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PD연합회·한겨레의 '말바꾸기'

조선일보
  • 성호철 기자
    입력 2008.07.11 03:18

    3년전 PD수첩 광고중단 땐 "언론자유 억압" 이번 본지 등 광고주 협박엔 "소비자 운동"

    "광고주들에게 협박함으로써 해당 프로그램에 광고를 하지 못하게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민주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될 폭력이다."

    국내 3대 메이저 신문사에 대한 네티즌의 광고주 탄압 사태가 일어나는 요즘, 윗글을 언뜻 보면 조선일보가 발표했을 법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한국PD연합회가 지난 2005년 11월 '진실만이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는 이름으로 낸 성명서의 일부입니다. 한국PD연합회는 방송사 PD협회들이 연합한 이익 단체입니다. 한국PD연합회가 성명서를 냈던 배경은 이렇습니다.

    MBC PD수첩은 2005년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 편을 방송했습니다. 당시 네티즌들은 MBC PD수첩이 반(反) 국익적인 보도를 했다며 분노했고, 결국 PD수첩의 광고주 리스트를 인터넷에 올리고 일제히 광고주에게 항의 전화를 했습니다. 'PD수첩에 광고하지 말라'는 게 네티즌의 압박이었습니다.

    PD연합회뿐만 아니라, 소위 '진보' 성향이라는 시민단체부터 신문·인터넷매체, 그리고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당시 네티즌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군중이 광고주 탄압 방식으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당시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사무총장이던 최민희씨는 한 토론회에서 "'PD수첩'에 광고주 전체가 떨어져 나가는 상황을 언론이 견제하지 못하면, 결국 다른 언론에도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최씨는 이후에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까지 역임한 친(親) 노무현 정권 인사입니다.

    진중권 중앙대학교 겸임교수도 당시에는 PD수첩의 광고 불매 운동을 70년대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에 빗대며 비판했습니다.

    노무현 전(前) 대통령도 당시 "(PD수첩에) 광고가 줄줄이 취소된다는 소식에 가슴이 답답해진다…이는 도를 넘은 것으로, 저항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적 공포가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겨레신문이나 미디어오늘 같은 매체들도 한결같이 네티즌을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사건이 2008년에 벌어지자,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장을 뒤집었습니다.

    양승동 PD연합회장은 "광고 불매 운동은 독자인 소비자의 주권이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충분히 권리가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민언련은 지난달 20일 논평에서 "누리꾼들의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이 강력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지금보다 더 강력한 언론소비자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누리꾼들이 익명성에 기대, 감정적 민족주의를 분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던 한겨레신문은 지금은 '광고불매운동 = 소비자 운동'이라며 드러내놓고 이를 부추기는 현실입니다.

    야당이 된 민주당은 최근 네티즌의 광고주 압박을 '자유로운 의사표현'으로 규정하고 '이를 정부가 탄압해선 안 된다'고 브리핑에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진중권 교수는 광고주 협박을 오히려 '네티즌의 집단지성'이라며 칭송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왜 입장이 바뀌었을까요?

    2005년에는 네티즌의 광고주 탄압을 받았던 대상이 자신들의 '친구'인 'PD수첩'이어서 그토록 옹호했던 것일까요? 그러면 지금 광고주 협박 전화를 소비자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까닭은 단지 조선일보가 싫기 때문일까요?

    아무래도 입장이 정반대로 바뀐 게 찜찜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MBC는 지난 5일 밤 시사 보도프로그램인 '뉴스 후'에서 "조선일보 등이 지난 2005년 자사의 PD수첩 광고주 탄압 때 이를 부추겼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만 말을 바꾼 게 아니라, 당신들도 마찬가지 아니냐? 오십보 백보다'란 말을 하고 싶었던가 봅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당시 MBC PD수첩에서 광고가 떨어져가는 과정을 보며 칼럼을 통해 이를 비판했습니다.

    "네티즌들은 PD수첩에 광고하는 업체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하고, 광고주들에게는 광고중단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내 생각과 다르면 적'이라며 융단 폭격을 퍼붓는 것은 넓게 보면, 언론의 자유에 관한 중대한 압박이다. 젊은 네티즌들의 목소리는 그 세대들이 배척해 왔던 전체주의의 목소리를 닮아있는 것 같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아버리는 건, 슬픈 일이다."(2005년 11월 27일자 본지 기자수첩)

    김사승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결국은 똑같은 사례인데 자신들의 지향성에 따라 명분을 붙이다 보니 자기모순에 빠진 것이다"라고 일부 매체들의 말 바꾸기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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