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쟁력 있는 '명품 인재' 육성… 우리 한판 겨뤄봅시다"

입력 2008.03.28 10:02 | 수정 2008.03.28 10:42

● 취임한 지 두 달… '영원한 맞수' 고·연대 총장 인터뷰

연세대와 고려대는 간혹 총장(總長) 취임 날짜까지 경쟁한다. 지난달 1일 바로 같은 날에, 양대 사학의 신임 총장이 나란히 취임했다. 하지만 김한중 연세대 총장·이기수 고려대 총장의 전공과 스타일은 금방 봐도 다르다. 이제 56일이 지났다. 이들은 대학의 당면 과제, 교수 경쟁력, 학생 선발 문제, '비싼' 등록금 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됐을까. '영원한 맞수' 두 대학의 총장을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인터뷰했다.

20일 조선일보 회의실에서 김한중 연세대 총장(왼쪽)과 이기수 고려대 총장이 대담을 마친 뒤‘영원한 맞수이자 친구’로서 선의의 경쟁을 펼칠 것을 다짐하며 손을 맞잡고 있다. ☞ 동영상 chosun.com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서로 정말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가?

김한중 연세대 총장(이하 연대)= "연고전(延高戰) 때 부르는 '친선의 노래'에 "영원한 맞수이고 친구"라는 가사가 있다. 연대가 세계 100위권 대학에 들겠다는 목표를 세워도, 고대는 없이 우리만 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양교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 경쟁할 때 그 목표에 닿을 수 있다고 본다."

이기수 고려대 총장(이하 고대)= "연대가 있어서 고대가 있고, 그래서 행복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사학의 양대 산맥이고 대학 문화를 이끌어가는 주역으로서 서로 좋은 점은 본받으며 함께 나아갈 것이다. 고연전(高延戰)의 경우 앞으로는 취미로 운동하는 학생들로 아마추어팀을 구성해서 양교의 우애를 다지는 방법도 생각 중이다."

―상대에 대해 부러운 점은?

고대= "연대에 재직하고 있는 분들의 단합이 우리보다 훨씬 잘 된다고 생각한다. 김 총장 취임식이나 신축 건물 기념식 등에 가보니, 역대 총장·재단이사장들이 다 함께 나와 축하해 주더라. 정말 화목하고 좋아 보였다. '국제화 마인드' '신사도' 같은 것도 우리보다 앞서 있지 않나."

연대= "고대 교우회가 어떤지 잘 알지 않나. 고대는 바닥에서부터 강한 응집력을 갖고 있다. 그러니 서울시장이 연이어 나오고 대통령이 당선되는 거다. 그런 면이 너무 부러워 우리 신입생들을 전부 '해병대 극기훈련'에 보내볼까도 생각해봤다(웃음)."

―기업과 마찬가지로 대학도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고대= "전통적으로 '고대' 하면 '촌사람' 이미지가 있었다. 이를 바꿔보기 위해 역대 총장들이 '사색하는 고대' '큰사람 만들기' '막걸리에서 와인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지금은 '국제화'가 당면 과제다. 거기에 '민족혼'을 가미시킬 것이다."

연대= "우리는 이미지 '변신'보다는, 원래 갖고 있던 '국제화에 앞선 대학' '세련되고 새로운 대학' 이미지를 되찾아야 한다. 대학의 다양성과 자율을 바탕으로, 성과뿐 아니라 과정까지 중요시하는 '품위 있는 개혁'을 해나갈 것이다."

―1000만원대로 진입한 등록금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대학을 운영하는 총장으로서 이를 어떻게 보나?

연대= "국내 대학 등록금은 1인당 GDP의 50%에 못 미친다. 선진국은 70~100%에 달한다. 연대는 학교 재정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 수준이다. 나머지는 교수들이 외부에서 받아오는 연구비, 기부금, 법인전입금, 이자 수입 등으로 충당한다. 대학 실정이 이렇게 어려운데도 시민단체와 야당까지 가세해 등록금을 사회문제로 확산하는 데는 불만이 있다."

고대= "양질의 교육을 하려면 돈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고대는 학교 재정에서 등록금 비중이 43.6%에 불과하다. 사립대학은 국립대학보다 훨씬 더 재정 압박이 심하다. OECD 국가 차원에서 보더라도 국내 대학 등록금은 비싼 게 아니다. 다만 외부 기부금으로 대학 내 건물을 짓는 것보다, 먼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 수혜율을 높이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비싼 등록금 내고 정작 대학에서 별로 배우는 게 없다는 게 진짜 문제 아닌가.

고대= "천재 데려다 바보 만드는 게 대학이라는 말도 많이 듣는다. 그래서 국제경쟁력 있는 '명품 학생'을 길러내는 것이 총장으로서의 포부다. 대학은 우선적으로 교육기관이다. 교수들에게 너무 연구에만 치중하지 말고 교육에 힘쓰라고 당부한다. 입학식부터 2월로 당겨 한 학기 16주를 철저히 지키게 할 생각이다. 학생 때는 '뼈 빠지게' 공부한다는 생각을 가져라, 고3 때의 절반 이상은 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강조한다."

연대= "지금 우리 대학들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기대 수준을 따라가는지에 대해선 반성할 점이 있다. 국제화 시대의 진정한 교육 목표는 우리 학교 출신이라면 세계 어느 기업에서도 우수한 인재로 인정받고 스카우트되는 것이다. 영어와, 중국어·일본어 중 하나, 적어도 2개 언어에 대해서는 졸업하려면 마스터해야 하는 '졸업 인증제'를 실시할 것이다. 그리고 다독(多讀: 많이 읽고)·다색(多索: 많이 생각하고)·다작(多作: 많이 쓰는)의 '삼다(三多)정책'을 강화하겠다."

―대학 재정 얘기를 했는데, '기여입학제'는 어떤가?

고대= "입학시험을 따로 치르면서, 돈 받고 입학시키는 건 부정입학이다. 그러나 가령 대학에 큰 건물을 하나 지어줬다면, 한 세대나 두 세대 뒤에 그 자녀에게 입학권을 주는 정도는 허용돼야 하지 않을까."

연대= "한동안 연대가 기여입학제 기치를 들었다. 전국을 돌면서 이슈화했는데, 결국 못했다. 하지도 못할 것을 떠드는 분들이 제일 바보다. 전형 요소를 점수화해서 일렬로 세우고, 또 정원으로 자르는데,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기여입학제가 가능하겠는가."

―현행 학생 선발 제도에는 만족하는가? 본고사에 대한 생각은?

연대= "기업에만 '전봇대'가 있는 게 아니다. 학교 운영 현장의 곳곳에 있다. 고교 간 학력 차가 분명히 있는데, 교육부는 '고교 간 학력 차 인정 안 된다'고 했고, '본고사 안 된다, 수능은 등급제로 전환하라'고 했다. 대학이 우수한 학생들을 가려낼 수단을 막아버렸다. 대학에 자율권을 주면 오히려 입시가 단순화될 것이다. 또 '학부별'로만 뽑도록 모집단위를 규제해놓은 것도 풀어야 한다. 왜 이것까지 정부가 관여하나."

고대= "현재 입학처에서 중·고교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대학 입시제도를 연구하고 있다. 대학이 진정한 자율권을 갖게 되면, 좋은 학생을 뽑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적용할 것이다."

―학생 경쟁력만큼 교수 경쟁력도 중요하다. 교수 강의평가 공개에 대한 입장은?

연대= "교수 강의평가는 학생들의 반응을 토대로 강의를 개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점수를 다 까발려서 교수들을 서열화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강의마다 분야와 난이도가 다른데, 교수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건 교육적이지 않다고 본다."

고대= "동감이다. 배우는 입장에 있는 학생들의 평가를 절대적인 평가인 것처럼 모두 공개하는 건 목적에 합당하지 않다. 한정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고대의 경우 3년 연속 강의평가 하위 5%에 들 경우 그 교수가 맡는 강의 수를 제한하고 있다."

―연구실적, 강의평가 등에 의해 교수들을 재임용에 탈락시킨 경우가 있나?

연대= "현행법으로는 교수 연구업적 등을 평가해 해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미국의 경우 교수들 노동시장이 매우 유연해 이 대학에서 테뉴어(정년보장)를 못 받으면 다른 대학으로 가서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도 있지만, 한국은 탈락과 함께 교수 인생이 끝이다. 지금처럼 법적으로나 노동시장 차원에서나 경직된 상태에선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다."

고대= "교수에 대한 평가를 연구·교육·사회봉사의 세 가지 차원에서 하려고 한다. 교수 개개인이 이 셋 중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고, 학교가 이를 장려하는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 연구를 잘하는 교수는 강의시간을 줄여주고, 외부 연구비를 따오거나 학회 회장을 맡는 등 사회봉사를 잘하는 사람은 거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식이다."

―정부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고대= "이명박 대통령이 대학에 자율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부분을 반드시 지켜주리라고 믿는다. 넘겨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을 갖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율권을 행사하겠다."

연대= "정부가 기업의 전봇대만 뽑지 말고, 대학과 관련된 정부의 모든 규제를 뿌리뽑아 줬으면 한다. 새 정부가 확실한 철학을 갖지 못하면 대학 자율화는 또 물거품이 될 것이다. 사학법 개정도 시급하다. 문제 있는 학교들을 규제한다면서 잘되고 있는 학교들까지 흔들고 있다. 이런 평준화 논리에 대해 정부가 깊은 성찰을 해주었으면 한다."

―양대 사학의 총장으로서 두 분이 서로에 대해 의식을 많이 하는 편인가?

고대= "의식을 많이 한다. (연대 총장을 향해) 너무 잘하니까."

―두 분이 술 실력을 한번 겨뤄봤나?

연대= "(고대 총장을 향해) 체구를 보면 알 것 아닌가. 나는 다른 종류의 주님을 더 좋아한다."

고대= "행사장에서는 몇 번 만났지만, 서로 식사 자리 기회는 없었다. 여름방학 전에 우리가 저녁을 초대하겠다."

연세대 김한중 총장은 김한중(59) 연세대 총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직 제의를 고사했다고 한다. 당시 정부의 건강보험 통합정책 등이 자신의 소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연대 농구부장을 맡아 전국을 누비며 우수한 선수들을 데려왔다. 덕분에 연대 농구부는 농구대잔치에서 3년간 두 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며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1948년 부친이 목사인 가정에서 태어나 연대 의대, 연대 보건대학원 석사, 서울대 박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보건대학원 보건정책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세대에서 사회교육원장·행정대외부총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현재 서울 아현중앙감리교회 장로로 있다.

고려대 이기수 총장은 이기수(63) 고려대 총장은 후배들에게 '당산대형(唐山大兄·이소룡이 출연한 영화 제목)'이라 불린다.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서초동 'S일식집'에 가서 내 이름 달아놓고 마음껏 먹으라"며 인심을 쓰기도 하고, 강의 마지막 시간엔 "언제 어딜 가든 이기수 교수에게 연락하면 해결될 것 같다 싶으면 연락하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1945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대학원 석사, 독일 튀빙겐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에서 학생처장, 기획처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모두 고대 동문이고, 서울대를 나온 아내(조효임 서울교대 교수)까지 고대 가족으로 만들기 위해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듣게 했다고 한다.

지난 20일 조선일보사에서 김한중 연세대 총장과 이기수 고려대 총장이 대담을 나눴다. '상대 학교에 대해 부러운 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어봤다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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