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4시 서울서부지법 305호 법정.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모(75·여)씨의 가족들이 어머니에게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며 병원을 상대로 낸 가처분신청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려 찬반 논란이 시작됐다.〈5월10일자 A8면〉

"환자의 평소 뜻에 따라 자연 수명(壽命)만 누리고 의미 없는 치료는 받지 않을 권리를 인정해 주십시오."(김씨 가족측)

"보라매병원 사건처럼 의사들이 치료를 포기하면 살인 방조죄로 처벌받도록 돼 있는 현행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인정할 수 없습니다."(병원측)

사건의 핵심은 환자가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맞을 권리, 이른바 '존엄사(尊嚴死)' 혹은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할지 여부다. 현행 형법은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은 살인 혹은 살인방조죄로 규정하고 있다.

환자 가족을 대리하는 신현호 변호사는 "치료를 계속해도 회복이 명확히 불가능한 상황에서 인공호흡기를 계속 달고 있으라는 것은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나긴 죽음의 과정을 늘릴 뿐"이라고 주장했다. 무의미한 '생명 유지 치료'로 인한 환자 본인과 가족들의 고통을 덜고 사회적 비용도 줄여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 '남에게 누가 되지 않게 깨끗이 하늘나라로 가고 싶다'는 환자의 평소 뜻이 확고했던 만큼 이를 존중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에 따르면, 수년전 교통사고를 당해 팔과 다리에 흉터가 있었던 김씨는 한여름 집에서도 흉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늘 긴 소매 옷을 입을 정도로 꼿꼿하고 깔끔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이런 할머니를 기억하고 있는 손자, 손녀들은 인공호흡기를 달고 호스를 꽂은 채 누워만 있는 할머니 모습에 충격을 받아 "우리 할머니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 할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사그라질까 염려한 김씨 자녀들은 어린 손자들이 할머니 병문안을 못하게 한다고 신 변호사는 전했다.

반면 병원측 신동선 변호사는 "환자의 치료를 중단해 의사와 환자 가족이 형사 처벌을 받은 대법원 판례(보라매 사건)를 존중해야 하며, 환자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의료인의 기본 윤리를 저버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씨가 "과연 치료를 중단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가족들의 진술 외에는 김씨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명확한 증거도 없다."고 말했다. 법원의 처분이 환자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만큼, 소송에 앞서 일을 빨리 진행하기 위한 제도인 가처분 결정으로 생명이 걸린 문제를 다루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폈다.

이처럼 민감한 사건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민사21부(재판장 김건수)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재판에 앞서 양측으로부터 존엄사에 관련된 각종 자료를 제출받고, 해당 변호인들과 직접 통화하며 의견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재판은 오는 17일 오후 다시 열리며, 결정까지는 최소 한 달 이상이 걸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