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무기한(無期限) 금지된다. 미국은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출한다는 것을 정부 차원에서 보증하는 방안으로 농무부 품질시스템평가(QSA)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로 했다. QSA 프로그램은 미국 육류업체들이 자발적으로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한국에 수출하는 생산프로그램을 마련하면, 미국 정부가 이 프로그램이 제대로 운영되는지 점검하고 인증하는 제도다. 미국의 수출검역증에 '한국 QSA에 따라 생산된 쇠고기'라는 내용이 명시되지 않은 물량은 모두 돌려보내게 된다.
한국과 미국이 지난 13~19일 쇠고기 추가협상을 통해 합의한 내용이다. 두 나라 정부는 또 30개월 미만 쇠고기에 대해서도 머리뼈·뇌·눈·척수 등 4개 부위를 수출입 금지품목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원래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기준에 따라 소장(小腸) 끝부분과 편도 2개 부위만 수입금지 품목이었다. 쇠고기 수출 기준을 제대로 지키는지 의심되는 미국 내 작업장을 우리 정부가 지정해 점검하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작업장에 대해 우리가 수출 중단을 요청하면 미국은 반드시 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이번 추가협상에서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사실상 무기한 수입금지할 수 있게 되고,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보증을 받아내고, 수입금지 부위를 늘리고, 우리 정부의 검역 권한이 강화된 것은 상당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 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자체 평가에 국민이 얼마나 동의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등뼈가 들어간 티본스테이크나 곱창·막창·대창 등 내장 부위가 수입 금지 품목에 포함되지 않은 데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국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와 한나라당이 이번 쇠고기 추가협상에 따른 새 수입위생조건 고시(告示)를 서두르지 않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국민이 불안해하는 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이 형성됐을 때 검역절차를 시작할 것"이라며 "고시 게재 절차도 국민이 진정될 때까지 유보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미국 쇠고기 수입문제를 두고 재협상이나 또 다른 추가협상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4월 18일 쇠고기협상 타결 이후 이미 두 차례나 추가협상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국제 통상협상에서 한국의 대외 신인도(信認度)가 크게 떨어지게 됐다. 그래서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자동차분야에 대한 추가협상을 요구하고 나설 경우 우리가 이를 거절할 명분이 약해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다면 국익(國益)에 심각한 손상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국민이 가장 불안해하는 문제는 자신이 사먹는 쇠고기가 한우인지 미국산인지, 호주산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 쇠고기를 원하지 않는데 학교나 회사 식당에서 자기도 모르게 미국 쇠고기를 먹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과의 협상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선 국민에게 미국과의 추가협상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설명하고 국익을 강조하며 이해를 구해도 먹혀들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이런 국민의 불안을 진정시킬 수 있는 실질적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원산지 표시를 속이는 정육점이나 식당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도록 하고, 쇠고기 수입업계가 정부에 제안한 '유통이력제'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어느 수입업체가 미국의 어느 수출업체로부터 들여온 쇠고기를 국내 어느 정육점·식당에 팔았는지를 세밀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쇠고기 고시'는 국민이 납득할 만한 보완조치를 충분히 내놓은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입력 2008.06.22. 22:09업데이트 2008.06.2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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