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이명박 정권의 최후 방어선

조선일보
  • 복거일·소설가
    입력 2008.06.11 22:35 | 수정 2008.06.12 09:23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法의 권위 훼손시켜선 안돼
    정치적 목숨 바칠 각오로 法 수호의 마지노선에 서야

    복거일·소설가

    지금 이명박 정권은 점점 늘어나는 적군에 둘러싸였다. 한번 포위되면 조직적 후퇴가 어렵고 자칫하면 패주(敗走)가 된다. 따라서 포위된 부대의 지휘관은 좋은 방어선을 잡아 군대를 추슬러야 한다.

    정권이 고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어선은 법이다. 법을 시행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자연히 법의 권위를 지키는 것은 정권에 큰 자산이 되며 조금도 짐이 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을 선선히 인정하고 시민들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법의 권위는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지켰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정반대로 행동해 왔다. 자신들의 잘못들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했지만, 법의 권위는 헤프게 허물었다.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마다 법을 가볍게 어기는 세력에 대한 유화책이었다. 의도적으로 편향된 보도를 한 방송에 대해선 지금껏 책임을 묻지 않았다. 시위대에 맞은 경찰들은 하소연할 데가 없지만, 수만 명이 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누가 다치면 경찰에 책임을 묻기 바쁘다.

    한나라당이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고소·고발을 모두 취하한 일은 그런 유화적 태도를 상징한다. 우파 후보에 대한 비방은 이미 1997년과 2002년의 대통령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선거 뒤에 거짓으로 밝혀져도, 그런 비방의 효과를 소급해서 배제할 길은 없다. 따라서 상대 후보를 비방한 사람들을 재판에 회부하는 일은 그저 정의를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치의 발전에도 긴요하다.

    한나라당의 유화책은 정치적으로도 어리석다. 유화책은 늘 상대의 협력이 아니라 경멸을 부른다. 통합민주당은 이내 한나라당이 무고(誣告)했다면서 거꾸로 사과를 요구했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많이 잃었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행적으로 도덕적 권위를 잃었고, 조각(組閣)과 공천에서의 실책으로 정치적 권위를 잃었다. '이념 대신 실용'이라는 구호를 내걸어서 자유주의자들의 마음을 잃었다. '한반도 대운하'나 '작은 정부'와 같은 의제들을 추진할 힘도 사라졌다. 이제 이 대통령은 더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의 과감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다수 시민들에게 버림받은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 자신의 자리에 대한 위협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법의 권위가 훼손되도록 하는 것은 진정한 실패다. 위대한 보수주의자 골드워터(Barry Goldwater·1964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말대로,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온건한 것은 미덕이 아니다.(Moderation in the pursuit of justice is no virtue.)"

    대통령은 시위대에 매맞는 경찰들 뒤에 숨을 수 없다. 민심을 듣는다며 사람들을 청와대에 불러들이는 몸짓을 그만두고, 법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에 자식뻘 되는 경찰들과 함께 서야 한다. "차라리 맞아라"라는 기막힌 명령을 받은 그들과 함께 서야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정치적 책임이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울 것 아닌가? 시위대에 맞는 의경 아들을 붙잡고 눈물 흘리는 어머니와 함께 속으로 울어야 시민들의 속을 꺼멓게 만든 도덕적 책임이 조금이라도 씻길 것 아닌가?

    대통령은 거기 서야 한다. 그리고 치켜들어야 한다. 어떤 목적도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자유주의의 원리를. 운(運)이 닿으면 거친 군중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운이 다했으면 거기서 정치적 삶을 마감하면 된다. 법의 권위를 지키는 자리보다 지도자가 정치적 목숨을 바치기 더 좋은 곳이 어디 있으랴?

    아마도 그 언저리에 기사회생의 계기가 있으리라. 원래 포위는 우군과 협력해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다. 대통령이 힘들게 법의 권위를 지키는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키려 애써온 시민들이 어떻게 외면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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