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chosun] ‘비극적 죽음’ 오승윤 화백, 그리고 2년…

입력 2008.05.30 21:03 | 수정 2008.06.01 13:18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08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광주시립미술관 ‘올해의 작가’ 고(故) 오승윤 초대전
‘산과 마을’ ‘금강산’ 등 시대별 대표작 70여점 소개

오승윤 화백 부부

지금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2008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고(故) 오승윤(1939~2006) 화백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오승윤 화백은 한국 근대미술의 선구자인 오지호(1905~1982) 화백의 차남으로 1996년 몬테카를로 국제회화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는 ‘산과 마을’ ‘금강산’ 등 시대별 대표작 70여점이 소개된다.

한국 구상미술의 거장으로 자리잡은 오 화백은 풍수, 샤머니즘 등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오방정색(五方正色)’이라는 독특한 세계를 추구해왔다. 청(靑)은 동(東), 백(白)은 서(西), 적(赤)은 남(南), 흑(黑)은 북(北), 황(黃)은 중앙을 뜻한다.

그는 1939년 개성에서 태어나 8·15광복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이후 남한으로 내려와 유년생활을 전남 화순 동북에서 보낸 뒤 광주 지산동으로 옮겨왔다. 고3 때 전국 학생실기대회에서 ‘소묘’로 최고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홍익대 미대에 진학했고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1974년부터는 전남대 교수로 재직하며 예술대학을 만들었고 1980년 5·18 때 휴직한 뒤 이듬해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1982년 귀국과 함께 전업작가로서 ‘풍수(風水)’ 시리즈를 잇달아 발표해 국내외 화단의 큰 주목을 받았고, ‘세계적 작가 6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한국과 프랑스 파리 등 유럽 화단에서 활동하며 국립현대미술관과 유네스코본부 초대전 등을 통해 다양한 작품세계를 선보였다. 1999년 6월 작품 ‘풍수’가 프랑스 유력 미술잡지인 ‘위니베르 데자르(Univers Des Arts)’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좌선' 1996년작 (좌측), '산맥' 2005년작 (우측)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 화백은 2006년 1월 투신자살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인생을 정리하는 의미로 2005년 11월 화집 발간과 함께 12월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화집 발간 작업이 늦어지면서 크게 상심한 데다 자신의 작품을 회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출판사와 소송을 준비 중이었다고 한다.

유족으로는 아내와 2남1녀. 오승윤 화백의 둘째 아들인 오병재씨도 화가다. 그는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2003년 영국 골드스미스대학에서 석사를 마쳤다.

군더더기 없이 기하학적인 구도의 화면을 통해 모험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담백하게 그려낸 그의 작업은 할아버지 오지호보다는 아버지 오승윤 쪽에 가깝다. 오승윤 화백의 비극적 죽음 2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광주 시립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갖기로 한 것이다. 6월 29일까지. (062) 510-0700
패트릭·조세(왼쪽) 부부


[인터뷰 ] ‘위니베르 데자르’의 발행인 패트릭ㆍ편집장 조세  부부

“그림 안에서 살다간 사람… 20세기 미술사에 기억될 것”

지난 5월 22일 열린 오승윤 화백의 회고전 개막식에는 프랑스 미술 월간지 ‘위니베르 데자르’의 발행인과 편집장인 패트릭(63)ㆍ조세(56) 부부가 참석했다. 오 화백과 패트릭ㆍ조세 부부의 인연은 10여년 전 파리의 한 전시회에서 시작됐다. 이후 이들은 매년 프랑스 파리 혹은 한국 서울에서 만날 만큼 절친한 친구가 됐다. 5월 21일 서울 코리아나호텔 커피숍에서 패트릭ㆍ조세 부부를 만났다.

오승윤 화백을 만나기 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고 했는데요.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한국 화가들을 통해 오 화백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전시회에서 직접 그의 그림을 보았을 때 매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적 시간이 초월된 그의 작품에서 발현되는 빛나는 영혼과 에너지의 불꽃이 진하게 다가왔어요. 이후 오승윤 인터뷰를 저희 잡지에 실었고 그를 위한 전시회를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오승윤 화백 작품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순수하고 가식이 없는 자연스러움입니다. 전통 색을 사용해 매우 한국적인데, 또 세계인에게 어필할 만큼 세련됐어요. 전통과 현대성의 완벽한 결합을 조화시켰죠. 그의 작품은 20세기 미술사의 한 부분으로 남을 것이고 피카소, 마티스, 고야 등처럼 연구될 수도 있을 겁니다. 제 기준으로 보면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그림 안에서 사는 사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 화백은 당연히 후자였습니다.”

오 화백이 자살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알고 있나요. “출판사와의 문제 때문에 화병이 난 것 같아요. 책은 자꾸 미뤄져 나오지 않았고 출판사에서는 가져간 그림을 돌려주지도 않아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발간될 책의 추천사도 이미 제가 썼는데 말입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끔찍하고 허망했습니다. 작품 속에서 전혀 죽음의 전조를 보지 못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다니 말입니다. 미망인과는 계속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미술과 한국 미술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큰 차이가 없어요. 국적은 의미가 없고 작품성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저는 한국의 젊은 화가들을 좋아해요. 매우 창의적이고 새롭죠. 프랑스에서 열리는 한국 젊은 작가들의 전시회에 참석해보면 굉장히 흥미롭더라고요.”

‘위니베르 데자르’는 어떤 잡지입니까. “1994년에 창간한 미술 전문지입니다. 아내가 한국사람이기에 그동안 민경갑·구자승 등 100명이 넘는 한국 화가들 기사가 실렸어요.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작년에 제(패트릭)가 한국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내(조세)는 15세에 프랑스에 왔고 1975년 저를 만나 친구가 됐습니다. ‘위니베르 데자르’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매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잡지이며 한국, 일본 등의 큰 서점에서도 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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