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좋으냐, 아니면 편안하게 사는 것이 좋으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여유가 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잘사는 것을 택할 것이고 좀 살 만한 사람들은 편안한 삶을 원하리란 것이 상식적인 답이다. 그러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세계 12~13위권의 경제대국이고 OECD 멤버인 한국의 사람들은 이제는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환경에 더 비중을 두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그냥 사는 것보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더 중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2008년 6월 대한민국 사람들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미국 쇠고기' 때문에 자고 깨면 '촛불'이요 하루 종일 '이명박 out'이고, 온 광화문과 시청 앞이 매일 밤 전쟁터요 해방구로 둔갑하니 마음 편히 하루를 보낼 사람이 있을 리 없다. 한국의 심장부가 이 모양이니 나라 곳곳 어디엔들 그늘이 없을 수 없다.
쇠고기야말로 잘 먹고 잘사는 척도의 최상위 기준이니 우리로서도 몇 십 년 전이라면 생판 남의 이야기였을 것이고 무슨 세계 토픽 뉴스라도 듣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위정자들은 그 사이의 변화를 몰랐다. 위정자들은 흔히 국민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은 다 자신들 덕분이라는 착각과 자만심에 살아왔기에 국민이 이 마당에 무엇을 원하게 됐는지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는 대로 먹을 것이지…"라는 심리 상태에 안주해 온 경향이 있다.
그러면 국민들은 스스로 변화한 것을 인식했을까? 적어도 지난 40여 일 광화문에서는 그것을 느낄 수 없었다. 시위는 법이 정한 바대로 시민의 권리다. 정부에 대해, 권력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알리고 자신들의 권익을 지켜줄 것을 요구하는 의사의 집단적 표시다. 그리고 그런 주장과 의사표시는 또다시 다른 시민 집단과 이해관계자의 객관적 검증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당신들 주장은 충분히 말하되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 시위의 요체다.
그렇다. 시위의 요구가 반드시 실현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대로 피해자요 낙오자요 반대자로만 남지 않는다. 선거라는 것이 그것을 바로잡아 주는 기회이자 무기다. 선거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절체절명의 문제라면 중간에 국민의 의사를 전하는 헌법상 제도가 있다(탄핵, 국민투표 등).
이것이 법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승인해 준 헌법의 절차다. 차라리 그 길로 가는 것이 법에 맞는다. 그러지 않고 한 달이 넘게 매일 밤 거리로 몰려나와 뽑은 지 3개월도 안 되는 정권을 물러나라고 하는, 그것도 폭력적 방법으로 무법천지를 연출하는 것은 위정자 못지않게 국민도 변화를 모르는 소치다. 어느새 우리가 세계 토픽 뉴스감이 되고 있다.
광화문과 시청을 오가는 사람은 다 안다. 허구한 날 크고 작은 집회와 시위가 끊인 적이 거의 없었다. 확성기를 틀어대고 노래를 불러대고 깃발을 흔들어대는 불평불만의 세계가 왜 이렇게 많다는 것인지…. 이제는 너무 많고 흔해서 누구 하나 귀담아 듣고 눈여겨보는 시민이 드물다. 물론 법의 규정을 지키는 시위대는 별로 없었고 오로지 떼와 정서만 난무한 경우도 많았다. 지난 40여 일 쇠고기 데모는 그 모든 데모의 정상에 있었다. 더구나 작금의 데모는 쇠고기로부터 크게 변질돼 더 이상 쇠고기 데모도 촛불 시위도 아닌 것이 되었다.
이제 그만 우리도 좀 편안히 살자. 세계를 다녀 보면 우리만큼 사는 나라치고 우리처럼 시끄럽고 불만투성이이고 절차를 무시하는 나라도 찾아보기 힘들다. 저마다 생업에 매달려 어렵게 살아가는 나라들이라도 마음만은 편안히 살고자 하는 나라가 더 많다.
새 정권에 문제가 있지만, 그리고 아무리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고 해도 자기 국민이 병에 걸릴 수 있는 것을 먹게 내버려 둘 위정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져 보자. 일단 위정자의 약속을 지켜보기로 하고 점차 불순화돼 가는 시위와 거리를 두자.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자. 그러지 않아도 고환율, 고유가, 원자재 품귀, 세계 금융불안 등 우리를 옥죌 여러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어 그나마 고달파질 일상이지만 이제 '쇠고기'에서만은 한 단계 고비를 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