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빌딩 지하실에 있는 '블루머스' 스튜디오. 각종 음향기기와 컴퓨터 사이에 파묻힌 중년 남자가 대형 모니터로 '만화'를 보고 있다. 몇 번씩 같은 장면을 되돌려 보고는 빠른 손놀림으로 버튼을 조작한다. 국내 최고의 애니메이션 음악 작곡가 방용석(49) 감독이다. 그는 '마리이야기'의 이성강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물 거인'에 삽입될 주제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올 6월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개막하는 엑스포 때 한국관에서 상영될 작품이다.

'달려라 하니' '포켓몬스터' '디지몬 어드벤처' '탑블레이드' '탱구와 울라숑' '바다의 전설 장보고' '하얀마음 백구''드래곤볼' '영혼기병 라젠카' '닥터 슬럼프' '검정고무신' '카드캡터 체리' '태권왕 강태풍' '마일로의 대모험' '브리스톨탐험대'….

23년간 300곡이 넘는 애니메이션 OST를 만든 방용석 음악 감독이 서울 논현동의 자신의 작업실에서 주제가 작업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동영상 chosun.com

방 감독이 주제가를 만든 애니메이션 목록이다. 그는 23년간 300곡이 넘는 '애니 OST'를 만들었다. 1980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어린 시절 한두 번쯤 그가 만든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1990년대 이후 국내에 소개된 애니메이션 가운데 70%가 그가 만든 음악을 주제가로 사용했다. 그가 만든 주제가는 전형적인 동요풍의 노래를 비롯해 재즈, 힙합, 클래식을 넘나든다.

방용석 감독이 애니메이션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8년. 당시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어린이들 사이에서 스포츠 붐이 크게 일었다. 그 중심에 TV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가 있었다. 광고 음악을 만들던 방 감독은 '달려라 하니'의 주제가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방송사의 대대적인 홍보와 마케팅 전략에 맞춰 당시 최고의 가수 이선희가 주제가를 부르기로 내정이 된 상태였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는 원래 작곡을 하고 가수를 섭외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선희씨의 보이스 컬러에 맞춰 노래를 만들었지요. 이미 20년도 넘은 일인데, 요즘도 동네 골목길을 지날 때 아이들이 '달려라 하니'를 부르는 걸 들으면 기분이 참 묘합니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인 방 감독은 미혼이다. 방 감독은 "그동안 5명 정도 결혼하고 싶었던 여성들이 있었으나 이상하게 막판에 틀어졌다"며 "이젠 팔자려니 하고 산다"고 했다. 그는 "아이를 키워보지 않고 어떻게 아이들 노래를 만드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다"며 "아마도 내 마음이 아직 어린아이 같아서 비슷한 눈높이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며 껄껄 웃었다.

방 감독은 "어렸을 때 만화영화를 보며 따라 부르는 주제가는 평생을 함께하는 추억이라는 점에서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느낀다"며 "꿈과 희망, 재미와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만들 때는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줄거리와 주인공을 파악해야 제대로 된 음악이 나온다는 것. '톤 앤드 매너(tone & manner·전체적인 분위기와 방법론이라는 뜻의 광고 용어)'를 지탱해줄 테마 부분을 먼저 만들고 거기에 살을 붙여가는 방식을 쓴다.

"포켓몬스터 주제가를 작곡할 때는 '피카 피카 피카츄, 피카 피카 피카츄'라는 부분을 먼저 만들고 거꾸로 곡을 붙여나갔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한곡 작곡하면 450만~50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가수 섭외를 포함해 '마스터 테이프'로 완성본을 만들어주는 조건이다. 그는 "CF의 경우 30초짜리가 보통 500만원 정도"라며 "주수입은 CF 음악이고 애니메이션은 돈벌이보다는 소명 의식을 갖고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애니메이션 주제가들을 모아 10장의 음반을 냈다. 남들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지만 '포켓몬스터'는 12만 장이나 팔렸다.

방 감독은 원래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다. 중앙대 작곡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유학을 다녀와서 학교에 남으라"는 교수님들의 권유를 받았지만, 그는 상업 음악에 뛰어들었다.

"제 꿈은 음악을 실용화할 수 있도록 체계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 뛰어들었지요."

그는 1987년 광고 음악 감독으로 입문했다. 국내 1호 'CF 음악감독'이었다. '사부(師父)로 모시는' 김도향씨가 이끌던 서울오디오에서 수석 음악 감독으로 5년간 일했다. '미니카세트 요요'가 그의 첫 데뷔 작품이었다. 대학에 출강하며 클래식 음악 강의도 함께 했다.

미국 USC(사우스캘리포니아대)에서 재즈와 영화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1994년 광고 음악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더 큐'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1997년 '헐리우드 매너'로 이름을 바꿨고, 2006년 뉴 멀티미디어 콘텐츠 개발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루머스'라는 회사로 키웠다.

그가 만든 광고 음악만 2000개가 넘는다. '꽃을 든 남자' '카스 맥주' '삼성카드' '웅진코웨이' 등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음악들이 우리 생활 주변에 넘쳐난다. 한때 가요계에 '발을 담근' 적도 있다. '어느 날 문득' 등이 담긴 가수 유열의 4집 앨범 작업을 함께 했다.

"언젠가 영화음악에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광고 음악이나 애니메이션 음악이나 모두 어떤 느낌을 주는 거잖아요. 내가 만든 애니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들의 가슴에 진하게 남을 수 있는 그런 영화음악을 한번 만들어봐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