 꿈을 쫓는 동안 당연히 외면 받았을 가족이 궁금해졌다. 느리고 솔직했던 주씨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그는 질문의 요점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대답했다. 그의 곁을 떠난 아내에 대해 물었다. 사내는 다른 대답을 했다. 그럼 아이들은 아버지를 이해했을까. 역시 말을 돌렸다. 그래서 직설적으로 물었다. “혼자 좋아하는 음악한다고 가족 모두 굶긴 건 사실 아닌가요?” 사내가 머뭇거렸다. 검은 선글라스 저편, 흔들리는 눈동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먹고 살려니 다른 일을 해야하는데. 음악 밖에 아는 게 없으니까. 룸싸롱에 가서 기타도 치고, 캬바레 가서 베이스도 연주했어.”

아니, 천하의 들국화가 강남 룸싸롱에서 연주를 했다고? 그것도 만취한 손님을 위한 연주라니. “그래도 감사한 일이야. 난 팔, 다리 모두 성해서 기타도 치고 드럼도 두드리니까. 그럼 됐어, 음악만 할 수 있으면.” 이제 아이들도 아버지를 이해한다고 했다. 최근 발매한 그의 6집 음반 디자인은 대학생인 딸이 맡았다. 그가 눈을 돌린 사이. 탁자 밑에서 조용히 박수를 쳤다.

 나는 늙지 않았다

사내는 홍대에 자주 나간다. 젊은 음악인의 연주를 듣기 위해서다. 그들도 주씨처럼 음악에 빠져 살고 있을 것이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후배들의 음악을 들으면 행복하다고 했다. “그럼, 이제 후배를 양성할 생각이시군요?” 사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아직 안 늙었어. 젊은 애들하고 붙어도 자신 있다니까. 피아(PIA), 서울전자음악단 이런 애들 연주 죽이거든. 그런 음악 들으면서 연습 더해야지, 쟤들하고 붙어서 꼭 이겨야지, 그렇게 다짐한다고.”

인터뷰를 마칠 무렵. 사내는 새로운 밴드를 결성했다고 자랑했다. ‘들국화’의 주찬권, ‘신촌블루스’의 엄인호,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 밴드의 이름은 ‘빅(Big) 3’다. 락, 블루스, 펑크를 모두 모은 음반은 9월쯤 발매할 예정이다. 그럼, 이제 들국화는 영원히 사라진 것일까. “전인권 형이 곧 (감옥에서) 나오니까. 그때 다시 모일 수도 있고. 우리는 함께 모여 음악을 하는 게 좋은 사람들이니까.”

마지막으로 음악을 하려는 젊은 친구들에게 한마디 남겨달라고 했다. 그는 길게 말했는데 좀 줄이자면 이렇다. “음악은 있지, 끝내주는 거야. 음악을 하다 보면 최고로 좋아. 배고파도 음악은 해야만 하는 거야. 음악 속엔 정말 그런 게 있다니까.”

사내는 이밖에도 전인권을 사랑한 여배우와 담배보다 못하다는 대마초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자세히 풀어쓰지 않기로 했다. 다만 주씨와의 만남이 너무 흥겨워서 인터뷰를 마친 뒤 한번 더 그를 찾아갔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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