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가수 이문세가 작곡가 이영훈씨의 병실을 찾아 격려했다는 기사가 보도(1월 21일자)된 뒤, 이영훈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 번 더 찾아와 달라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남았다"고 했다.

다시 병실을 찾은 것은 지난달 28일이었다. 열흘 전에 만났을 때 없었던 멍울이 목에 돋아나 있었다. 그는 "여드름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이것도 다 암이래" 하며 씁쓸히 웃었다. "암인 줄 알았는데 여드름이래" 하는 말투였다. 어찌 해볼 수조차 없는 병마(病魔) 앞에서 그는 애써 초연하려고 노력했다. 팬은 물론 친지들의 문병조차 사양했던 건 "흉한 모습 보여주기 싫어서"라고 했다.

그가 '못다 한 말'은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뮤지컬 '광화문 연가'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지난 2004년 1월 호주 시드니로 이사하면서 뮤지컬 악보를 쓰기 시작했고, 시놉시스는 완성된 상태다. 친구인 MC 김승현과 'H1 컴퍼니'란 회사도 만들었다. 자신의 히트곡 위주로 뮤지컬을 구성하되, 기승전결을 잇는 데 필요한 노래를 아홉 곡 새로 썼다. 그의 병상 옆에는 그리다 만 오선지가 있었다. "원래 올해 가을에 무대에 올리려고 했는데, 내년 4월쯤에나 될 것 같아요. 그나저나 내가 올해를 넘기겠어요? 뮤지컬 보기는 틀린 것 같네."

이씨는 자신이 개척한 '팝 발라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문세에게도 "우리가 만든 발라드가 후세에 남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한동안 뮤지컬 이야기를 하던 이씨는 슬그머니 이문세 이야기를 꺼냈다. "7집 만들고 사이가 나빠졌어요. 그래서 '결별'을 선언했다가 9집에서 다시 같이했죠. 가만 놔두면 문세씨와 내가 만들었던 음악이 없어지겠더라고."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악화됐다는 소식을 듣고 문세씨가 얼굴이 시커멓게 돼서 뛰어왔어요. 그리고는 덮어놓고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내가 잘못했다, 내가 교만하고 가수 위에 서려고 하고, 죄를 많이 지었다고 고백했어."

그는 14일 이른 새벽 이문세를 남기고 떠났다. 아침 일찍 부음 전화를 받고서야 그가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부디 잘 가세요. '문세씨께 미안하고 고맙다고 꼭 기록해 달라'는 부탁, 오늘 지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