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사랑] 선잠(先蠶)

조선일보
  • 이덕일·역사평론가
    입력 2008.05.06 22:31 | 수정 2008.05.06 23:01

    '농사일은 하인에게 묻고 길쌈 일은 여종에게 물으라'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 임금이 선농단에 선농제(先農祭)를 지내고 친경(親耕)을 했다면 왕비는 선잠단(先蠶壇)에 선잠제(先蠶祭)를 지내고 직접 뽕잎을 따는 친잠(親蠶)을 했다. 농(農)은 국왕의 일이고 상(桑)은 왕비의 일이었다. 선잠제는 서릉씨(西陵氏)를 제사하는 것인데, '사기' 황제(黃帝) 본기는 "황제는 서릉의 딸을 부인으로 삼았는데, 이가 누조( 祖)로서 황제의 정비(正妃)가 되었다"라고 전한다. 서릉의 딸이 처음으로 누에를 쳤다는 것이다. 사기 주석서인 '사기정의(史記正義)'는 서릉을 나라 이름이라고 해석했다.

    조선의 '국조보감(國朝寶鑑)'은 정종 2년(1400) 3월 "처음으로 선잠제(先蠶祭)를 지냈다"라고 전하는데, 이때의 선잠단은 개경에 있었을 것이다. 매년 음력 3월의 첫 뱀날〔巳日〕, 즉 초사일(初巳日)에 거행한다. '두씨통전(杜氏通典)'에 '황후가 계춘(季春)의 길한 뱀날(吉巳)에 선잠제를 지낸다'라는 구절에서 딴 것이다. '국조보감' 성종 8년(1477) 3월 조는 "처음으로 왕비가 친잠례를 행하였다"고 친잠절목을 기록하고 있는데 아마 한양으로 천도한 후 처음으로 지냈다는 의미일 것이다. 성종 때 왕명에 의해 주(周)나라를 비롯한 중국 여러 나라의 선잠단 장소를 고찰한 후 궁궐의 후원(後苑)에 선잠단을 설치하고 선잠제를 지냈다.

    현재 선잠단 터는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인데 이곳이 성종 때에는 궁궐의 후원이었다. 친잠 때는 왕비가 주관하고 내명부(內命婦) 1~3품인 국왕의 후궁들과 대군(大君) 부인들, 국왕의 장모, 공주, 옹주와 승지의 부인 등이 집사(執事)로 참여해 광주리를 잡고 뽕잎을 땄다. 조선 후기의 미수 허목(許穆)은 '친잠에 대한 의논(親蠶議)'에서 신농씨의 법(神農之法)을 인용해 "장부가 농사짓지 않으면 천하에 굶주리는 자가 있으며, 부인이 베를 짜지 않으면 천하에 춥게 지내는 자가 있기 때문에 왕이 친경(親耕)하고 왕비가 친잠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여성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 선잠(先蠶)이었다. 고위직 진출을 꿈꾸는 여성들이 명심할 고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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