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chosun] 아폴로 추억의 과자 40년을 지킨 사람들

입력 2008.03.21 21:30 | 수정 2008.03.23 08:26

<이 기사는 weekly chosun 1998호에 게재되었습니다>

2대째 가업 '온 가족이 직원'… 분말주스 안 팔리자 아이디어 짜내
그해 쏘아올린 우주선에서 이름 따… '불량식품' 편견 가장 힘들어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진 않아… "2년 뒤 40년 채우고 그만둘 생각"


“와, 아폴로다. 아직도 이런 걸 파네.” 지난 2월 29일, 서울 인사동의 한 가게를 찾은 여대생 몇 명이 ‘추억의 과자’ 코너 앞에 멈춰 섰다. ‘아폴로’ ‘쫀듸기’ ‘밭두렁’…. 이름도 정겨운 옛날 불량식품들이다. 포장지에 적힌 가격은 모두 100원이지만 실제 판매 가격은 3개 1000원. ‘구하기 힘든 과자’라는 희소성을 앞세운 가게들이 정가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가격을 정해 팔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기가 좋은 아폴로는 한 봉지에 500원 하는 곳도 있다.

1970~1980년대 최고의 간식으로 대접 받던 아폴로가 40년 가까이 장수하고 있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서울의 대표적 전통거리 인사동으로 진출한 데 이어 3~4년 전부터는 옛날 과자 전문 판매 사이트 엔지몰(www.ngmall.net)과 주주푸드(www.jujufood.com) 등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도 ‘데뷔’했다. 최근엔 G마켓이나 옥션 등 대형 인터넷 쇼핑몰까지 판매 경로를 넓힌 상태. 학원 등 각종 업체의 판촉물로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폴로호의 화려한 귀환’이다.

'빨대 사탕'에 '아폴로'라는 이름을 붙인 아폴로제과 김진원(53)씨.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빨대사탕. 아폴로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말이다. 지름 1㎝가 채 안 되는 가느다란 빨대에 딸기, 초코, 바나나, 포도당 등 네 가지 맛의 향료를 가미한 분말을 채워 넣은 이 과자는 세월이 흘렀지만 옛날 모양과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다소 밋밋한 포장과 삐뚤빼뚤 엉성한 여자아이 캐릭터, ‘₩100’이라는 가격 표시까지 예전 그대로다.

이 ‘장수 과자’를 처음 개발한 사람은 김상규(77)씨다. 1965년 서울 성동구 군자동에 ‘우림제과’라는 과자회사를 차리고 분말 주스와 사탕, 과자 등을 만들어 팔았던 그는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분말 주스의 판매가 주춤하면서 창고에 쌓이는 걸 보던 중 우연히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주스 분말을 적당한 농도로 물에 갠 후 빨대에 넣어본 것. 첫 시험 대상이었던 자녀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무릎을 친 김씨는 1969년 제품 출시에 들어갔다. 이 과자에 ‘아폴로’라는 명칭을 붙인 건 당시 초등생이었던 김씨의 아들 진원씨. 제품 개발 연도와 아폴로 우주선이 달 탐사에 성공한 연도가 같은 데서 이름을 따왔다. 이후 우림제과는 아폴로의 인기에 힘입어 1971년 아예 사명을 ‘아폴로제과’로 바꿨다. 세월이 흘러 쉰셋의 중년이 된 김씨는 현재 부친의 뒤를 이어 아폴로제과를 이끌고 있다.

올해로 창립 38년째 되는 아폴로제과 공장은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있다. 공장이라고 해야 430㎡(약 130평) 규모로 가내수공업 수준이다. 직원은 김진원 사장의 어머니와 부인, 동생 등을 포함해 8명. 직원 대부분이 가족인 셈이다. 작은 공장이지만 그나마 요즘은 개점휴업 상태다. 초·중·고교생의 개학 시즌인 봄과 가을을 제외하곤 매출이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아폴로가 날개 돋친 듯 팔리던 1970년대 초반에도 정작 매출은 그리 높지 않았다. 반자동 시스템을 갖춘 요즘과 달리 당시엔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돼 작업 속도가 더뎠기 때문이다. 한창 때는 온 가족이 달라붙어 분말 주스 반죽을 개고 빨대에 밀어 넣어도 150봉지들이 박스 20개를 만드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나마 지금처럼 가는 빨대가 아니라 볼펜대 정도 너비의 대롱이었기에 비교적 작업이 수월한 게 그 정도였다.

매출 면에서 아폴로가 최대 호황을 누린 건 1970년대가 아니라 1990년대 후반, IMF 사태 직후였다. 서민 가계가 휘청거리며 주전부리 하나도 부담 없는 걸 찾으려는 소비 심리와 당시 유행처럼 불어닥친 ‘복고 열풍’이 아폴로의 매출 증대에 한몫 했다. 김 사장은 “IMF 터지고 주변에선 사업 안 된다며 울상이었는데 우린 제품 대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며 “아폴로가 너무 잘 팔리니까 ‘마약 넣어 만든다’는 터무니없는 소문까지 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IMF 호황’은 3개월을 채 넘기지 못했다. 매출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왔다. 김씨는 “아폴로가 잘 팔려서 아직 남아있는 줄 아는데 그건 오해”라며 “가족끼리 하니까 인건비 안 들고, 꾸준히 팔리는 편이라 그만두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했다.김 사장이 아폴로제과를 운영하며 제일 힘들었던 건 ‘아폴로=불량식품’이라는 세간의 편견과 싸우는 일이었다. “제가 중학생일 때만 해도 아폴로는 없어서 못 팔 만큼 인기 과자였지만 ‘불량식품 만드는 집 아들’이란 얘기가 듣기 싫어 친구들에게도 비밀로 했지요. 고등학교 올라가선 몇몇 친구에게 얘기했다 소문이 퍼져 놀림만 실컷 당했어요.”

그래서 그는 요즘도 아폴로를 만들 때 매 공정마다 심혈을 기울인다. 3개월 단위로 받은 보건환경연구원 검사 결과도 스크랩북에 차곡차곡 모아놓았다. 모두 ‘적합’ 판정을 받은 것들이다. “보세요. 아폴로의 구성 성분은 포도당·향료·구연산·착색료 등인데 이건 대형 제과업체가 만드는 사탕에도 다 있는 성분입니다. 어떤 부모는 빨대의 비위생성과 유해성을 지적하지만 빨대 검사 결과도 모두 ‘이상무’예요.” 김 사장은 “아폴로는 절대 ‘불량한 식품’이 아니며 ‘비(非)메이커 제품’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요즘 김 사장에겐 고민이 하나 생겼다. 얼마 전 서울시가 시내 초등학교 앞을 ‘어린이 식품안전 보호구역(Safe Food Zone)’으로 지정하고 특별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불량식품을 뿌리 뽑겠다’는 시의 의지가 반영된 조치다. 그는 “아폴로의 안전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아폴로는 불량식품’이란 인식이 강해 당장 표적이 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갈수록 악화되는 수익성도 문제다. 30여년간 재료 원가가 슬금슬금 올라 지금은 초창기의 20배나 껑충 뛰었다. 당연히 판매가를 올려야 하지만 ‘100원보다 비싼 아폴로를 누가 사 먹겠느냐’는 생각에 가격도 올리지 못했다. 가격을 유지하며 용량만 줄이다 보니 봉지가 터질 듯 꽉 찼던 아폴로는 이제 한 봉지에 고작 11개 들어 있다. 허전한 느낌을 영 지울 수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김 사장은 2년 후 ‘딱 40년만 채우고’ 아폴로제과를 접을 생각이다. 그는 “아버지는 손자들에게 공장을 물려주길 원하시지만 ‘불량식품’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늘 단속에 시달리고 일한 만큼 제대로 된 평가도 받지 못하는 일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만 2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는 ‘아폴로 창업자’인 부친께는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아버지가 우림제과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집안형편이 좋지 않았어요. 일손이 달려도 사람을 부릴 형편이 못 돼 당시 막내 동생을 가진 어머니가 만삭의 몸으로 기둥을 붙잡고 일했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아폴로 덕분에 집도 사고 공장도 사고 두 아들 대학까지 보냈으니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인터뷰 내내 김 사장 곁을 조용히 지키던 부인 한경희(50)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아폴로는 우리집 소화제예요. 구연산이 들어가 소화가 잘 되거든요. 우리 아이들은 공부하다 졸리면 아폴로를 먹어요. 잠이 확 달아난다고요. ‘아폴로는 불량식품이니까 만드는 사람들은 입에도 안 댈 것’이란 건 편견이에요. 일하면서도 물고 살다시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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