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규슈'라는 일본 경제의 칼날

입력 2008.02.18 22:40 | 수정 2008.02.20 10:05

선우정 도쿄특파원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열린 회사 행사에 참여하려다 큰 실례를 했다. 한국에서 오는 여성 경제인들을 공항에서 맞아야 하는데 제 시간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비행기로 서울~후쿠오카는 1시간20분, 도쿄~후쿠오카는 1시간50분. 서울 손님들보다 도쿄에서 먼저 이륙했는데도 비행기가 연착하니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보통 '일본이 얼마나 넓은 나라인지'를 변명하는데, 사실 요즘 더 쉽게 통할 수 있는 변명은 '한국이 일본과 얼마나 가까운가'에 있지 않을까 한다. 시간만이 아니다. 요금도 도쿄~후쿠오카가 왕복으로 10만원 정도 비쌌다. 이것은 사람의 왕래만이 아니라 물류(物流)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조선일보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서울지회가 주최한 행사 목적은 도요타자동차 시찰과 세미나였다. 도요타는 본사가 나고야(名古屋) 인근, 아이치(愛知)현 도요타(豊田)시에 있다. 하지만 도요타의 최고급 브랜드를 생산하는 곳은 후쿠오카현의 도요타자동차규슈(九州)다. 도요타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후쿠오카를 택했던 것이다. 본사 인근 다하라(田原)공장도 렉서스를 생산하지만 최신 시설이 집약돼 외부 공개를 거의 하지 않는 곳이다.

후쿠오카를 선택하니 아이치와 다른 또 한 가지 장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산기지 외엔 아무 자원도 없는 도요타시와 달리 '온천'이라는 훌륭한 관광자원이 있다는 점이었다.

'편리하군' 하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후쿠오카는 무서운 미래를 우리에게 제시할 수도 있다. 1년 전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가 '규슈 독립전쟁'이라는 제목으로 후쿠오카가 포함된 규슈의 희한한 움직임을 소개한 일이 있다. "일본에서 분리돼 독자적 FTA(자유무역협정)를 한국과 맺자"는 주장이 규슈 경제인들에게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규슈의 경제 의존도가 일본 수도권보다 한국 쪽으로 기울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미 규슈 관광을 대표하는 온천과 골프산업은 한국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 뿌듯해할 일은 아니다. 이 현상을 달리 표현하면, '규슈의 관광산업이 한국에서 맹렬히 돈을 긁어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규슈 때문에 제주도가 파리를 날린다면 규슈는 결코 한국 경제의 동반자가 아니다. 지금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더욱 한국을 두렵게 하는 존재는 '도요타'처럼 지척에 있는 일본의 산업기지다. 후쿠오카의 도요타는 '렉서스' 한국 수출 물량의 75%를 생산한다. 지리적 근접성을 이용한 것이다. 현대차의 생산기지인 울산과 후쿠오카가 얼마나 가까운지 지도만 쳐다봐도 한국 자동차업계는 모골이 송연해야 정상이다. 같은 곳에 일본 양대 자동차 회사인 닛산과, 도요타 계열사인 다이하츠 생산기지도 있다. 도시바, 소니의 반도체 생산기지가 있는 곳도 관광지로 유명한 오이타(大分)와 구마모토(熊本)다.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자 후쿠다 총리가 "한일 FTA 재개"를 언급했다. 물류의 벽이 무너지는 FTA란 경제적 의미에서 '규슈'란 이름의 거대한 제조업과 관광기지가 한국에 새로 생긴다는 것을 말한다. 이중삼중의 유보 조건을 만들어도 언젠가 도요타규슈는 무관세로 울산을 향해 자동차 선박을 띄울 것이다. 이대로라면 제주도가 규슈에 당한 것보다 더 강한 강도로 현대차는 당할지 모른다. 규슈는 한국을 향한 일본 경제의 칼날이다.
♣ 바로잡습니다
▲19일자 A34면 '특파원 칼럼' 중 일본 규슈의 지명 '후쿠오카(福岡)'가 '후쿠오타'로 잘못 표기됐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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