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엔 익명의 다수가 공익창출에 앞장"

조선일보
  • 이한수 기자
  • 토론토=김용학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2008.02.25 04:32 | 수정 2008.02.25 07:07

    [새로운 문명이 온다]
    [5] 매스 컬래버레이션 (mass collaboration·집단 협동)

    위키디피아 220만개 항목, 2억번이상 수정거치며 진화
    인터넷은 가능성의 공간… 때론 집단광기 표출되기도

    인터넷의 전 세계적인 보급과 발전으로 익명의 다수가 가치를 만들어내는 '매스 컬래버레이션(Mass Collaboration·집단협동)'이 21세기 새로운 생산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2001년 개설된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2007년 말 현재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스스로 등록한 저자 638만7732명이 221만 개 이상의 항목을 집필했다. 컴퓨터 운영체제 '리눅스'는 수많은 익명의 프로그래머들이 참여해 100억 달러 가치가 있는 운영체제를 만들어냈다.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 협동'이라는 현상은 21세기 인류의 새로운 문명을 열어갈 씨앗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위험성도 있다.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을 집중 연구하고 있는 배리 웰만(Barry Wellman) 토론토대 교수는 "'집단 지능'은 '집단 광기'로 변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학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그를 만나 '매스 컬래버레이션'이 신(新)문명의 보편적 가치 생산방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집중적으로 따져 물었다.

    캐나다 토론토에는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나 보았던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칼바람 추위를 피해 토론토 대학 한가운데 있는 '네트워크 연구소(Netlab)'에 서둘러 들어섰다. 현관문 안쪽에는 열기가 후끈했다. 현관문을 사이에 둔 눈보라와 열기, 오프라인 세계와 온라인 세계 사이의 거리도 이쯤 떨어진 것일까.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데 이 연구소 소장 배리 웰만(Barry Wellman·66) 교수가 나타나 반갑게 맞아줬다. 여러 나라에서 온 연구원들도 함께 배석시켰다.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들을 연구하는 이들 연구원들은 포르투갈,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중국, 터키 등 주로 인터넷이 한창 보급되고 있는 나라에서 인터넷의 사회적 파급효과를 배우려고 이 연구소를 찾았다고 한다.

    '네트워크 연구소'는 캐나다의 어느 중산층 마을을 골라 고속 인터넷을 깔아 주고, 인터넷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실험적으로 연구하여 세간의 관심을 모은 적이 있는 대표적인 인터넷 연구소다. 토론토대에서 커뮤니티 사회학을 가르치는 웰만 교수는 2003년 창립 때부터 이 연구소를 이끌어 오고 있다. 서로 인사를 끝내자마자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인터넷을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집단 협동 '매스 컬래버레이션'(mass collaboration·익명의 다수가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작업방식)이 새로운 문명의 씨앗으로 여겨질 수 있나.

    "협동은 인류가 집단으로 생활하면서부터 늘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인터넷은 수만년 동안 이루어진 협동과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집단협동을 만들어 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가치를 창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위키피디아'를 꼽을 수 있다. 아주 훌륭한 백과사전이 익명의 다수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협동, 즉 집단 지성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컴퓨터 운영체제 리눅스도 마찬가지다. 네트워크 사회가 진전될수록 '매스 컬래버레이션'은 사회의 공공적 가치나 기업의 부가가치를 위해서 더욱 발전할 것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만들어내는 가치와 어떻게 다른가.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저자로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사전이다. 기업 안에서의 협동이 사익(私益)을 추구한다면, 집단협동은 공공의 이익을 만들어낸다. 위키피디아는 2001년 처음 개설된 후 올 초에 이미 221만 개 이상의 항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담고 있다. 2억 번에 달하는 수정과 편집을 거치면서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매스 컬래버레이션은 '집단 지성'을 낳기도 하지만 '집단 바보'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특정한 사람이나 조직을 해치기 위해 집단적으로 협동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간혹 집단적 광기를 부리기도 한다. 인터넷은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단지 가능성의 공간이다. 네트워크를 통해서 사람들은 현명한 집단(Smart Mobs)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활짝 열렸다. 이것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인류 공동체의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배리 웰만 토론토대 교수(오른쪽)는“네트워크 사회가 진전될수록‘집단 협동’이라는 생산방식은 공공적 가치와 기업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더욱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은 김용학 연세대 교수. /김용학 교수 제공

    ―집단 협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다분히 이타(利他)적인 동기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행위 동기를 너무 좁게 가정한다. 인간은 원래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존재다. 리눅스 개발자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가 말했듯 '일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에 동조하는 사람들, 도움을 받았으면 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믿는 호혜적 인간들,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존감, 그리고 명성을 얻기 위한 목적 등 동기도 다양하다."

    ―인터넷이 남을 도와주는 정신을 촉진시키는 것인가.

    "그런 증거는 확실히 있다. 젊은 세대가 나이든 세대보다 온라인에서 남을 더 잘 도와준다. 인터넷 사용자들이 비사용자보다 더 잘 도와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익명의 다수가 모인 오프라인 집단보다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집단 협동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커뮤니티는 지리적인 이웃이 아니라 사회관계망이라는 사실을 뉴욕에서 살던 어린 시절 깨달았다. 인터넷 커뮤니티도 사회관계망에 불과하다. 상호작용을 통해 커뮤니티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생기고, 이러한 신뢰가 협동을 더욱 쉽게 만든다. 그리고 이 커뮤니티는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때마침 터키에서 온 바바라 연구원이 거들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성화 정도는 그 사회의 오프라인 커뮤니티 활성화 정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각 나라의 문화적인 차이가 공공적 가치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정도에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죠."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인터넷이 세계 제일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한국에서 왜 '집단 협동'의 사례는 드문지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은 혈연·지연·학연 등 '연줄 공동체' 안에서 상부상조하던 역사적 전통이 뿌리깊기 때문에 열린 공동체를 위한 집단 협동에는 아직 덜 익숙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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