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바꿀 수 있는 정책, 바꿀 수 없는 정책

조선일보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입력 2008.07.02 22:20 | 수정 2008.07.02 23:00

    환율·이자율 같은 정책은 상황따라 바꾸는게 맞지만
    대운하·FTA·민영화 정책은 문제 생기면 돌이킬 수 없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계속되는 물가상승의 압력 속에서 정부가 고환율 정책(즉, 원화 저평가 정책)을 포기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맞는 결정이라고 본다.

    그러나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고환율 정책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고환율 정책을 통해 원화의 가치가 낮아지면, 수입 물가는 오르지만 수출은 늘어난다. 지금 국제수지가 적자이므로 도리어 원화가치를 더 낮추어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 국제수지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맞다고 볼 수도 있다. 김영삼 정부가 지나친 저환율을 추구하여 국제수지 적자를 악화시켜 외환위기를 가져오는 데 일조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지금은 물가상승의 압력이 주로 국외에서 오는 상황인지라, 고환율 정책을 쓰면 물가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 그리고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여 년간 계속 (필자의 견해로는 지나치게 많은) 무역흑자를 내서 외환보유고를 많이 쌓아 놓았기 때문에, 원화가치 절상으로 무역적자가 좀 늘어도 괜찮은 상황이다. 다시 말해, 지금 원화를 평가절상해도 외환보유고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고 물가 억제 효과는 크므로 지금은 그것이 더 나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상황이 바뀌면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 만일 국제수지 적자가 계속 쌓여 외환보유고가 위험 수준 이하로 내려가게 되면 다시 고환율 정책을 써서 원화가치를 내리는 것이 맞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경제정책에는 정답이 없다. 위에서 든 환율 정책의 예에서와 같이, 어떤 정책이 더 좋은 정책이냐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시점에서도, 보는 견해에 따라서는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나름대로 견해가 있지만, 꼭 본인의 생각이 맞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필요에 따라 바꾸기가 쉬운 정책이 있고, 한번 실행하면 바꾸기가 어려운 정책이 있으며, 바꾸기 어려운 정책일수록 더 신중하게 판단하여 실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환율, 이자율, 재정지출 등 거시경제에 관련된 정책은 고치기가 쉽다. 이렇게 가역성이 높은 정책의 경우에는, 약간의 판단 착오가 있거나 성급한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다. 정책 방향을 바꾸거나 그 강도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한 번 채택하면 바꾸기 어려운, 비가역성(非可逆性)이 높은 정책들이 있다. 경제와 사회의 구조를 크게 바꾸어 놓거나 국제적 조약에 걸려 있어서, 나중에 문제가 생겨서 돌이키려 해도 불가능한 정책들이다.

    비가역성이 높은 정책의 가장 좋은 예는, 현 정부가 추진하려 했던 대운하일 것이다. 한 번 운하를 파면, 나중에 문제가 생겨 다시 메우려고 해도 메울 수 없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한-미, 그리고 한-EU 자유무역 협정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19세기 유럽에는 20년짜리 시한부 자유무역 협정들도 있었지만, 지금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 협정들은 영구협정으로, 한 번 맺으면 외교관계를 끊을 것을 각오하기 전에는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없는 것들이다.

    민영화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반대여론에 부닥쳐 주춤하고는 있지만, 전기·수도·철도·의료보험 등 민영화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산업들은 그 성질상 민영이 잘 맞지 않는 산업들이며, 민영화를 하더라도 엄격하게 규제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산업들이다. 한번 민영화하면, 문제가 생겨도 다시 국유화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산업들의 민영화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비가역성이 높은 정책일수록 그 효과를 잘 따지고 신중하게 판단하며 확실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서 실행해야 한다. 물론 필요한 평가와 토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몇 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민영화 몇 년 늦게 한다고, 자유무역 협정 몇 년 늦게 맺는다고 당장 큰일 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두르다가 민영화해서는 안 될 기업을 민영화한다거나, 시기상조인 자유무역 협정을 맺는다거나, 파서는 안 될 운하를 판다면 그 결과는 돌이킬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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