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감은지 60여년 지나서야 고국에

입력 2008.02.28 00:48 | 수정 2008.02.28 06:35

강제징용 한인 유해 4구 송환… 봉은사에서 천도재

"남의 땅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죽어서도 편히 눈감지 못한 62, 63년의 세월들…. 이제 편히 영면에 드셔서 극락왕생하소서."

27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법왕루. 1944년 일제에 강제 징용됐다가 일본 홋카이도에서 목숨을 잃은 한국인 4명에 대한 천도재(薦度齋·죽은 영혼을 하늘로 보내는 불교 의식)가 열렸다. 명진 주지스님의 추도사가 목탁 소리와 함께 울리자, 법당 곳곳에서 가느다란 흐느낌이 들렸다. 천도재에는 유가족과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홋카이도의 사찰 '고쇼지'와 '호세지'에 안치돼 있던 고 정영득(1929년생)·이정기(1929년생)·구연석(1928년생)·조용문(1907년생)씨 등 네 사람의 유해는 지난 26일 6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조용문씨를 제외하곤 모두 10대 때 일본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이다.
27일 오후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열린‘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 합동위령제’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분향을 하고 있다./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경남 하동 출신인 고 정영득씨는 형에게 징집장이 나왔으나, 어머니가 장남을 보낼 수 없어 영득씨를 대신 보냈다고 한다. 영득씨의 동생 상득(61)씨는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영득아 영득아' 하며 매일 우셨다"고 했다. 고 이정기씨의 어머니는 15년 전 세상을 뜰 때까지도 이씨가 살아있을 거라 믿어, 이씨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했다.

고 구연석씨의 사촌형 연혁(82)씨는 "연석이가 끌려가기 전날 할아버지를 찾아와 '북해도로 갑니다'라고 인사드리기에, 할아버지가 주머니를 뒤져 10원을 줬는데 그게 마지막이 됐다"고 했다. 세 사람은 무로란시(市)에서 일본제철 소속 노동자로 일하다 지난 1945년 7월 미 함정의 폭격에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유해는 '고쇼지'에 안치돼 있었다. 홋카이도 아카마탄광에서 강제 노동을 하다 1946년 병으로 숨진 고 조용문씨의 유해는 '호세지'의 한 스님이 "언젠가 유족들이 유골을 찾으러 올 때까지 모시겠다"며 납골당에 안치했다고 한다.

이들의 유해가 한국으로 돌아온 데는 일본 시민단체의 힘이 컸다. 고쇼지에 한국인 징용자 3명의 유해가 안치돼 있는 것을 안 도노히라 요시히코 스님이 주도해 만든 '유골반환을 실현하는 무로란 시민모임'과, 호세지의 조용문씨 유해를 확인한 아카비라 고교 학생과 시민들이 힘을 합쳐 유해 송환사업을 추진해왔다.

도노히라 스님은 "우리가 4구의 유해를 고국으로 보낸다고 해서 일본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27일 오후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 합동위령제'가 유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주완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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