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이 본 한미일 야구①…"가장 세밀한 데이터 야구는 미국"

입력 2008.03.30 13:18 | 수정 2008.03.30 13:32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조선일보 DB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과 ‘한국야구, 일본야구, 미국야구의 차이’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것은 지난 3월 7일부터 14일까지 열렸던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 최종예선 때다.

일본은 당시 출전하지 않았는데, 전력 분석원 4명이 베이징올림픽 본선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한국과 대만, 캐나다, 호주, 멕시코의 전력을 집중분석하고 있었고, 일본야구대표팀 감독 호시노 센이치씨가 직접 현장을 방문했다.

일본에서 탤런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열혈감독’ 호시노씨의 행차에 일본 야구기자들과 방송 인력 20여명이 대만에 동행해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고 지면과 화면으로 일본 야구팬들에게 라이브로 소개했다. 

당시 네이버에 칼럼을 기고하는 기무라 고이치씨와 한국야구와 일본야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한국 야구에 해박하고 애정이 깊은 기무라씨와 나눈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것은 4대3이란 스코어가 어떤 의미를 갖느냐였다. 한국은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에 4대3 한 점차로 패했다. 아쉬운 패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실제 존재하는 한국과 일본 야구의 수준 차이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가가 핵심이었고 궁금했다. 과연 이 4대3이란 스코어 차이가 어떤 깊이와 의미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야구의 메카라 할 메이저리그를 보유한 미국야구의 벽을 과연 한국이나 일본이 넘을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지난해 코나미컵에 출전했던 한국시리즈 우승팀 SK는 일본 시리즈 우승팀과 1승1패를 나눴지만, 결국 결승에선 주니치에 한 점 차이로 졌다. 김성근 SK감독은 재일교포출신으로 이승엽이 지바 롯데에 있던 시절엔 코치로 일본 프로야구를 현장에서 경험했다. 그는 현재 SK의 타격과 투수, 수비 코치 3명을 모두 일본 프로야구 출신으로 기용하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국내 야구 뿐만 아니라 일본 야구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 21일(금요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SK는 삼성과 시범경기를 했는데, 삼성이 8대6으로 이겼다. 경기가 끝나고 김성근 감독에게 “일본야구와 미국야구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내심 SK를 ‘한국 속의 일류(日流)’라고 보고, 메이저리그 출신 감독을 영입한 롯데와 팀을 꾸려가는 방식과 훈련, 실제 경기에서 나타나는 다른 점을 묻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김 감독은 즉시 “아무 차이가 없죠”라고 대답해 다음 질문을 내놓기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국야구와 일본야구, 미국야구를 놓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고, 이번 주 다시 인천문학구장을 찾아갔다.

이날 취재의 일부는 본지 25일자에 ‘SK의 일본인 코치들이 본 韓·日야구 차이’, “일본 야구의 헝그리 정신이 더 강해”란 제목으로 사진과 함께 6장 분량으로 나갔지만, 정작 김성근 감독과 나누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를 소개하지는 못했다.

김성근 감독, 일본인 코치들과 나눈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 가급적 있었던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분들의 생각이나 표현 자체에 취재하던 기자까지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은 인천 문학구장 SK 감독실로 기자를 안내했다.

-지난 금요일에 드렸던 질문 다시 하겠습니다. 미국야구와 일본야구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야구는 같은 거고, 체격 차이가 있어요. 야구를 파워와 기교로 나눠서 말하는데, 저는 파워보다는 체격이란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아요. 미국 선수들이 리치도 길고, 손가락 길이도 더 길죠. 바깥쪽 공을 던져도 메이저 선수들은 리치가 기니까 쉽게 맞추고, 힘이 좋으니까 가볍게 넘길 수도 있죠. 일본이나 한국 선수들과 근본적으로 체격이 다른 거죠. 투수도 마찬가지죠. 집게와 검지로 공을 잡아 변화구를 던지거나, 또 손 모양을 달리해서 체인지 업을 던지거나 다양한 구질을 훨씬 쉽게 구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손가락 길이와 관계가 있어요. ”

-일반인에겐 미국 하면 자율야구를 떠올리지 않습니까? 한국이나 일본과는 분위기부터 엄연히 다르고요.

“어디나 다 관리 속에 자율이 있는 겁니다. 미국야구는 사실 어마어마한 시스템 속에서 체계적으로 돌아갑니다. 미국에선 팀에서는 팀 훈련만 하지만, 개인 훈련은 개인들이 다 알아서 혼자 하지요. 그걸 자율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 메이저에서는 뛸 수 없으니까.”

김 감독은 여기서 약간 다른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한국은 문화적으로 어려서부터 부모가 시키고 선생님이 시켜야 뭘 하잖아요. 학생들이 학원에서 공부를 많이 다니지만 내가 필요해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아요. 남의 지시에 따라서 뭘 하는 버릇이 생기는 거죠. 야구도 어려서부터 이렇게 습관이 배어있으니까 프로가 돼서도 팀에서 개인훈련까지 챙기게 되는 거죠. 한국은 일본보다 이런 점이 더 심해요. 제가 일본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감독 선생님을 훈련 할 때는 본적이 거의 없어요. 경기 때만 볼 수 있었죠. 훈련은 대부분 자기들이 알아서 했고요.”

-일본 코치들을 타격과 투수, 수비 등 3명이나 쓰는 이유는 뭔가요. 아직도 일본 야구에 배울 점이 그렇게 많은 겁니까?

“우리보다 기술이 위니까, 노 하우를 갖고 있어요. 사실 저는 메이저리그나 미국 사람도 쓰고 싶어요. 그런데 제 경력이 일본에 지인이 많고 과거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많으니까. 언어적으로도 그렇고. 일본에 배울 점이라는 건 사실 시행착오를 한 경험이 우리 지도자들보다 많다는 거에요. 그 경험의 차이를 통해 선수들에게 더 많은 것, 좋은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본야구 하면 디테일이 강하다, 데이터에 강하다 이런 인식이 있습니다. 김성근 야구도 이런 일본야구의 영향을 받아 디테일에 강하다는 것이고요.

“그건 착각이에요. 사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세밀한 야구를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국야구는 선수들과 경기에 대한 방대한 데이트를 축적하고, 분석해서 경기와 훈련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야구가 그런 면에서 오히려 미국을 보고 배웠지요. 왜 타자나 투수의 쿠세(버릇이나 습관을 뜻하는 일본어)를 분석해서 상대에 대한 대응을 하는 야구 있잖아요. 그게 사실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타자로 4할을 쳤던 테드 윌리엄스가 쓴 책에서 본격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에요. 윌리엄스는 ‘피처가 공을 던지기 전에 이미 어떤 공을 던질 지 결정돼 있다’고 했지요. 피처의 동작이나 습관에는 어떤 공을 던지겠다는 사인이 이미 담겨 있다는 겁니다. 일본 라쿠텐의 노무라 감독이 이 영향을 강하게 받았어요. 데이터 야구의 대표적인 노무라 감독은 여기서 힌트를 얻어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발전을 시킨 거지요.

이 사실만 봐도 디테일에 강하고, 데이터에 강한 야구는 미국 야구가 그 뿌리입니다. 미국에서는 내일 어떤 팀과 경기를 한다고 하면 정찰기록원들이 분석한 자료를 가지고 함께 미팅을 합니다. 우리는 스코어러라고 하면 대개 코치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하지만, 미국은 달라요. 감독이 하든가, 커리어가 많은 사람들이 하지요. 미국은 3, 4번 미팅을 거쳐서 상대 팀을 분석한 자료를 가지고 실전에 나가는 거에요. 한국이나 일본은 한 번 미팅하면 끝이죠. 미국이 더 세밀하다는 겁니다.”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는 1918년 샌디에고에서 태어나 2002년에 작고했다. 1939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메이저리거로 출발해 1960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타율 0.344, 홈런 521개, 타점 1839점을 기록했다. 그가 1941년 기록한 0.406의 타율은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대 타율이다. 두 차례 메이저리그 MVP(1946, 1949년)에 선정됐고, 5차례 올해의 선수(1941, 1942, 1947,1949, 1957)에 선정됐다. 1966년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됐다. 그는 두 차례나 해군 조종사로 2차 대전에 참가해 현역 생활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역대 최고의 타자로 꼽힌다. 한 야구 평론가는 “증권 투자가가 증시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테드 윌리엄스는 타격을 했다”고 할 만큼 연구하고 공부하는 타자였으며, ‘히팅의 과학 The Science of Hitting’같은 야구에 관한 명저들을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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