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궁 테러' 증거 미스터리

조선일보
  • 원정환 기자
    입력 2008.03.10 01:13

    화살 맞았는데 피해자 와이셔츠엔 혈흔 없고 구멍만…
    구급대원 일지엔 "화살 튕겨나갔다"
    검찰 "판사에 상해 가한 사실은 분명"

    김명호(51) 전 성균관대 교수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박홍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석궁을 쏜 이른바 '석궁테러' 사건. 그 재판이 1년째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주요 쟁점들은 아직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석궁 테러' 사건은 김씨가 1996년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뒤 복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1월 서울고법 항소심에서 패소한 데서부터 시작됐다. 박 부장판사는 당시 항소심 재판장이었다.

    판결 사흘 뒤, 김씨는 석궁을 들고 서울 잠실동 박 판사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당시 김씨가 쏜 석궁에 박 판사가 맞은 것으로 알려져, 세간에 파문을 던졌다.

    하지만 김씨에 대한 재판이 열리면서 당시 상황에 대한 몇 가지 의문들이 불거졌다. 그 중 하나는 '석궁에 맞은 박 판사의 와이셔츠에 혈흔이 나오지 않았다'는 대목. 박 판사 옷에 묻은 혈흔은 '김씨가 쏜 화살이 옷을 관통하며 상처를 입혔다'는 공소 사실을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이다. 사건 당시 박 판사는 양복·조끼·와이셔츠·내복·러닝셔츠를 순서대로 입고 있었다. 이 중 조끼와 러닝셔츠에서는 혈흔이 나왔으나, 그 중간에 입은 와이셔츠에서는 혈흔이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씨 측은 "박 판사는 그 화살을 맞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판결에서 "와이셔츠에 화살 구멍이 뚫려있는 등 박 판사가 화살을 맞은 것은 명백하다"며 징역 4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범행에 사용된 화살'도 논란이다. 사건 직후 현장을 목격한 아파트 경비원은 "김씨가 박 판사에게 쏜 화살이 아파트 계단 쪽에 떨어져 있었는데 깃 부분이 부러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경찰이 현장에서 확보해 재판부에 제출한 화살 3개 중 깃 부분이 부러진 것은 없었다. 아파트 경비원의 증언이 맞다면, 경찰은 박 판사를 직접 다치게 한 화살은 확보하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이는 "박판사는 화살을 맞았다"고 주장하는 검찰의 공소 사실을 흔들 수도 있다. 1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김씨가 범행 당시 화살 3개를 소지했다는 것 자체가 (범행 목적을 설명할 수 있는) 증거물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범행의 '고의성' 여부도 쟁점이다. 박 판사는 "김씨가 나를 정조준 해 석궁을 쐈다"고 주장했고, 김씨는 "위협만 하려 했는데 우발적으로 화살이 나갔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과실'이 아니라 '고의적인 상해'였다고 판단, 박 판사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에 이은 항소심 공판에서는 또 다른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달 25일 항소심 4차 공판에서 증거로 제출된 사건 당시 119 구급대원의 구급일지에는 박 판사가 "화살이 배를 맞고 튕겨나갔다"고 말한 것으로 적혀 있었다. 그러나 박 판사는 검찰에서 "복부에 꽂힌 화살을 내 손으로 뽑았다"고 주장했었다. 이 때문에 김씨 측은 박 판사의 다른 진술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측은 "피해자와 목격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김씨가 석궁으로 박 판사에 상해를 가했다'는 핵심적인 내용은 일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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