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적(敵)으로 여기는 것들이 실은 나와 가장 닮은 자"

조선일보
  • 김태훈 기자
    입력 2008.05.23 22:57

    스페인 소설가 피뇰과 소설가 강영숙 대담
    피뇰 환상적인 이야기에 보편적 진리 담았다
    강영숙 다양성은 문학을 건강하고 풍부하게

    상상의 공간에서 작가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소설가 강영숙(42)이 2006년 발표한 첫 장편 《리나》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열여섯 살 소녀가 국경 너머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 뒤 동성애와 살인, 매춘, 청소년 노동 등 인간의 벌거벗은 욕망과 충돌하는 장면을 그렸다. 스페인 소설가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43)이 2002년 발표한 첫 장편 《차가운 피부》의 무대는 남극 근처에 있는 상상의 무인도다. 주인공은 그곳에서 괴물 양서류와 사투하고, 암컷을 붙잡아 수간(獸姦)하며 인간 내부의 야수성을 거칠게 폭발시킨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지난 18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서교동 홍익대 일대에서 진행하는 '2008 서울, 젊은 작가들' 페스티벌을 통해 만난 두 작가가 '상상의 공간에서 문학 하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두 작가는 '소수 언어로 문학적 보편성을 얻기 위한 전략'에 대해서도 관심을 공유했다.

    ▲피뇰=내 모국어인 카탈루냐어는 스페인에서 100만 명 정도가 사용하는 소수 언어다. 문화적으로도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 지역은 위로는 프랑스, 아래로는 스페인이라는 두 거대 문화권 사이에 끼여 있다. 언어적, 문화적 소수자로서 카탈루냐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나는 그 방법이 '우리 고유한 방식으로 문학 하기'보다는 '우리 안의 보편적 가치 찾아내기'에 있다고 본다.

    ▲강영숙= 한국중국일본이라는,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강력한 국가 사이에 끼여 있다. 한국어는 약 7000만 명이 쓰고 있어 유럽 기준으로는 소수 언어가 아니라 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소수 언어 취급을 당하고 있다. 문화와 언어의 국경 안에 갇혀 있다는 자각은 그것을 벗어나고 싶은 열망을 강하게 만든다. 나는 당신의 소설을 읽으며 바다괴물이 등장하는 거대한 환상이 왜 필요했나 생각해 봤다. 그것은 당신이 기존의 문화나 문명에 대해 환멸을 갖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소설가 강영숙씨와 스페인 작가 피뇰씨가 서울의 거리를 함께 걸으며 자신들의 문학세계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피뇰=나는 늘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한다. 사회적 리얼리즘은 내 문학이 원하는 지향점이 아니다. 나를 옥죄는 답답함을 느낄수록 더 거대한 허구를 창조하고 싶어진다. 《차가운 피부》가 바다의 괴물이었다면, 2년 전 발표한 두 번째 소설 《콩고의 판도라》는 지하괴물 이야기다. 다음 작품에도 나는 괴물을 등장시켜 현실을 벗어날 생각이다.

    ▲강영숙=양서류 괴물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인간에 대한 비하이거나 적어도 인간과 그들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설정 같다.

    ▲피뇰=그렇다. 내가 적(敵)으로 여기는 것들이 실은 나와 가장 닮은 자일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이처럼 내 문학을 내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환상으로 만든 뒤 보편적 주제에 다가서는 전략을 쓰고 있다. 가장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누구나 공감할 보편적 진실의 여러 층위를 담는 것이다.

    ▲강영숙=언어의 제약과 주제의 보편성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세상의 모든 작가가 영어로 문학을 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축복보다는 재앙일 것 같다. 다양성이 문화의 이종교배를 가능케 하고 그것이 문학에 건강과 풍부함을 가져다 주니까. 아쉬운 것은 문학 교류에 역조 현상이 심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문학은 교류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수입일 경우가 많다.

    ▲피뇰=나도 한국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7000만 명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생산되는 문학이라면 세계인이 읽어야 할 작품이 많을 것이다. 한국어와 카탈루냐어 작품이 노벨상을 받지 못한 이유는 두 언어로 된 문학의 질적 문제라기보다, 우리 언어로 심사하는 이가 없기 때문 아닌가.

    ▲강영숙=최근 세계 문학은 쿤데라처럼 서사를 줄이고 에세이화 한 작품들이 주류다. 그러나 나는 서사가 강렬하고 이미지도 선명한 작품을 쓴다. 다만 기승전결을 없애서 당위론적 결론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실험을 함께 하고 있다.

    ▲피뇰=당신과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싸우고 몸부림치고 강렬하게 움직이며 강한 서사를 창조한다. 하지만 그들은 내면의 변화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 변화를 묘사함으로써 우리 작품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문학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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