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고문 특별기고] 촛불 시위 vs 1인 시위

  •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
    입력 2008.06.08 09:56 | 수정 2008.06.08 10:31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

    지난 6월3일 오후 2시쯤 서울 청계천광장 주변에서 한 대학생이 '광우병 위험이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며 미국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는 1인 시위를 했다. 그는 곧 주변사람에 둘러싸여 핍박에 가까운 힐난을 당하고 "할 테면 딴 데 가서 하라"는 고함 소리에 부딪혀 시위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들은 경찰도 그의 '안전을 우려'해 시위 중단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30일 방송에 출연해 "광우병 파동은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발언한 김문수 경기도지사 역시 반대자들의 맹공에 시달렸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실망'과 '분노'를 표시한 수십 건의 글이 올랐고 전화도 여러 건 걸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쇠고기 문제로 곤혹스럽기는 조선일보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1면 등에 광고를 실어온 30여개 기업(주로 내수소비재 기업)은 지난 5월27일부터 '조선일보에 광고를 싣지 말라'는 요구와 함께 광고를 계속하면 그 회사 제품의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이름 없는 시민'들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수백명의 이른바 네티즌들은 광고주의 홈페이지를 다운시킬 정도로 격렬하게 공격성 글을 올리고 전화로도 거세게 항의해 일부 회사는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포털사이트인 다음에 '조선일보 광고회사 불매운동 본부' 라는 카페를 재개설해 구체적인 공략작업에 들어갔다. 다음의 토론방인 아고라, 주부들 모임인 82쿡 등 사이트는 매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광고 리스트를 올리고 불매운동을 촉구하고 있다. 조선일보뿐 아니라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비슷한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화문 주변 '조선일보 가는 길'을 안내하는 조선일보 이정표들은 데모대에 의해 심하게 훼손돼 있다. 글씨가 뭉개져 있거나 그 위에 스프레이를 뿌려 알아볼 수 없게 돼있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거냐 말 거냐, 또는 광우병 위험이 있느냐 없느냐, 또는 30개월 이상 또는 미만의 월령 표시를 해야 하느냐 마느냐 등의 논의를 떠나서, 또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를 떠나서 우리 사회는 지금 심각한 불신과 왜곡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주장도 경청할 줄 아는 민주사회 시민으로서의 기본적 예의가 실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1인 시위자에 대해 “딴 데 가서 하라”고 윽박지른 사람에게 “당신도 데모 할 테면 딴 데 가서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글로벌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한 장기적 안목을 제시한 김 경기지사로서는 반대자들의 융단공격뿐만 아니라 어쩌면 정치적 피해까지 감수할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과거 독재시절 정치권력은 광고주에게 광고를 주지 말도록 협박해서 동아일보를 죽이려 했었다. 그런 현상이 30여년이 지난 언필칭 민주화된 나라에서 국가권력이 아닌 언필칭 ‘시민권력’에 의해 또다시 복기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슬프고 놀라운 시대착오의 표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사회의 특성이다. 다른 견해를 표출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사회의 속성이다. 우리는 다른 견해를 표현하는 것은 차치하고 그것을 품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던 시대를 산 경험이 있다. 그 시대를 독재시대라고 했다. 우리는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이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시대로 진입했다고 자부해왔다.

    사실 일부 국민이 미국산 쇠고기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반대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그 반대를 ‘결사’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다른 견해도 ‘견해’로서 존중해줘야 한다. 그리고 견해의 다름은 토론과 타협으로 해소하거나 조정하는 기술도 함께 배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민주시민의 세 가지 요소를 갖추는 것이 된다.

    일부는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다. 쇠고기 문제는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고 국민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단순히 ‘견해 다름’의 차원에서 접근될 문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정부와 권력을 향해서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1인 시위자에게, 조선일보에, 그리고 조선일보 광고주들을 상대로 다른 견해를 갖지 말라고, 아니 가져서는 안 된다며 불매운동으로 강압하는 것은 또다른 독재현상이다.

    더구나 정부나 위정자와 다른 견해를 가진 측은 ‘시민권’의 뒤에 숨은 불특정다수이고 그 다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측은 신분과 신원이 드러나 있는 특정인이라고 할 때 고함과 불매와 파손 등의 행위는 비겁하기까지 하다. 자기들은 ‘퇴진’의 깃발을 들고 공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로 돌진해도 되고 그것을 저지하는 경찰은 번번이 ‘과잉폭력’의 상습자가 되고 마는 낡은 게임의 방식은 개선해야 한다. 내가 반대하면 당신도 반대할 수 있고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할 때 나의 다름을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긍정했으면 한다. 나만이 옳다는 생각, 나와 다름을 폭력적 방법으로 대응하는 오만이라면 MB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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