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주 팔로 알토 자택에서 이삿짐을 싸기 위해 운동기구를 해체하고 있는 안철수씨. 귀국 직전 학교에 마지막 과제물을 제출했을 정도로 공부에 매달려 여행 한 번 못 갔다고 한다.

국내 컴퓨터 보안 프로그램 개발의 선구자 안철수(46·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씨가 3년간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오늘 귀국한다. KAIST에 석좌교수로 영입돼 2학기부터 비즈니스 이코노믹스 프로그램을 담당할 예정인 안씨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설렌다"고 했다. 의사에서 프로그래머, 경영자로 변신했던 안씨는 2005년 안철수연구소 CEO에서 물러난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수업하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MBA를 마쳤다. 26일 캘리포니아주 팔로 알토시 자택에서 이삿짐을 싸고 있던 안씨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학생활의 의미를 정리한다면?

"형편없었던 스스로의 몰골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예전에 기술 MBA 과정을 마쳤고 10년동안 경영을 했기 때문에 웬만한 것은 다 안다고 생각했다. 막상 공부해보니 경험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최고학습경영자(Chief Learning Officer)'가 되겠다고 했는데.

"사람을 길러내는 일을 하겠다는 뜻이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나 벤처의 중간 관리자급 인력을 훈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CEO에서 물러나며 벤처산업 전체를 위해 내 경험을 바칠 기회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유학도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경험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교수직은 스스로 선택했나?

"여러 대학에서 제의를 받았다. 의사였을 때는 최선을 다해 살다 보니 오히려 의사를 그만둬야 했다. CEO를 그만둘 생각도 없었는데 열심히 일하다 보니 더 의미 있는 일이 눈에 보여 CEO에서 물러났다. 이번에도 그랬다. 산업현장에 있었지만 책을 아홉 권 쓰고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학교와 연결이 됐다."

―교수로 일하는 것은 경영자보다 위험부담이 적을 것 같다.

"아니다. 경영할 때는 내 스스로 노력해 성과를 낼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도와서 그 사람들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벤처산업의 장래를 어떻게 보는가.

"창업 정신이 실종되고 벤처 스타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뜻이다. 벤처업계의 실력부족, 인프라 부족,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 때문에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벤처기업은 좋은 직원을 오래 붙들지 못하고 연구개발에 투자도 못하니 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에 고용된 사람이 130만명, 중소기업에 고용된 사람이 2000만명이란 점을 유념해야 한다."

―미국과 비교해 우리 보안산업의 전망은 어떤가.

"미국의 보안산업은 기술력이 있고 재정이 탄탄하고 규모가 크다. 게다가 IT 기업들이 전체 예산의 8%를 보안에 쓴다. 반면 우리는 1%도 안 쓴다. 무엇이든 관리를 해야 오래 쓸 수 있는 법이다. 관리하지 않고 사용만 하면 성수대교처럼 붕괴사고가 나게 돼 있다. 최근 일어난 개인정보유출 사고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관리 비용을 쓰지 않았으니 그런 사고는 예정돼 있었던 셈이다."

―현지에서 체험한 실리콘 밸리의 강점은 무엇인가.

"창의력, 다양성, 위험을 감당하는 힘이다. 또 전문성이 있다. 시행착오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니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또 초보 CEO들이 많아도 그 팀을 이루는 다른 사람들은 초보가 아니다. CEO를 비롯해 모두가 독학자이자 초보인 우리 벤처업계와는 사정이 다르다."

―공부를 마치자마자 귀국하는데, 즐거움을 위해 하는 일은 없나.

"마지막 과제물을 어제 겨우 제출했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 빨리 가느냐고 묻는다. 40대 중반에 공부하려니 마음이 좀 급하긴 하다. 골프도 못 배웠고 즐기기 위해 따로 하는 일은 없다. 그래도 제일 큰 즐거움은 풀리지 않던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집중해 해결했을 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