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정권에 맞서다 호국항쟁의 화신이 되다

조선일보
  • 박남일 자유기고가·청소년을 위한 혁명의 세계사 저자
    입력 2008.02.13 23:09

    [역사가 꿈틀, 논술이 술술]
    삼별초

    흔히 삼별초를 몽골 침략기에 외세에 맞선 호국자주정신의 화신이라고 한다. 몽골 침략 초기부터 곳곳에서 '별초'군이 몽골군에 대항하여 싸웠다는 역사기록이 그 근거다. 하지만 당시 '별초(別抄)'란 '임시로 조직된 선발군'이라는 뜻의 일반명사였다. 일종의 유격대를 말한다. 그러므로 모든 '별초'를 '삼별초'와 동일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삼별초와 관련이 없는 수많은 '별초'가 있었다. 그럼에도 삼별초는 왜 호국정신의 대명사가 됐을까.

    고려 광종 이후 실시된 과거제도는 문치(文治)시대를 낳았다. 하지만 무(武)를 천시하는 편협한 '문치'는, 무신들을 사납게 만들었다. 의종 때 이르러 문신들의 교만은 극에 달했다.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은 아버지 권세만 믿고 설치며, 무신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워버렸다. 또 젊은 문신이 늙은 무신의 뺨을 때린 일도 있었다. 이에 분노한 정중부는 이의방·이고 등과 함께 문신들을 칼로 쓸어버렸다. 또한 의종을 거제도로 쫓아버리고, 새 임금 명종을 세웠다. 1170년이었다.

    무신들의 칼부림은 경대승과 이의민, 그리고 최충헌으로 이어졌다. 네 임금을 제멋대로 갈아치우며, 최충헌과 그 후손들은 전국에 농장을 확대하고, 숱한 백성들을 노비로 만들었다. 1219년. 최충헌의 아들 최우는 권력 보호를 위해 '야별초'를 설치하였다. 야별초는 다시 좌별초와 우별초로 갈라졌다. 여기에, 몽골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병사들로 조직된 신의군을 더하여 삼별초가 탄생하게 된다. 더불어 1231년부터 몽골 침략이 시작됐다. 이때 최씨 일가와 지배자들은 강화도로 피난을 떠난다. 뭍에서 숱한 백성들이 피를 뿌리는 동안, 그들은 안전지대에서 향락을 즐겼다.
    1258년에 김준이 최의를 살해함으로써, 최씨 일가 독재는 막을 내린다. 물론 김준에서 임연으로, 그리고 다시 그 아들 임유무로 무신 지배가 이어진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몽골과 손잡은 원종 쪽으로 기울었다. 1270년 5월. 원나라에서 귀국길에 오른 원종은 마침내 개경 환도를 명하였다. 그것은 고려가 몽골에 복속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임유무는 명을 거부한다. 그러자 원종은 삼별초를 회유하여 임유무를 처단, 100년간 왕권을 농락하던 무인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린다.

    하지만 개경 환도가 임박하자 삼별초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몽골과 결탁한 왕에게 운명을 맡길 수 없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원종은 삼별초에 해산령을 내리고 그들 명부를 거둬오게 했다. 명부가 몽골군에 넘어가면 삼별초는 죽은 목숨이었다. 개경 환도를 앞둔 1270년 6월 초, 배중손과 노영희 등 삼별초 지휘자들은 마침내 반기를 들고 만다.

    왕족 승화후 온을 왕으로 추대한 삼별초는 대 선단을 이끌고 진도로 향했다. 당시 진도와 그 인근 지역에는 최씨 정권이 소유한 농장이 몰려 있었다. 게다가 진도는,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세곡이 서울로 운송되는 길목이었다. 운반 중인 세곡을 빼앗아 자체 군량으로 쓰는 동시에 개경 정부의 밥줄을 압박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진도에 이른 삼별초는, '용장사'라는 절을 임시 왕궁으로 삼았다. 인근에 산성을 쌓고 관아도 세웠다. 제법 도읍의 면모를 갖춘 그들은 역동적인 활동을 펼쳤다. 지금의 마산·김해·부산·장흥·나주 등 남해안 일대를 점거하면서 해상왕국을 건설한다. 그들은 또 고려의 정통정부임을 자처하면서, 일본과 외교도 펼쳤다. 1270년 11월에 이르러 삼별초군은 제주도마저 장악했다.

    그러던 1271년 5월. 여·몽 연합군이 세 방향에서 진도를 공격해온다. 삼별초는 진도의 관문인 벽파진에서 중군을 막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그 틈에 좌군과 우군이 배후와 측면에서 기습 공격을 해왔다. 혼란에 빠진 삼별초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지휘자 배중손과 온왕은 죽었다. 살아남은 삼별초는 김통정 지휘 아래 제주도로 후퇴한다. 그 후 일진일퇴가 거듭됐다. 하지만 1273년 4월, 여·몽 연합군 1만여 명이 휘몰아치자 제주 삼별초는 힘없이 무너졌다. 지휘자 김통정은 산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국 40년에 걸친 고려의 대몽항전은 막을 내린다.

    고려 초기는 호족들 세상이었다. 그 결과 과거제도가 도입됐다. 과거제도는 문신이 득세하는 원인이 된다. 또 그렇게 형성된 문치주의는 역설적이게도 무신정권 탄생의 원인이 된다. 그러자 무신들의 횡포에 진절머리를 느낀 왕실세력은 다시 외세와 결탁하여 무신정권을 무너뜨린다. 그 과정에 저항한 삼별초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호국항쟁의 화신이 된다. 역사적 사건의 결과에 대한 평가다. 무릇 역사 속에서 원인은 결과가 되고,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되어 또 다른 결과를 낳는다. 그것이 역사적 인과관계의 변증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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