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살은 5000위안(약 68만원), 깎을거면 다른데 가"

조선일보
  • 박종인 기자
  • 이학준 기자
  • 방정오 방송기획
  • 정인택 PD
  • 한용호 AD
  • 김영관 AD
  • 특별취재팀
    입력 2008.03.03 00:43 | 수정 2008.03.03 10:03

    (1) 팔려가는 '조선의 딸들'

    취재팀이 윤희씨를 만난 곳은 중국 투먼(圖們) 근처 두만강변, 보름을 사흘 앞둔 새벽이었다. 갈대밭이 비명을 질렀다. 강은 바람과 달빛으로 일렁였다. 쏟아지는 달빛에도 강 건너 마을은 어둠에 잠겨 있다. 중국·북한 국경수비대의 감시를 피해 덤불 속에 몸을 숨긴 지 네 시간. 희끄무레한 물체 두 개가 강 너머 갈대밭을 뚫고 강물에 들어섰다. 하나는 앞에 서고 다른 하나는 뒤에 섰다. 벌거벗은 사람이다.

    적외선 렌즈 녹색 화면 속으로 사람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아랫도리를 모두 벗은 한 남자와 팬티만 입은 여자. 벌거벗은 남녀가 강을 건너고 있다. 야윈 다리가 출렁이는 강물을 힘겹게 헤쳤다. 남자는 뒤따르는 여자 손목을 이끌고 앞장서 걷는다. 어느새 강물은 허리까지 차올랐다. 강물을 바라보던 여자가 갑자기 제자리에 섰다. 현기증이 난 모양이다. 남자가 주위를 잽싸게 둘러봤다. 손에 힘을 주고 여자를 세차게 당겼다. 불과 40m의 강을 건너는 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남자는 북한의 인신매매 브로커, 여자는 그의 '상품'이다. 국경을 넘은 그들은 온몸을 떨었다. 서둘러 손에 들고 온 옷을 입었다. 왜 옷을 벗고 왔을까. "물에 젖으면 안 되니까." 브로커는 곧 북한으로 돌아가야 한다. 옷이 젖으면 의심을 받을 게 분명했다. 여자도 옷이 젖으면 당장 중국에서 갈아입을 옷이 없다. 그들이 벌거벗은 이유다. "이름이 뭐예요?" "문윤흽니다, 문윤희." 여자가 덜덜 떨며 말했다. 나이는 스물다섯이다.
    팔려가는 조선의 딸들 / 한용호AD

    "스물다섯인데 5000원은 줘야지." 중국 돈 5000위안은 한국 돈으로 약 68만원이다. 가격을 흥정하려 하자 그가 버럭 화를 냈다. "스무 살부터 스물넷까지는 7000원, 서른이 넘으면 3000원이야. 깎을 거면 다른 데로 가란 말이오." 그는 정액제를 강조했다.

    윤희씨가 보자기를 끌러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동안 누군가가 브로커에게 돈을 건넸다. 국내 탈북지원단체 두리하나선교회에서 온 사람이다. 이 단체는 여자를 사려는 중국인들 대신에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여자들을 탈출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브로커가 돈다발을 셌다. 5000위안. 굶주림을 피한 대신, 스물다섯 살 처녀가 씨받이와 품앗이로 평생을 보내야 할 대가가 한국 돈으로 68만원이다. 북한 한 달 월급의 30배. 이 가운데 윤희씨네 곡식 빚의 절반, 4만6000원을 빼고 전액이 브로커에게 돌아간다. 브로커가 흡족하게 웃으며 한마디 던진다. "잘 돌봐주오." 지켜보던 취재팀 누군가가 내뱉었다. "뭐, 잘 돌봐달라고?"

    다음날 은신처에서 윤희씨를 만났다. 그녀는 이미 탈북을 한 번, 강제북송을 한 번 경험한 여자였다. "내가 직접 브로커한테 가서 팔아달라고 했어요. 빌린 곡식이 300㎏인데, 갚을 방법이 없었어요. 브로커가 빚 절반을 갚아준대서리…. 그 남자는 같은 동네 사람이요. 집도 중국 집처럼 부자고, 밭도 있고 소파랑 TV, 냉장고도 있어요. 군대도, 보위부도 그 사람이 여자 파는 거 다 알아요." 그런데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왜? "돈이 있는데, 왜 처벌 받겠습니까?"

    팔려가는 조선의 딸들 / 한용호AD

    그날 아침, 윤희씨는 브로커 뒤를 따라 집을 나섰다. 점심을 먹고 강변 야산에 들어가 둘이서 숨어 있었다. 새벽이 되자 "산 아래 북한쪽 군대에서 불빛 신호가 왔다"고 했다. 그리고 달빛에 의지해, 옷을 벗고, 강을 건너 중국 땅을 밟았다. 이번이 두번째다.

    "이천공육(2006)년도에 처음 팔렸습니다. 산둥성에 서른넷 먹은 한족(漢族) 남자한테 팔려갔는데 6개월 지나니까 어느 날 밤 12시에 공안이 왔습디다. 어떻게 나를 잡아가나 하고 물으니까, 동네 사람이 꼬장질(신고)해서 그리했다는 겁니다." 윤희씨는 곧바로 중국 단둥 교도소에 갇힌 뒤 두 사람씩 수갑에 엮여 신의주로 압송됐다. 북한 보위부에서 보낸 한 달, 그녀는 몸을 떨며 이렇게 증언했다.

    "성병을 검사한다면서 피를 한 바가지 뽑았다. 여자들은 옷을 모두 벗기고 고무장갑 낀 손으로 성기 속까지 조사했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20번 정도 반복하면 안에 있는 게 모두 나온다. 임산부도 있었는데 중국 놈 아이를 가졌다고 강제 유산시켰다. 사람 먹으라고 강냉이 밥이랑 찬 하나가 나왔는데, 한 번 먹고선 중국 감옥에서 먹던 밥이 그리워지더라."

    윤희씨는 함북 청진에 있는 탈북자 집단수용소로 끌려가 하루 17시간씩 강제노동을 하다가 풀려났다. 그리고 몇 달 만에 윤희씨는 또다시 브로커에게 몸을 맡겼다.

    두리하나선교회 사람이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당신을 한족에게 팔아먹으려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한국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그녀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나 맨 처음에 사 간 한족 남자한테 돌아갈랍니다. 한족이랑 배불리 살면서 돈도 모아서 고향에 있는 가족들한테 보낼랍니다." 그녀는 한국행을 거부했다. 고향에 남은 눈먼 노모(老母)와 남동생을 위해, 그녀는 중국에 남기로 했다. 두리하나선교회는 그녀에게 겨울 옷가지 몇 점을 사주고, 안녕을 빌고, 그녀와 작별했다. 문윤희. 그녀는 지난 10개월 동안 취재팀이 만난 인신매매의 피해자들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했다.

    두만강변에서 얼어죽은 북한여성 시신 / 한용호AD

    2008년 1월, 취재팀은 중국 투먼(圖們)의 두만강변에서 얼어 죽은 북한 여성 시신 하나를 발견했다. 신발도 없이 발싸개로 발을 싸매고, 얼어붙은 두만강 한가운데에 엎드려 죽어 있었다. 3월 2일 현재까지 두 달이 지나도록 그녀는 아무도 거두는 사람 없이 외롭게 강에 엎드려 있다. 현지 조선족은 "북한 식량난 이후 10년 만에 처음 보는 시신"이라며 "형색을 볼 때 혼자서 탈북하려다 돌부리에 걸려 죽은 여자가 틀림없다"고 추측했다. 2008년 중국-북한 국경지대. 살아 있는 여자의 인신매매 시장이 수시로 열리고 죽은 여자의 시신은 아무도 거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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