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포럼, 대한민국 정통성 옹호한 대안교과서 출간

입력 2008.03.22 23:01 | 수정 2008.03.22 23:20

“1945년만의 해방만으로 해방의 진정한 의미가 성취된 것은 아니었다. 해방의 진정한 의미는 1948년 자유, 인권, 시장 등의 인류 보편의 가치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이 세워짐으로써 비로소 확보될 수 있었다.”

현행 중·고교 역사 교과서의 이념적 편향을 개선하겠다며 지난 2005년 발족한 뉴라이트 단체 ‘교과서포럼’이 3년 3개월 만의 작업 끝에 23일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기파랑)의 최총본을 출간했다.

335쪽 분량의 이 책은 1부 ‘근·현대사를 보는 시각’, 2부 ‘근대사회의 태동과 국권의 상실’, 3부 ‘일제의 지배와 민족독립운동의 전개’, 4부 ‘해방과 국민국가의 건설’, 5부 ‘근대화 혁명과 권위주의 정치’, 6부 ‘선진화의 모색’으로 구성됐으며, ‘북한 현대사’ 장을 보론으로 실었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재호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김용직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김일영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김영호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김세중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 등 12명의 전문가들이 집필에 참여했다.

이 책은 서문에서 ▲민족 중심의 역사관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우리 민족’ 대신에 ‘한국인’을 역사적 행위의 주체로 설정하고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로 이어진 국제적 조건과 맞물려 서술했으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태어나는 역사적 과정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옹호

책은 “(대한민국은) 인간의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기에 적합한, 지금까지 알려진 한 가장 적합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6쪽)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실히 해, 대한민국을 ‘분단 국가’로 폄하하고 있는 일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와 시각을 달리 했다.

책은 또 “이 나라(대한민국)는 갑자기 솟아난 것이 아니다. 개화기 이래 수많은 선각자가 기울였던 애타는 노력의 소중한 결실로 태어난 나라이다”(6쪽)고 했으며, “지난 60년간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은 한국인의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앞으로 다가올 통일 한국도 대한민국의 이념에 입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144쪽)고 썼다.

이 때문에 이 책은 1945년 이후의 현대사(4·5·6장)를 ‘대한민국사’로만 서술하고, 북한의 역사는 ‘보론’으로 따로 다뤘다. 한국 현대사의 ‘정통’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뜻이다. 1945년 광복 이후의 현대사 역시 ‘대한민국의 성립 과정’이라는 시각에서 서술했다. 38도선에 대해서는 “단순히 한반도의 분단을 불러온 것이 아니라, 자유, 인권, 시장 등 인류 보편의 가치가 미국군을 따라 한반도에 상륙한 북방한계를 나타내는 선이었던 것이다”(137쪽)며 그 의미를 종래 교과서와는 전혀 다르게 설명했다.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이 분단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1946년 2월 북한에서 수립한 북조선인민위원회야말로 스탈린의 지시로 이뤄진 사실상의 단독 정부라는 사실도 명확히 했다(140쪽).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 협상에 대해서는 “그러나 북한은 이미 별개의 공산주의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기에, 이들의 노력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141쪽)고 썼다.

대한민국의 건국 세력인 제헌의회 의원들에 대해서는 “크게 보아 개화기 이래 구래의 중간 신분으로서 개화사상을 체득하고 근대적 문물을 수용하면서 전문적 직업 능력을 키워온 민족주의자들이었다”(143쪽)고 썼다.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과 귀속재산 불하에 대해서는 그 역사적 의의를 크게 평가해 두 쪽에 걸쳐 서술했다(146~147쪽).

◆5·16은 ‘쿠데타’, 유신은 ‘절대 권력’

책은 5·16에 대해 “일부 군부 세력이 헌법 절차를 거쳐 수립된 정부를 불법적으로 전복한 쿠데타”(180쪽)로 규정했다. 지난 2006년 11월의 시안 공개 당시 ‘5월 혁명’으로 서술해 논란을 빚었던 부분에 수정을 가한 것이다. 당시 4·19를 ‘혁명’이 아닌 ‘학생운동’으로 표현해 4·19 관련 단체들의 반발을 불러왔던 부분에 대해서도 ‘4·19 민주혁명’(173쪽)으로 수정했다.

하지만 5·16과 박정희 시대에 대한 기본 입장은 ‘쿠데타로 성립된 정부이지만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뤄 낸 정권’이었다는 것이다. “1961년에 82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국민소득이 1987년에 3218달러로 급성장하고, 1995년에는 1만 달러를 초과하였다. 이는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전례가 드문 기적적인 성장이었다. 급격한 경제성장은 한국인의 물질생활과 정신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하였다. 그런 점에서 5·16 쿠데타는 근대화혁명의 출발점이기도 하였다”(181쪽)고 썼다.

10월 유신에 대해서는 “유신체제는 어떠한 국가기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대통령의 절대 권력을 성립시켰다. 대의제적 민주주의 정치 원리는 소멸했으며, 명령에 의한 행정이 지배하는 행정국가가 전면에 등장하였다”(205쪽)며 정치적인 의미에서는 부정적으로 서술했다. 그러면서도 “(박정희는) 자신에게 집중된 행정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자주국방과 중화학공업화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다”(207쪽)는 부분도 서술했다.

5·18에 대해서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고 서술했다(218쪽). “광주 시민과 계엄군 사이의 충돌은 신군부가 유신체제를 사실상 존속시키고 부당하게 집권을 추구한 데 대한 국민의 저항으로서 민주화운동이었다”(219~220쪽)고 했지만, 이후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책임론’이 제기된 것을 언급하며 “그로 인해 그때까지 유신체제와 신군부에 저항한 민주화 세력은 점차 반미국 민족주의 세력으로 변해 갔다”(220쪽)고 썼다.

◆6·15 정상회담은 체제 논쟁 유발

책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서술했다.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을 햇볕정책의 절정으로 평가한 뒤 5개조 남북공동선언의 제2조에서 ‘남과 북이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한 것에 대해 “통일국가의 이념적 토대를 명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한 내에서 심각한 체제 논쟁을 유발하였다”(250쪽)고 썼다. 또 “남한의 적지 않은 국민은 이 선언이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서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한 내용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였다”(같은 쪽)고 서술했다.

또한 “아직도 ‘햇볕정책’이 기대한 북한의 개혁·개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한 정부는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집단생산과 집단분배의 경제체제를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았으며, 개인의 정치적 권리와 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입법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250쪽)고 서술했다.

보론의 북한 현대사는 ‘북한의 건국’ ‘6·25 전쟁과 전체주의 체제의 시작’ ‘국방·경제의 병진과 주체사상의 등장’ ‘권력세습과 김정일시대의 개막’ ‘탈냉전 시대의 도래와 북한의 위기’라는 5절로 나눠 서술했다. “해방 후와 건국 초의 북한은 다름 아닌 스탈린의 나라였다”(281쪽)며 정통성에서 대단히 취약한 정부임을 강조했고, 300만 명이 굶어 죽은 1990년대의 대규모 기근은 “오로지 북한 정치·경제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296쪽)이며, “현재 북한 체제를 떠받드는 유일한 힘은 선군정치의 폭력”(301쪽)이라고 썼다.

◆식민지 시대에도 경제발전은 있었다

일제시대의 역사를 ‘수탈’과 ‘저항’의 이분법으로 서술했던 종래 교과서의 시각과는 달리, 이 책은 식민지 시기에도 시장경제 기반이 형성되고 경제 개발이 존재하는 등 경제 성장이 이뤄졌음을 서술해 주목된다. “도시부의 상공업자, 기술자, 숙련 노동자와 농촌부의 지주, 자작농의 상층 계층”(98쪽)에서는 식민지 한국인의 생활 개선이 이뤄졌음을 밝히고, “식민지 한국의 연평균 총생산은 연평균 인구성장률 1.3%를 능가하는 3.6%의 성장률을 보였다”(99쪽)고 썼다. 하지만 “도시의 비숙련 노동자, 농촌의 하층 빈농과 농업노동자의 생활은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특히 하층 농민의 생활은 비참하였다”(98쪽)고 썼다.

종래 교과서에서 ‘일제의 경제 침탈’로 서술됐던 토지조사사업에 대해서는 “국가가 토지재산에 대한 증명제도를 완비함으로써 토지 거래가 활성화하고 토지를 담보로 한 금융이 발전하였다. 그 결과 식민지 시기에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제가 급속히 발전하였다”(85쪽)며 가치중립적인 입장에 가깝게 서술했다.P>

한편 종래 교과서에서 ‘동학농민운동’ ‘동학혁명’으로 지칭했던 1894년 동학군의 활동에 대해서는 “동학군의 봉기를 ‘농민혁명’이나 ‘농민전쟁’이라 하여 국가체제의 급진적 변혁을 모색한 운동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 대신 ‘동학농민봉기’라는 호칭이 농민군의 정신적 배경, 사회적 계층, 저항의 양태를 나타내는 데 가장 적합하다”(44쪽)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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