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9일 천주교 지도자들과 가진 오찬에서 "(그간) 인선(人選) 과정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도덕적 기준을 소홀히 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현재 거리에서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이명박 정부가 빨리 문제를 찾아내 풀어가야 할 텐데라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대통령의 이 말에는 공감(共感)을 표시할 것이다. 이 말이 더 빨리 나오고, 그 위에서 잘못된 인사를 서둘러 바로 잡았다면 취임 100일밖에 안 된 대통령과 정부가 이런 난국(難局)을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사의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대통령 말대로 이 정부의 청와대와 내각 인선에서 국민의 도덕적 눈높이에 부합되지 않는 인사들이 적지 않게 들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 정권에서도 간간이 청와대 비서관이나 장관들이 재산문제로 시비에 휩쓸린 경우가 있었는데도 그것이 정권 전체의 위기로까지 번지지 않았던 것은 국민들도 그 사람들이 살아왔던 시대를 같이 살았고 그 시대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것이 이 정권에만 치명상으로 작용했는가를 알아야 재출발을 다짐하는 다음 인사에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에서 선거와 인사(人事)의 작용과 부작용에 대한 깊은 이해, 다시 말해 정치 철학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는 법과 원칙에 따라 이뤄지는 싸움이다. 이긴 사람, 진 사람 모두에게 원한(怨恨)과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대통령 선거는 큰 싸움이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는 국민을 크게 분열시키고 큰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아무리 큰 표차로 당선됐다 해도 국민 마음속에 이런 앙금이 남아 있는 한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국민과 함께 새출발하기는 힘들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아닌 국민 어느 부분의 대통령으로선 나라를 운영하는 힘을 얻기도 힘들다. 그래서 우리보다 민주정치의 역사가 훨씬 오래된 나라에서도 새 대통령은 인사의 틀을 잡으면서 승자독식(勝者獨食)이 아닌 부분적 탕평(蕩平) 인사를 가미(加味)함으로써 분열된 나라와 국민을 화합시키고 통합해 그 기반 위에서 전체 국민의 대변자, 모든 국민의 대통령으로 다시 한 번 탄생하는 길을 따르는 것이다. 새 대통령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경선과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을 반대했던 사람까지도 끌어들여 진정한 다수파(多數派) 대통령이 되고 힘있는 다수파 정권을 만들어가는 법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청와대와 정부 인사에서 이 과정을 생략하고 무시함으로써 스스로 소수파(少數派) 정권의 길로 들어서버렸다. 다양화되고 다층화(多層化)된 한국 사회에서 아무리 큰 학연(學緣)도 전체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하고 아무리 큰 종교도 전체에 비하면 부분에 불과하며 아무리 넓은 지연(地緣)도 전체에 비하면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혈연(血緣)이야 거론할 것도 없다. 또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도 중요하지만 노사의 화합과 원만을 위해서는 레이버 프렌들리(labour friendly)도 그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첫 인사는 경선과 본선, 국정초반 운영에서 반대편에 섰던 이런 세력들을 적대자(敵對者)로 고정시켜 버린 것이다. '고소영' 내각 '강부자' 청와대라는 유행어는 사실의 일부도 담고 있긴 하지만 그 말속에는 소외(疎外)되고 배제(排除)된 세력과 계층의 반감(反感)이 응집돼 있는 면이 더 크다.

쇠고기 파문이 쇠고기 대란(大亂)으로까지 번져버린 것은 취임 100일 만에 이명박 정권이 제 손으로 만든 반대 세력이 그만큼 크고 넓게 확대되고 확산되어 버렸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은 민심 수습을 위해 단행할 청와대와 내각 개조(改造)에서 국민 마음속에 쌓아 올려진 이런 장벽과 울타리와 칸막이를 과감히 허물어 버리고 '어떤 부분(部分)도 전체(全體)보다는 클 수 없다'는 자명(自明)한 원리를 명심함으로써 진정한 다수파(多數派) 대통령, 힘있는 다수파 정권으로 재탄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패했던 인사의 과정을 냉철하게 되돌아봐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그런 잘못이 저질러졌고, 그 잘못이 빨리 시정되지 못했는가에 대한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 반성은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