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 출세한 살인범 소년 "제가 예전에 뭘 잘못했나요?"

입력 2008.05.02 14:34 | 수정 2008.05.02 14:41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오쿠노 슈지 지음/ 서영욱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 15세 소년이 칼에 찔려 죽었다.

목이 베어져 머리통은 따로 나뒹굴었다.

고등학교 입학 뒤 한 달이 채 안된 봄날이었다. 부검 결과 위에서 딸기가 나왔다. 아침에 도시락으로 닭튀김과 딸기를 싸주었던 엄마는 30년이 지나서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엄마다.

입학 기념으로 사준 시계가 피투성이로 팔목에 채워져 있었다. 엉엉 울면서 피를 닦아냈던 아빠는 20년 뒤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시계를 몸에서 떼지 않았다. 그것이 아빠다.

세 살 아래 여동생에게 오빠의 죽음은 짙은 어두움으로 남았다. 부모님이 너무도 사랑한 오빠가 죽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었어야 했다고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사사건건 부모와 불화했다. 오빠 무덤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고 손목을 긋기도 했다. 오빠의 죽음에 얽힌 사실을 중학생 딸들에게 털어놓자 아이들은 소리지르며 울었다. 따라 울던 그는, 자신이 30년 만에 처음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 오사카의 이케다 초등학교 앞에서 한 엄마가 딸을 데리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2001년 6월 환각 상태의 30대 남성이 교내에 침입한 뒤 흉기를 휘둘러 8명을 숨지게 한 사건 직후 모습이다. /AP
#. 1969년 4월 23일, 화사한 봄날 오후였다. 일본 도쿄의 한 고등학교 교정으로 1학년생 A가 피를 흘리며 뛰어들어왔다. A는 친구 히로시가 더 위험하다고, 빨리 도와달라고 외쳤다. 남자 셋이 일본도를 들고 덮쳤다고 했다. 히로시의 사체는 농로 변 꽃밭에 버려져 있었다.

범인은 다음 날 드러났다. A 자신이었다. A는 히로시가 평소 자기를 괴롭혔고, 그날도 자기가 칼을 자랑하자 샘 난 표정으로 "넌 돼지 같이 생겼다"고 놀려서 정신 없이 칼을 휘둘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히로시가 A를 괴롭히는 것을 본 일이 없다고 했다. A는 소년범으로 가정법원에 송치되었고 뒷일은 아무도 몰랐다.

#. 프리랜서 기자인 오쿠노 슈지는 1969년 일어난 이 사건의 피해자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1997년 취재를 시작했다. 그 해 봄, 고베에서 일어난 사카키바라(酒鬼薔微) 사건이 계기였다. 14살 중학생이 초등학생 목을 잘라 학교 교문 앞에 내버린 엽기적 사건이었다. 자신을 '투명한 존재'라고 부른 사카키바라 소년은 의무 교육과 의무 교육을 낳은 사회에 대한 복수로 살인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옛 사건을 찾아 나선 오쿠노는 과연 두 사건이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히로시 사건의 범인 A 역시 재판 과정에서 자신을 '투명한 존재'라고 말했고, 반성이나 사죄 대신 오히려 '절망에 빠지지 말자'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오쿠노의 취재는 월간〈문예춘추〉1997년 12월호에 실렸다. 오쿠노는 보도 이후 본격적으로 피해자 가족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는 30년 전 사건이 절대로 '잊혀진' 것이 아니라는 데 놀랐다. 피해자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9년 동안 만나면서, 그는 히로시의 죽음과 A의 범행이 여전히 현재형이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사건 후 1년 동안 수면제로 버텼다. 자기가 걷고 있으면 지하에 있는 히로시의 발이 자기 발바닥에 딱 붙어 땅 아래를 거꾸로 걷고 있다고도 했다. 과묵한 회사원이었던 아빠는 퇴근 길 집 앞의 파친코에 앉아 머리를 텅 비웠다. 아들이 좋아하던 외삼촌 집에 가서 하염없이 울고 오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딸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수면제에 취해 자고 있는 엄마에게로 가서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이들의 삶은 결코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오쿠노의 관심은 히로시의 가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재구성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 사건을 둘러싼, 일본 사회에 대해 질문한다. 국가와 법은 누구의 인권을 보호하느냐는 것이다. 가해자 A는 사건 직후 '정신분열증 기질의 정신장애자'로 판정 받고 의료소년원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선 정신질환 치료와 교과 학습을 통해 소년범의 갱생을 지원했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은 아무도 돌보지 않았다. 가해자의 사죄나 피해 배상 의무도 없었다. 피해자 가족에 대한 상담 치료라든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라는 말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오쿠노는 가해자인 소년 A의 행적을 쫓는다. 그러나 소년법이 그의 인권을 보장한다. 그의 전력(전과가 아니다)은 지워졌고, 이름조차 공개할 수 없었다. 놀라운 반전이 그를(그리고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오쿠노가 A에 대한 감정을 묻자 엄마는 '뜻밖의' 말을 했다.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으니 평범한 직업을 갖기는 어렵겠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겠구나 하면 가여운 마음도 듭니다. 가만히 놔두고 싶습니다." 과연 A는 죄 값을 치렀을까? 지금도 치르고 있을까?

소년원에서 나온 A는 아버지의 첩이었던 B의 양자로 입적돼 새로운 성과 이름을 얻고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 어렵게 찾아낸 주소로 찾아간 오쿠노는 그의 새 이름이 붙은 사무실을 발견한다. 그는 변호사가 되어 있었다. 사건 후 33년 만인 2002년 처음 히로시의 엄마와 통화한 그는 "나쁜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쿠노는 "일본 정부가 가해자를 갱생하는데 연 466억엔(2004년 기준)을 쓰는데 비해 피해자를 위한 예산은 11억엔 뿐"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가해자의 인권을 배려하는 것에 비해 피해자(유족)에게는 아무런 지원도, 치유 시스템도 없는 것이 제대로 된 문명 사회냐고 그는 묻는다. 사카키바라 소년조차 26세면 의료소년원을 나오게 되어있는 일본 소년법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것 아니냐고 그는 따져 묻는다.

오쿠노의 책이 조금이나마 반향을 얻은 것일까. 올 봄 일본 고등법원은 모녀살인 사건의 미성년(소년법 적용을 받지 않는 18세 이상 20세 미만) 살인범에 대해 '원칙'을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피해자 가족들이 전면에 나서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한국 사회를 향해 이 책이 던지는 문제는 두 가지이다. 먼저, 우리의 사법 제도는 범죄 피해자(가족)의 치유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또 하나, 사건에 대한 끈질긴 추적을 통해 사회 정의를 묻는 언론이 우리에게 있는가. 이 책은 우리에게 정의의 실천으로서 법과 언론의 임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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