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식 충북대 교수

입하(立夏)가 지나고 소만(小滿)이 돌아온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실로 오랜만에 청원군에 있는 고향에 들러 선산을 둘러본다. 평소 관심 없이 보았던 씀바귀가 눈에 들어온다. 힘차게 뻗어 오르는 기운이 아름답고 장하다. 그러나 냉이는 누런 것이 이제는 내년을 기약하며 지난날의 기상을 접는가보다. 잠시 눈을 들어 들판을 바라본다. 푸른 보리 물결 너머로 반가운 일가친척들이 모내기 준비에 여념이 없다. 문득 전신으로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낀다. 항상 그랬듯이 고향은 일상에 찌든 나에게 포근한 안식처가 되어준다.

지난 4월 21일 청원군과 군내 사회단체들은 청원시승격추진위원회 발대식을 갖고, 내 고장 주민등록 갖기 운동 등 청원시 승격을 앞당기는 범군민 운동에 들어갔다. 이와 달리, 청주시는 2010년까지 청원군과 행정 구역을 통합하기 위해 내년도에 통합 여론조사와 주민투표를 실시키로 하는 등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청주읍은 1946년 청주부로 승격되어 도시화의 기반을 갖춘 뒤, 1949년 청주시로 개칭되었다. 이때 나머지 지역은 청주시에서 분리되어 청원군이 된 것이다. 청주군에 있었던 다른 지역과는 별도로, 청주읍만이 유독 청주시로 개편 독립된 것은 조국 광복 이후 청주읍의 도시화와 이에 따라 행정 수요의 증대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60년 동안 청주시는 도시 친화적 특성에 걸맞는 현대적 도시로 성장한 것이고, 청원군은 이와 달리 자연 친화적 특성에 걸맞는 현대적 농촌 지역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이제까지 두 자치단체는 모두 나름의 전략에 맞추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장해온 것이다.

과거 같은 행정 구역에 포함되었던 지역이 현대에 와서 군(郡)을 달리 하거나, 심지어는 도(道)를 달리 하는 곳이 얼마든지 있다. 그 모든 곳을 과거 지향적인 사고에 얽매어 통합으로 회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지역이 나뉠 때에는 거기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듯이, 다시 통합이 필요하다면 또한 통합에 필요한 합리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청주·청원을 하나로 묶는 일은 1994년 정부 주도로, 2005년 자치단체 주도로 주민투표가 실시되었으나 두 차례 모두 청원군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중시해야 할 것이다.

이제 청원군의 환경은 많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군민을 위한 자치행정 또한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그 해답을 우리는 청원시에서 찾을 수 있다. 오송생명과학단지와 오창과학단지를 주축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와 연계된 청원시 건설은 청원군민에게는 물론, 충북도민 전체에게도 필요한 과업이다. 청원군의 새로운 발전 모델인 청원시 승격과 이웃 도시 청주시와의 통합은 별개의 문제이다. 최근 무서운 속도로 빨라지고 있는 청원군의 도시화를 생각해 볼 때, 청원시 승격은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소만(小滿)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소만 바람은 입하를 지나 부는 만큼 당연히 여름 열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몹시 차고 쌀쌀하여, 나이에 비해 기질이 노쇠한 사람은 얼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리라. '청주·청원 통합'이란 반대 주장이 '청원시 승격'이란 신명나는 일에 소만 바람이 되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또한 두 자치단체가 서로 반목하지 않고 충북 발전을 위해 상부상조하길 진심으로 바라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