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 부통령, "김구 선생과 달리 남북협상 처음부터 반대"

  • 조선닷컴
    입력 2008.05.04 16:21 | 수정 2008.05.04 23:45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이 백범 김구 선생과 달리 남북협상에 뛰어들지 않은 것은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월간조선 5월호가 보도했다. 월간조선은 건국 60주년 기획 ‘건국의 주역들’에서 이시영 초대 부통령 며느리 서차희(99) 여사와 조카 손자인 이종찬(72) 전 국정원장 등 선생의 가족 말을 인용해 이 같이 전했다.

    임시정부에서 함께 활약하던 이시영과 김구의 관계는 말년에는 순탄치 못했다. 이시영의 형 이회형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에 따르면, 이시영과 김구는 남북협상과 단독정부 수립 문제에 관해서는 의견이 달랐다.

    이시영은 남한에서만 총선거를 통해 정부를 수립한 다음 우리 손으로 국가의 장래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국민들에게 총선거 참여를 권유했다.

    이는 직접 북한으로 가서 협상을 하려는 김구와는 다른 생각이었고, 이시영이 부통령에 취임하자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갔다는 것이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증언이다.

    이 전 원장은 “성재(이시영의 호) 할아버지는 좌익을 경계했으며, 남북협상에 뛰어들지 않은 것은 협상이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라며 “이에 반해 백범은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다 뭉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시영은 생전에 절친했던 김구와 화해하기를 원했지만 김구가 갑자기 암살당하는 바람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시영의 수유리 묘소 아래 움막을 짓고 32년째 시아버지 묘를 지키고 있는 며느리 서차희 여사는 “시아버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일 정도로 청렴결백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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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씨에 따르면 이시영은 전재산을 팔아 50여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가서 신흥부관학교를 세우고, 아들과 며느리 서씨의 결혼식 때 1000여 하객이 낸 축의금을 모두 상하이 임시정부로 보냈다.

    서씨는 “아버님은 임정 건물 안 냉골방에서 직접 진지를 해드셨다”며 “자식들에게는 단 한 평의 땅을 물려주지 않을 정도로 청렴 결백했다”고 말했다.

    이시영의 유족들의 소망은 선생이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이다. 현재 99살의 며느리와 손녀·손자가 움막을 짓고 묘소를 관리하고 있지만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 손자 이종문씨의 말이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지만 아직까지 국립묘지 이전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5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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