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줄짜리 시 하이쿠는 첫 느낌이 강렬해요. 하지만 금방 클리셰(clich�)가 되는 단점이 있지요. 반면, 시조는 하이쿠보다 내용이 풍성해요. 3장 4음보라는 독특한 형식미도 갖췄고요. 매력적인 정형시입니다."
하이쿠는 미국과 유럽에서 초등학생들이 참가하는 창작 대회가 열릴 만큼 이미 널리 알려진 일본 시 문학의 대표 아이콘이다. 세계 무대에서 한참 앞서 달리고 있는 하이쿠와 달리, 우리의 시조는 이제 막 세계화의 첫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28일 오후 강원도 백담사 만해마을에서는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이 시작됐다. 미국·영국·독일 등에서 아시아문학과 한국문학을 전공하는 벽안의 문학도들을 초청해 우리의 전통 정형시인 시조를 낭송하고, 영어로 시조를 짓는 문학축제가 열렸다. 서울대와 국제교류진흥회(ICF)가 공동주최한 이 축제는 25일부터 7월 1일까지 서울대와 만해마을을 오가며 열리는 '한국문학번역 워크숍'의 중요행사로 마련됐다.
데이비드 매캔(McCann) 미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장, 브루스 풀턴(Fulton)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교수 등 미국과 캐나다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와 학생들, 서울대에서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석·박사 과정 연구자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승려 시인 조오현의 2007년도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인 〈아득한 성자〉와 홍성란 시인의 대표작인 〈명자꽃〉 등 시조 10여편을 영·한 동시 낭송으로 감상하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홍 시인이 육성으로 우리 시조를 낭송하면, 매캔 소장이 이를 영어로 번역해 들려주는 방식이다. 매캔 교수는 "단순한 의미 번역이 아니라 시조의 초·중·종 3장 형식과 3·4조 음수율을 영어로 지켰다"며, "영시를 라임(rhyme·압운)이 아닌 음절(syllable) 수에 맞춰 시조 형식으로 창작하는 영시조(English Sijo)가 현재 미국 시단에도 소개돼 있다"고 말했다. 매캔 교수는 지난해 미국에서 한국문학 전문 연간 문예지인 《진달래꽃》(Azal ea)을 창간하며 한국 현대문학의 소개에 힘써온 학자다. 그는 올해 초 《Urban Temple》(도시의 사찰)이라는 영시조집을 발표하며 시조를 일본의 하이쿠처럼 미국문학에 접목시키기 위한 노력도 함께 기울이고 있다. 그는 또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영시조 창작(English Sijo W riting)이라는 강의도 개설해 가르치고 있다.
주말 만해마을 시조축제의 주인공은 외국인 청중들이었다. 독일에서 온 기테 조흐(Zschoch)씨는 "시조 낭송을 들어보니 이 정형시는 언어의 음악성을 강조하는 시 형식 같다"고 말했다. 런던대에서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영국인 벤 잭슨(Jackson)씨는 "정미경의 이상문학상 수상작 〈밤이여 나뉘어라〉를 영어로 번역했다. 시조는 처음이다. 한국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을 기회가 되면 영국 시단에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 시인의 시조 낭송에 이어진 영시조 강의시간에서 매캔 교수는 "하이쿠는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막연하게라도 일본문학을 친숙하게 느낀다. 시조가 미국 교과서에 실린다면 한국문학의 미국 진출에 훨씬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