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동아리에서 많이 읽는 책 중에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가 있다. 작년 여름 이래 스테디셀러가 됐고, 일부 교수는 숙제나 토론용 교재로 채택했다.
88만원이란 20대 비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을 상징하는 숫자다. '20대여, 토플 책을 덮고…짱돌(큰 자갈돌)을 들어라'는 타이틀이 도발적이다.
저자들은 '40대와 50대가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고 있다'고 불평하고, '바늘구멍만한 생존 기회를 기성세대가 틀어쥐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치 세대 간 전쟁의 선전포고 같다.
이 책이 그 또래에서 화제인 이유는 공감(共感)시장의 바닥이 단단하기 때문이다. 현재 20대 근로자의 절반은 비정규직이고, 20대 초반의 경우 3명 중 2명이 비정규직이다.
이번 쇠고기 사태에서 기성(旣成)세대는 88만원짜리 인생들, 특히 그 예비군 격인 10대 중·고교생들의 여론 형성 방식과 번개미팅식 행동을 신기한 눈으로 목격했다.
일부 세력은 그 세대의 직접 민주주의 욕구를 극찬하며 다른 꿍꿍이를 챙겼고, 길거리 투쟁의 짜릿함을 그들과 함께하려는 부류들은 그들 곁에서 스피커 볼륨을 다투었다. 하지만 몇몇 구호에서는 공명(共鳴)하면서도, 바로 얼마 전까지 청와대에서 울려 퍼졌던 운동권 노래마저 한두 소절 만에 중단되며 화학적인 융합까지는 발전되지 못하는 거리를 느껴야만 했다.
또 다른 세력은 무절제한 괴담 살포와 배틀로열(모두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게임)식의 무차별 인신 공격에 분노하며, 이제 더 이상 그 세대에 밀리지 말고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어금니를 악물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 달 넘게 수십만 명을 서울 한복판에 집결시킨 능력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 세력의 고민은 "위대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다. 그러나 본질은 끔찍한…"이라고 말한 작가 이문열의 발언 속에 녹아들어 있다.
집권 보수세력은 그러나 그저 이 철부지 세대에 어떻게 반격할 것인가만을 고민해서는 안 된다. 쇠고기 사태는 이 '위대한, 그러나 끔찍한' 세대를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세대의 불행은 88만원짜리 인생이 이 시대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그들의 비극은 미래형이어서 더욱 처절한지 모른다.
인구 구조만 봐도 그렇다.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는 8, 9년 후부터 돈벌이 하려고 일하는 사람 숫자(생산 인구)가 저절로 줄어들게 되어 있다. 이어 이르면 2020년, 늦어도 2024년부터 총인구가 감소, 40년 후쯤엔 '5천만 동포'가 아니라 '4천만 동포'로 바뀐다.
그 세대가 나라의 중추집단이 되는 30년 후부터 문제는 심각해진다. 어느 일본 연구소의 분석으로는 2040년경부터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제로 수준으로 하락하는 반면, 노인 부양 비율은 전 세계 랭킹 3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일하지 않고 얻어먹고 사는 몸(종속인구)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얘기다.
그 세대는 한창 벌어 노년을 준비해야 할 중년에도 자녀뿐만 아니라, 부모세대 부양에 뭉칫돈을 써야 하는 기구한 팔자라고 할 수 있다.
인구 구조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40대, 50대, 60대가 물려줄 악성 부채 또한 만만치 않다.
건강보험은 이미 적자여서 다음 세대는 해마다 세금을 더 내서 부모 세대의 병원비를 대줘야 한다. 국민연금은 이대로 가면 35년 후부터 적자를 내고 2060년에는 바닥난다(KDI 추정). 꼬박꼬박 불입금 내고서 그 세대가 정작 연금을 받을 때가 되면 깡통 계좌가 된다는 말이다.
골칫거리 베이비 붐 세대를 떠맡을 그 세대는 알바나 파견사원으로 평생을 보낼지 모른다는 절망감에 싸여 있다. 이 얼마나 끔찍한 미래인가.
그 세대는 386들까지 기득권층으로 몰아세우고, 심지어 코미디 시장에서 유재석 김재동 강호동 같은 30대가 독점한 채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고 흥분하기도 한다. 그들의 촛불이 언제 횃불이 되고, 이어 짱돌과 화염병으로 변할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좌파든 우파든, 진보든 보수든 기성세대라면 철부지로 보이는 이 세대의 현재뿐만 아니라, 30년 후를 봐야 한다. 여기에는 반미(反美)도 의미 없고, 이념도 필요 없다.
어떻게든 악성 부채를 떠넘기지 말아야 하고, 먹고살 만한 경제 기반을 넘겨야 한다는 의무감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