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어릴 적 가난은 과장됐다"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입력 2008.04.27 23:43 | 수정 2008.04.27 23:44

    이민웅 교수 "통설과 달리 경제적 기반 갖춘 집안 출신"

    현충사에 소장된 이순신 장군 영정. /조선일보 DB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은 어린이 위인전이나 TV 드라마에서 그려졌던 것처럼 가난한 집안 출신은 아니었다."

    충무공 탄신일(28일) 463주년을 맞아 국민들이 알고 있던 통설을 뒤집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순신 장군을 '난관을 딛고 일어선 입지전적 인물'로 묘사하려는 지나친 영웅화가 오히려 사실의 과장을 낳은 셈이다.

    이민웅 해군사관학교 교수는 최근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소장 정병웅) 주최로 열린 '《충무공 이순신 사료집성》 출판기념회 및 제10회 학술세미나'에서 발표문 〈충무공 이순신의 출세 배경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이순신 장군은 상당히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갖춘 양반 사대부 집안 출신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순신 장군의 집안에 대해서는 그 동안 '조부 때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해서 가정 형편이 빈한해 모친이 삯바느질을 하는 상황'이었다고 알려져 왔고, TV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묘사됐지만, 이 교수는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충무공의 집안은 유서 깊은 문반(文班) 가문이었다. 충무공의 현조부(고조부의 아버지) 변(邊)은 외교 전문가로서 세종대 이후 50년 이상 관직에 있으면서 가세를 일으킨 인물이었다. 증조부 거는 연산군의 스승이었으며 20여 년 동안 관직에 있었다.

    충무공의 조부 백록(百祿)이 조광조와 뜻을 같이 하다가 1519년 기묘사화 때 참화를 겪어 가세가 기울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백록은 1540년에도 생존해 있었으므로 이것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또한 충무공의 부친 정(貞)은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지만 그것이 '경제적 몰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최근 공개된 충무공의 모친 변씨(卞氏)의 문기(文記·땅이나 집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문서)에는 충무공이 형 요신(堯臣)과 함께 모친으로부터 외거노비 6~8명씩을 증여 받았으며, 충남 은진(恩津) 지방의 가옥과 토지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충무공에게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양반 사대부로서의 경제적 기반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충무공은 20세까지는 무과가 아니라 문과 공부를 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소양이 갖춰지게 됐다는 것이 이 교수의 해석이다. 이 교수는 "이순신은 아무런 뿌리 없이 불쑥 솟아난 개인이 아니라, 조선 전기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경수 청운대 교수는 "선행 연구가 주마간산식으로 처리했던 이순신의 사회적 배경 문제를 정치(精緻)하게 분석했다"고 평가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