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Why?] 신채호 선생은 왜 60년 넘게 무국적이었나

    입력 : 2008.06.20 16:11 | 수정 : 2008.06.21 14:38

    과천 서울대공원 앞에 세워져 있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동상.

    단재(丹齋) 신채호, 석주(石洲) 이상룡, 여천(汝千) 홍범도, 부재(溥齋) 이상설, 노은(蘆隱) 김규식 선생 등 무국적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본지 6월 16일자 보도)

    국가보훈처는 일제의 호적 등재를 거부해 국적이 사라진 독립운동가들이 '가족관계등록부(옛 호적부)'에 등재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에 한해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가족관계 등록부에 등재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한다는 것이다.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광복 후 60년이 넘도록 왜 무국적자였을까.

    왜 이런 일이

    일제는 1912년 조선 통치를 위해 새 민법인 '조선민사령'을 공포했다. 이에 따라 그간의 족보가 모두 무시됐고 조선인은 호주와 가족사항을 새로 신고해야 했다. 단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일제가 만든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며 신고를 거부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국적부를 따로 두지 않고, 호적에 등재된 사람에게 모두 대한민국의 국적을 부여했다. 호적 없는 독립운동가들이 무국적이 된 것이다. 이런 무국적·무호적 독립운동가는 200~300여 명으로 추정된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부 역시 생존자이면서 대한민국 국적자여야만 등재할 수 있다. 이미 사망한 독립유공자들이 등록부를 만들 수 없게 된 것이다.

    "독립유공자를 어떻게…"

    단재의 며느리인 이덕남(64)씨는 16일 "나라에서 진작 했어야 할 일을 뒤늦게 하고 있다"며 "17대 국회에서도 국적법 개정안이 발의됐다가 법조계 반대로 무산된 전례가 있어 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서거한 분이라는 이유로 독립유공자의 국적을 회복시켜 주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자기 나라 독립을 위해 생명을 바친 순국선열에 대한 당연한 예우 아니냐"며 "일제 때 쓰던 호적법을 광복 이후 그대로 쓰면서 이분들의 국적을 회복시켜 주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1936년 숨진 신채호 선생이 국적도, 호적도 없었기 때문에 유족들은 법원을 수시로 들락거려야 했다. 신채호 선생의 후손은 외가 호적에 이름을 올린 채 살다 대법원 청원을 통해 '신채호'라는 이름 석 자를 아들 신수범(1991년 사망)씨 호적에 올릴 수 있었다.

    무국적이냐 아니냐

    국회에서는 2005년 8월 여·야 의원 38명이 '우리 민족으로서 일본제국주의 통치시대에 무국적 상태로 있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에 사망한 자는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자로 본다'는 내용의 국적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관련법 3개를 내놓았지만 해를 넘겨 자동 폐기됐다.

    당시 법무부는 "1910년 한일강제합방조약이 국제법상 무효이므로 이때 만든 조선민사령을 근거로 국적과 호적이 없다는 주장은 무리"라는 입장을 보였었다. "무국적자라 하더라도 사망한 사람에게 소급해서 국적을 부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덕남씨는 "호적이라는 건 그 사람에 대한 강력한 증빙자료가 되는 건데 신채호 선생은 호적이 없으니 증빙할 자료조차 없다"며 "이 어른이 호주가 돼 아들에게 호주 승계를 해주고 우리 아이가 다시 호주가 되는 계통을 정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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