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대안 역사 교과서, 학계는 왜 조용한가

조선일보
  • 김광일 문화부장
    입력 2008.03.26 22:29 | 수정 2008.03.31 10:08

    후대에 역사적 진실 알리기 위해
    이제 본격 현대사 논쟁 나올때

    김광일 문화부장
    역사란 때로 무책임할 만큼 관념적이다. 마이클 그루버의 최근작 '바람과 그림자의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교수)는 역사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실제로 벌어졌던 진실로, 이는 영원히 알 수 없다. 둘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꾸준한 노력으로 복구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후세로 하여금 진실이라고 믿게 만들려는 것으로, 그게 책에 실린 역사의 90%이다.'

    이번주 '대안교과서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나왔다. 대표 집필자 이영훈 교수(서울대)는 현행 교과서들이 그 '90%' 역사로 채워졌다고 보고 대안(代案)을 낸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복구' 노력을 해왔다는 '교과서포럼' 학자들은 특히 대한민국 건국사에 큰 자부심을 내세웠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억압(수탈)과 투쟁(저항) 같은 이분법으로만 보지 말자고도 했다. 이 책은 20세기 전반기가 '한반도에 근대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 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된 시기'(78쪽)였다고도 말했다.

    그러자 신문에 의견을 보내온 어떤 독자는 "당신들이 그럴 수 있느냐"고 멱살잡이 태세다. 심지어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은 "(이 교수에게) 당신은 이제 내 스승이 아니다"고 외친 뒤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울컥하는 목소리는 많다. 그런데 문제는 어제오늘 그를 비판하는 학자도 또 그를 응원하는 진영의 학자도 공식적인 목소리를 숨기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싶을 만큼 조용하다. 이럴 때는 일단 '잘 모르겠다'며 방패 뒤로 숨는 게 처세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침마다 그날 프로가 바뀌는 '총선 마당놀이 2008 버전'에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일까.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 학계와 문화계가 과연 이런 논쟁을 받아낼 체력이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헌법 위에 '민족주의 정서법(情緖法)'을 받들고 있는 우리 사회는 이런 논쟁을 길게 이어갈 룰을 갖고 있는가.

    김정환 시인은 최근 한 계간지에 '1998년, 그리고 그후 십년의 일기'라는 글을 썼다. '…기자에 비해 지면이 너무 많은 언론, 연기자 및 작가에 비해 너무 많은 방송드라마, 프로그램에 비해 너무 많은 방송 채널, 독자에 비해 너무 많은 작가, 특히 시인 및 수필가 그리고 아동문학가, 전망력(展望力)에 비해 너무 많은 정치인….'

    학계도 마찬가지다. 콘텐츠를 채워갈 역량에 비해 그릇만 큰 것을 들고 고집하고 있는 형세였던 것은 아닐까. '90%' 역사가 만들어지는 동안 기초체력은 형편없었고, 포즈만 그럴듯했던 측면도 있다. 현장 확인, 국역(國譯) 작업, 자료조사 같은 기초 다지기에 비해 탁상공론에만 뛰어난 사람들도 너무 많았다.

    언론이 학계보다 나을 것도 없다. 언론인 니컬러스 레먼은 말했다. "기자들이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의 99%는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의 1퍼센트에 불과하다." 고백하건대 우리는 1920년대에 태어난, 그래서 일제 말기를 철든 어른으로 살았던 분들의 이야기조차 다 받아 적지 못했다.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위해서는' 기초체력이 필수라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고 반성한다.

    물론 학자들은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만 '90%' 역사가 계속 청소년들에게 교육되고 있다면 그것에 대해 어떤 목소리든 내야 하는 것도 그들의 책임이다. '대안'에는 또 다른 '대안'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까지 포함해서 그렇다. 이제 시작이다. '실제 벌어진 진실'은 모른다 해도 '대부분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라면 그 길이 아무리 멀어도 지금 당장 나서야 하지 않을까.

    ♣ 바로잡습니다
    ▲27일자 A31면 '태평로-대안 역사 교과서, 학계는 왜 조용한가' 내용 중 '문제는 정작 하계에서는…' 부분에서 '하계'를 '학계'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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