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터뷰] "오만과 독선의 진보… 미운털이 덜 빠졌다"

입력 2008.04.13 22:27 | 수정 2008.04.14 07:02

유인태의원 거침없는 고백 '민주당이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타협 모르는 철부지들, 포퓰리즘에는 영합
국민들에게 늘 성난 모습만 보여줘서 패배
인수위 失政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라도 건져
盧, 인터넷으로 떴지만 인터넷에 갇혀 실패
무작정 FTA 반대 '경직된 진보' 이젠 안통해"

통합민주당 유인태 의원이 13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4월 총선 패배와 지난 5년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정치권에서 통합민주당 유인태 의원은 독특한 존재다. 거침없는 화법과 허를 찌르는 유머, 여야(與野)를 넘나드는 인간 관계 때문인지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몰린다. 노무현 정부의 첫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고, 또 이명박 대통령과도 '사심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사이로 알려졌다.

유 의원은 4·9총선에서 한나라당 김선동 후보에게 패했다. 총선 패배 이틀 후인 지난 11일 그는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총선에서 패한 것보다, 나 자신마저 해서는 안 될 뉴타운 사업 공약을 한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13일 오전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유인태 의원 지역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웠는가?

"오면서 봤겠지만 내 선거 포스터에도 '뉴타운 지정'이란 것이 공약으로 들어가 있다. 국회의원은 지역구를 대표하지만, 중앙정부를 상대하지 않는가? 그런데 뉴타운은 서울시 사업이다. 국회의원 후보들이 저마다 이런 것을 공약하면서, 서울에 나온 후보들이 제각각 '오세훈 서울시장 의 약속을 받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이런 게 말이 되나? 그래서 부끄럽다는 것이다."

―4년 전 국회 과반 의석(152석)을 얻었던 민주당 세력이 이번에는 81석밖에 얻지 못했다.

"우리에게 박힌 미운 털이 덜 빠진 것 같다. 진보·개혁 세력은 지난 정부 5년간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오기와 독선의 이미지로 국민에게 비쳐졌다. 이 때문에 재·보궐선거에서 연패했고 대선도 패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총선을 치렀다. 사실 대선 직후에는 수도권에서 1석도 챙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는데, 지난 석달 동안 이명박 대통령과 인수위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결과는 더 참담했을 것이다."

―왜 미운 털이 박혔다고 보는가.

"국민들이 열린우리당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성난 모습'이라고 하더라. 달리 말하면 오만과 독선이다. 예를 들어 2004년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밀어붙였다. 우리 입장에선 당위로 느꼈을지 몰라도, 보안법 폐지를 우려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 엄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당시 이부영 의장이 한나라당 지도부를 설득해서 '타협안'을 만들어왔는데, 이걸 내부 강경파가 거부했다. 이부영씨는 국보법으로 가장 오래 옥고를 치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타협안을 만들어왔다고 비난을 하고 난리를 쳤다. 한마디로 철부지들이었다."

―그래서 17대 국회 초선들에게 '탄돌이' 별명까지 붙여진 것인가?

"17대 초선들이 과거 국회의원보다 자질 면에서 꼭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과거 돈을 내거나 제왕적 총재의 '마당쇠'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다. 문제는 4년 전 총선에서 탄핵 역풍 덕분에 우리 힘보다 더 큰 '과잉 의석'이 주어졌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 점이다. 국보법 논란 때도 보면, 이들은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며 타협을 거부하더라."

―그들을 통제할 수 없었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당·청(黨·靑)분리라며 당에 대한 통제를 포기했다. 언젠가 '내 공천장으로 전국 어디에서도 안정되게 당선될 곳이 하나도 없다'는 말도 하더라. 지역기반을 갖춘 3김(金)씨와 자신의 처지가 다르다는 것을 의식한 얘기다. 결국 이런 이유들로 해서 17대 의원들에겐 무한대의 자율이 주어졌는데, 그것이 대중 영합주의(포퓰리즘)로 흘렀다. 그러면서 말이 여당이지, 당 상황은 무질서로 치달았다."

―17대 국회를 평가한다면.

"17대 입법 중 잘못된 것의 대부분은 포퓰리즘에 휘둘린 결과다. 국가의 재정을 따지기보다는 목소리 큰 이익집단의 눈치를 보곤 했다. 당 총재가 공천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 만큼 의원들은 다음 선거 때문에라도 더 대중의 인기에 신경을 쓰는 경향을 보였다."

―누구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깊다. 그를 어떻게 평가하나?

"사심(私心)이 없고, 대의를 위해 자신을 던질 줄 아는 것에 대해선 높이 평가한다. 3당 합당 때 따라가지 않고 부산에서 출마해 낙선한 것을 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오랜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고 보지 않는다. 그런 용기와 결단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또 그의 재임 중 권력의 비호를 받는 비리가 없었던 것도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임기 후반에 접어들수록 인사(人事)에서 초심(初心)을 지키지 못했다. 또 갈수록 오기와 독선에 빠져들어갔다. 예를 들어 임기 말에 추진한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해 당시 여당의 원로와 의원들, 대선후보들까지 모두 반대하고 말렸다. 그런데도 무조건 밀어붙이더라."

―노 전 대통령이 왜 오기와 독선에 빠져들었다고 보나?

"노 대통령은 아마 인터넷과 노사모가 없었다면 그냥 평범한 정치인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들에 집착했다. 친노 측근들과 이메일로 현안들을 논의하고, 저녁에 2시간씩은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을 하고 그랬다고 하더라. 여당 원로들이 전하는 여론보다 인터넷을 더 중시한 것 같다."

―청와대를 떠난 후 노 대통령과 따로 만나지 않은 이유는 뭔가.

"2004년 중반, 국회의원 당선되고 한 번 만나긴 했다. 그때 '정무수석 부활' 등 몇가지를 주문했는데, 안 받아들였다. 나중에 주변 사람들이 대통령을 만나 말씀 좀 드리라고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나를 찾지 않는데 내가 찾아가서 무슨 말을 한들 통하지도 않을 것 같아 포기했다.

―임기 후반의 인사에서 초심을 잃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지금껏 5년 단임제 대통령들이 비슷한 길을 걸었다. 초반에는 최고의 인재를 뽑겠다며,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best of the best)'를 외치다 점점 측근 위주로 간다. 노 대통령도 초기 청와대에는 반기문·김희상 등을 기용했었지만, 갈수록 386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 위주로 인사를 했다."

―진보·개혁이란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나.

"그렇다."

―작년 대선에서 이번 총선까지의 큰 흐름은 정반대 아닌가?

"민주화 운동 경력이 인정 받는 그런 프리미엄이 사라진 것은 맞다. 운동권 출신에 대한 피로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운동권이라고 해서 배척하는 게 아니라, 지난 5년간 우리가 보여준 오만과 독선 같은 잘못된 행태에 벌을 준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진보·개혁 세력의 모습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경직된 진보는 안 된다. 지금 시절에 FTA(자유무역협정) 반대한다고 단식 농성하는 그런 진보로는 통하지 않는다. 지금은 진보가 위축되고 기(氣)가 죽었지만, 그 가치는 어느 시대에나 유효하다. 시대 흐름에 맞게 유연해져야 한다."

―세대 교체의 필요성은 없나.

"5년 후 대선에서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후보군이 나와줘야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 낡은 틀에 경직되지 않은 새로운 진보가 나와야 한다."

유인태 의원은…

서울대 68학번으로 입학해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4년 5개월간 복역했다. 1988년 당시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다른 독립적 진보 노선을 표방한 한겨레민주당으로 첫 출마해 낙선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국회에 입성했으며, 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복귀를 선언하며 만든 새정치국민회의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이듬해인 96년 15대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함께 '꼬마 민주당'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첫 정무수석을 지냈고,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서 재선에 성공했다. 청와대 재임 시절 노 대통령에게도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고, 대통령 앞에서도 꾸벅꾸벅 졸기도 해 '엽기 수석'이란 별명을 얻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를 제작한 영화사 기획시대 유인택 대표가 그의 친동생이다.

유인태 전 청와대 정무수석. /주완중 기자


노무현 정부 초대 정무수석을 지낸 통합민주당 유인태 의원이 13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4월 총선 패배와 지난 5년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주완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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