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자정을 막 넘긴 시각.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장안지구대에 '손님이 행패를 부리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 왔다. 김종복(42) 경사는 동료 한 명과 사건 현장인 한 횟집으로 출동했다.
김 경사 일행이 들어서자 한 남자가 "×새끼들!"이라며 욕설과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김 경사는 그를 순찰차에 태웠다. 그러자 사내는 차 안에다 침을 뱉으며 "너희 같은 '피라미'는 상대 안 한다. 판·검사 앞에 가서 말 하겠다"고 소리쳤다.
차에서 내려 지구대로 들어서려던 순간 사내가 김 경사의 목과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억!"하는 비명과 함께 김 경사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날 새벽 사내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지구대를 떠났다.
김 경사는 자신이 폭행당한 사실을 문제삼지 않았다. 그는 "이런 사람을 괜히 건드리면 청와대나 경찰청, 인권위 홈페이지에 '경찰이 민주 시민을 구타했다'는 글을 남기거나 진정을 한다"고 말했다. 그런 기관에 불려가 조사받는 일은 성가시고 힘들다는 것이다.
김 경사는 "경찰이 보는 앞에서 난동을 피워도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며 "힘이 없어 제압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 시끄러워질까봐 한 대 얻어맞아도 참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밤 10시부터 23일 새벽 3시 사이 본지 취재팀은 치안의 최일선인 서울시내 경찰지구대 8곳을 지켜 봤다. 그 5시간 동안 지구대에선 경찰관 폭행이 3건, 지구대 안 행패가 8건, 경찰관 상대 협박이 3건 일어났다.
작년 한해 서울 31개 경찰지구대 소속 경찰관을 때리거나 업무를 방해해 처벌받은 사람은 2796명. 서울지역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이 1만76명이니까 경찰관 3명 중 1명꼴로 '험한 꼴'을 당한 셈이다. 피해를 덮어버렸거나 범인이 잡히지 않은 경우를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무기력한 공권력은 이를 무시하는 국민 의식과 맞물려 악순환을 낳는다. 경찰대 치안연구소가 작년 8~9월 전국의 18세 이상 600명에게 "경찰의 법 집행에 대한 저항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48.3%였다.
사법부의 미온적 태도도 '공권력에 도전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의식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경찰이 신청한 공무집행방해 영장 10건 중 3건은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기각 비율은 2005년 18.3%에서 2006년 20.9%, 작년 28.4%로 매년 높아지고 있다. 한 경찰관은 "시민은 무시하고 사법부는 지켜주지 않는 게 우리 공권력이 처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경찰대학교 행정학과 표창원 교수는 "공권력 집행의 약화는 경찰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의 안녕과 평온의 문제"라며 "공권력이 권위를 잃으면 결국 피해는 법을 지키는 사회적 다수에게 돌아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