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chosun] "DJ 노벨상 위해 국정원이 공작한 증거 있다"

입력 2008.04.25 21:52 | 수정 2008.04.27 10:23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03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美 망명 前 국정원 직원 김기삼

2003년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공작’ 의혹을 제기했던 전 국가정보원 직원 김기삼(44)씨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김씨는 4월 15일 미국 법원으로부터 망명 허가를 받았다. 이후 국내 언론과 접촉을 갖고 “김대중 정부가 국정원을 동원해 노벨상 사전 정지 작업을 벌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벨상을 받기 위해 북한에 불법자금을 송금하면서까지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는 등 DJ 노벨상 관련 의혹을 다시 제기하고 나섰다.

2000년 국정원에 사표를 내고 2001년 미국으로 간 김씨는 그 동안 인터넷에 올린 글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DJ 노벨상 관련 의혹을 간헐적으로 제기해왔으나 DJ 및 노무현 정권하에서 그의 주장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최근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새 정부가 공식적 조사에 착수하면 내가 보관하고 있는 자료를 제출하고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이 그동안 제기해온 의혹에 대해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는 태도다.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거주하고 있는 김씨는 지난 4월 21일 “26일(현지 시각) 워싱턴에서 DJ 노벨평화상 수상 공작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겠다”고 예고했다. Weekly Chosun은 워싱턴 기자회견에 앞서 그와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4월 21~23일 총 3차례의 통화를 통해 모두 2시간 가량 진행됐다.

4월 26일 워싱턴서 공식 회견 예정

김기삼은 누구

1964년 경남 밀양생으로 밀양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93년 국정원에 공채(7급)로 들어간 후 대공정책실, 해외조사실, 국정원장 비서실, 전략실 등 여러 부서를 거쳤다. 1998년에는 미국으로 연수가 펜실베이니아 주립 디킨슨 법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김씨는 1998년 DJ 정부 출범 후 국정원 ‘대외협력보좌관실’에 배치돼 DJ의 측근인 김한정 씨와 함께 일했다. 당시 DJ의 노벨상 수상을 위한 업무를 맡았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는 2000년 10월 국정원을 그만둔 이후 DJ 관련 의혹에 대한 정보수집을 벌이다 2001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인터넷 등에 글을 올려 “국정원 대외협력관실에서 DJ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한 공작이 진행됐다”고 폭로했고, 2003년 12월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2005년에는 국내 언론을 통해 안기부 불법도청조직인 ‘미림’에 대해서도 폭로한 바 있다. 김씨는 1994년 미림팀장이었던 공운영씨와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씨는 미림팀을 재건한 오정소 전 안기부 대공정책실장의 보좌관이었다.
김씨는 지난 4월 15일 망명 신청 4년4개월 만에 펜실베이니아주 이민법원으로부터 정치적 망명을 승인 받았다. 현재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아내, 두 자녀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2005년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평화상 공작 의혹
폭로 배경
“깊은 회의감에 사표… 미국으로 도피하기 전에 추가자료 수집”

김기삼 = “DJ가 노벨상을 받기 위해 국가 전체의 이익을 다 희생시킨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DJ는 위기에 몰린 김정일에게 돈과 물자를 주고 구해준 것은 물론이고 우리 외교부·국방부의 대북 감시기능을 스스로 약화시켰다. 나는 ‘DJ라는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것은 부끄럽고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해서 2000년 10월 사표를 던졌다.

DJ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국정원을 나온 다음에 노벨상 관련 의혹뿐 아니라, 임동원(전 국정원장)씨의 ‘이적성’에 대한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내용을 몇 가지 더 찾아내기도 했다. 나로서는 DJ정권 시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안(국정원)에 있는 선후배들하고 얘기하면서 정보를 수집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자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런 내용이 계속 청와대로 흘러 들어갔다. 그래서 (기밀)누설 혐의자로 지목 받는 상황이 됐다. 당시 내부 기밀을 발설하는 것은 징역 10년형까지 처벌받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래서 2001년 11월 미국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2000년 10월 국정원을 그만두고 2001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갈 때까지 1년 남짓 DJ 노벨상 관련 의혹과 임동원씨의 이적성 여부에 대해 정보를 수집했다고 밝혔다.

그가 미국으로 가 인터넷에 DJ 관련 의혹을 폭로한 것은 이 당시 수집한 정보를 기초로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DJ 햇볕정책의 ‘전도사’를 자처했던 임동원씨의 ‘이적성’을 조사했다고 밝혀 눈길을 끈다. DJ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1999년 5~12월)과 국정원장(1999년 12월~2001년 3월)을 지낸 임동원씨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이 정보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만든 주역’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임씨는 1999년 12월 국정원장에 취임하자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북한을 두 차례 극비리에 방문했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사전조율 작업을 했다.

국정원 안의 노벨상 공작 조직
“대외협력보좌관실서 주관…정교한 공작 설명할 자료 충분”

김기삼 = “1999년 DJ의 노벨상 수상을 위해 비밀리에 설치된 국정원 내 특별팀에 우연하게 합류하게 됐다. ‘대외협력보좌관실’이라는 곳이다. 거기서 DJ가 노벨상을 받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어깨 너머로 알게 됐다. 나도 노벨상 수상을 위해 해외언론 조정 등을 담당하는 업무에 종사했다.

내가 당시 자료를 갖고 나왔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자료가 좀 있다. DJ가 얼마나 정교하게 노벨상 수상을 위해 공작을 펼쳤는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자료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DJ가 어느 정도나 집요하게 노력했는지, 또 국정원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다 설명이 될 만한 내용이다. 국정원에서 노벨상 수상을 전담하는 부서가 있었고, 거기서 생산했던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아마 지금은 국정원에서는 파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한정씨(DJ의 공보비서 출신으로 DJ 정권 출범 후 국정원 대외협력보좌관실 담당관으로 채용, DJ 퇴임 후에는 동교동 대변인 겸 비서실장 역할을 하다 2005년 2월 미국으로 유학)가 그 동안 몇 차례 자료를 파기하라고 한 적이 있다.”

김기삼씨는 2004년 월간조선과의 미국 현지 인터뷰를 통해서도 자신이 일했던 ‘대외협력보좌관실’의 존재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대외협력보좌관실은 DJ 정부 초대 국정원장이던 이종찬씨가 1998년 5월 신설한 조직으로, 사무 여직원까지 포함해 10명 정도가 근무했다. 노르웨이에서 연수를 하고 파견 근무를 한 이모씨가 조직을 총괄했지만 핵심은 DJ의 측근인 김한정씨였다.

당시 미국 럿거스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고 귀국한 김씨는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 전략’을 담은 보고서를 DJ에게 전달했고 DJ는 이종찬 국정원장에게 지시해 김씨를 대외협력보좌관실의 담당관(5급 상당)으로 특채했다. 김씨는 노벨상 수상 로비 활동 내용을 이종찬 원장과 DJ에게 직보했기 때문에 국정원 내 일반 직원들은 김씨의 활동 내용을 전혀 몰랐다. 당시 김기삼씨는 김씨의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김기삼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대외협력보좌관실에서 일할 당시의 자료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최근 국내 언론과의 접촉에서도 “새 정부가 DJ 노벨상 관련 의혹에 대해 조사하면 보관하고 있는 자료를 제출하는 등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가 말한 자료가 바로 대외협력보좌관실에서 만든 자료라는 얘기다. 김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구체적 시점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김한정씨가 대외협력보좌관실의 자료를 파기하라고 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김씨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다는 자료의 성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기를 아직 꺼리고 있다. 다만 “기자들은 로비라는 표현을 쓰는데, 로비가 아니라 공작이다. 노벨상 수상을 위한 공작의 일부로 로비가 있었던 것”이라며 “나는 국정원의 공작 활동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대로라면 그가 가진 자료는 대외협력보좌관실에서 당시 얼마나 치밀하게 활동했는지를 보여주는 공작 프로그램 내용이거나, 공작과 관련된 자금 집행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를 잘 아는 주변 인사들은 “정보기관의 생리를 잘 아는 그는 살기 위한 ‘무기’를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국정원 내부 자료를 확보하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이번에 미국 법원으로부터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진 배경에도 ‘내부 고발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입증하는 자료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4월 26일로 예정된 워싱턴 기자회견에서 이 자료를 어느 정도나 공개할지는 불투명하다. 모든 자료를 낱낱이 공개할 경우 자신에 대한 ‘보호막’이 사라질 것으로 걱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활동들을 폈나
“수상 발표 2달 전 노르웨이 총리 이산가족 상봉장 극비리 초청”

김기삼 = “2001년 여름, 당시 한나라당 유흥수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2000년 8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노르웨이 총리가 비밀리에 초청됐었는가’하고 물은 적이 있다. 그 사실은 1급 비밀에 속하는 것이었다. 당시 키엘 마그네 본데빅 총리가 온 것은 김한정씨가 남북 1차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직접 보여주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눈물바다인 상봉현장은 세계적 이벤트였다. ‘노벨상을 줘야 되겠다’고 확신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본데빅 총리를 초청한 것이 노벨상 공작의 클라이맥스였다. 본데빅 총리는 노벨위원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래서 김한정씨가 비밀리에 본데빅 총리를 이산가족 상봉장에 데리고 간 것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DJ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확정(2000년 10월)됐다.

노벨상은 금전으로 로비를 할 경우 역효과가 난다. 그래서 당시 상당히 세련되게 접근했다. 속된말로 ‘쓰리 쿠션’ 방식인데, 직접적 현금 제공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관련자들을) 대접하는 것을 말한다. 노벨상 관련 인사들을 국내로 불러들여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도 그런 작업의 하나였다.”


김기삼씨는 2004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도 노벨상 공작과 관련한 대외협력보좌관실과 김한정씨의 활동에 대해 밝힌 바 있다. “김한정씨가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구지역 국가의 국민들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알리기 위해 햇볕정책과 민주투사로서의 인생역정, 외환위기 극복 등을 홍보하는 여러 책자를 현지 국가 언어로 발간하고 국제적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는 주장이었다. 실제 ‘김대중 옥중서신’은 1999년 8월 ‘감옥에서 대통령까지’라는 제목의 스웨덴어로 번역 출판됐고, 출판 경비 1억7400만원은 김한정씨가 스웨덴 주재 한국대사관에 건넸다고 한다. 당시 김한정씨가 쓴 돈은 국정원 예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월간조선 취재 내용이었다.

김씨의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의 엘리아센 스웨덴 외무부 차관(1998년 1월), 벌커 스웨덴 국회부의장(1998년 3월), 슐만 노벨재단 사무총장(1998년 3월과 1999년 12월) 등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유력 인사들이 비밀리에 한국에 초청됐다고 한다. 김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2000년 8월 본데빅 노르웨이 총리의 이산가족 상봉장 극비리 초청이 ‘1급 비밀’이었다는 것을 처음 밝혔다.


대북 송금액 규모
“지난 10년 송금액 다 합치면 200억달러는 될 것”

김기삼 = “미국에 와서 믿을 만한 소식통을 통해 확보한 바로는 대북 송금액은 15억달러였다. 증거는 없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대북 송금액과 관련해 이런저런 소문이 많았다. 그중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이 30억달러를 요구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설득력이 있다. ‘러시아에 차관을 준 액수만큼은 김정일이 받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한참 후에 대북 송금액이 15억달러라는 말을 듣고 대충 맞춰 보니까, 그 액수(30억달러)가 나왔다. 정상회담 비용 등으로 15억달러가 갔고 금강산 관광 등 다른 루트를 통해 사실상 15억달러가 더 간 게 아닌가 싶다.

북한에 보낸 돈에 관해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은 정몽헌 회장이다. 자기가 (돈을) 보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정 회장의 죽음에 대해서도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누군가 그의 입을 막을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나도 그동안 많은 위협을 느꼈다. 미국에서도 폭로를 하고 나니까, 집에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위협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대북송금액은 노무현 정권에서 간 것까지 합하면 드러난 것만 100억달러 정도 되지 않겠는가. 밝혀지지 않은 것도 포함하면 200억달러는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에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이 ‘지난 10년간 북한에 간 돈하고 물자의 값어치가 80억달러 정도 된다’고 발표한 걸 봤는데, 비밀스럽게 간 것은 제외된 내용이라고 본다. 결국 지난 10년간 죽어가던 김정일을 살려준 거다.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상식 선에서 판단해 볼 때 북한으로 건너간 돈은 군사적으로 활용되지 않았을까 싶다. 크게 볼 때는 북한에 뒷돈을 대준 것도 노벨상을 위한 작업이라고 봐야 한다.”

김씨는 최근 국내 언론과의 접촉에서 김대중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에 보낸 돈이 모두 15억달러라는 주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김씨는 이번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주장했다.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미국에 와서 믿을 만한 소식통을 통해 확보한 내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2003년 대북 송금 특검이 밝힌 불법 송금액은 4억5000만달러였다. 

국정원에 바란다
“이제라도 제대로 반성해야…아니면 또 다른 실패의 시작”

김기삼 = “지난 7~8년간 생업도 팽개치고 이 일에 매달려 왔다. 그야말로 남편 노릇, 아비 노릇 한번 못하고 살았다. 사실 좀 지쳤다. 하지만 내가 시작했던 일인 만큼 마무리를 지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지금 처지로는 (한국에) 들어가고 싶어도 입국할 수 없다. 기소(국정원법 위반)가 돼 있어 들어가면 체포하겠다는 것 아닌가. 다만 새 정부가 이 문제(DJ 노벨상 관련 의혹)에 대해 정식으로 조사하고 나에게 협조를 구한다면 못 들어갈 이유가 없다. 정부가 얼마나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지 볼 것이다.

나는 지난 10년간 국가정보원이 ‘반역의 종범’이 됐다고 본다. 반역 정권에 봉사하기 위해 자신의 본연의 임무인 국가안보를 수호하는 데는 소홀했고, 오히려 국가안보를 훼손하는 일에 열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국정원이 바로 서려면 지난 10년간의 행적에 대해서 제대로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새로운 출발이 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실패의 시작이다.”

DJ 측 반박
“김기삼은 말단 직원에 국정원법 위반자…
일고 가치도 없는 허무맹랑한 얘기들”

지난 4월 15일 10박11일간의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은 김기삼씨의 노벨상 관련 의혹 제기에 대해 “허무맹랑하다”는 반응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수행 중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씨의 노벨상 의혹 제기는 허무맹랑한 주장이고, 일고의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박 전 실장은 “대북 송금 특검에서 현대가 5억달러를 상업베이스 차원에서 7가지 사업의 대가로 지불했다고 결론냈는데, 15억달러를 제공했다는 것은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박 전 실장은 또 “노벨평화상이 로비에 의해 결정된다면 노벨로비상이 아니겠냐”며 “국정원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범법자인 김기삼씨는 국정원 말단 직원이었고, 그런 의혹을 제기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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