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영어를 배우지 않을 자유

조선일보
  • 채서영 서강대 영미어문학과 교수
    입력 2008.02.01 22:57

    언어교육 효율성은 자율적일때 높아
    다른 외국어 습득 기회 놓쳐선 안돼

    대통령 당선자와 인수위가 영어 교육을 일신하기로 하고 연일 방안을 내놓고 있다. 사교육비의 상당 부분이 들어가고 가족을 생이별시키는 주요 원인이 영어 교육이라니 반가운 일이다. 이 기회에 한 발 더 나아가 효과적인 언어정책을 정립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수업시간을 늘리고 평가방식을 바꾸는 동시에 과감히 영어를 배우지 않을 자유도 주었으면 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언어는 다른 교과목과는 달리 자율이 주어질 때 가장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고, 영어만 강조하다가 세계와 다각도로 소통할 수단인 다른 외국어 습득의 기회를 놓쳐선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영어 교육의 낮은 효율성은 분명 문제다. 그러나 한국인 모두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얘기는 이 문제와는 별개의 것이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해외 여행을 제외하고, 외교관이나 무역업자 등 직업상 영어를 쓰는 소수가 아니라면 한국인이 영어를 일상적으로 써야 할 경우는 별로 없다. 즉, 우리에게 영어가 절실하다는 생각에 과장된 측면이 있다. 엄청난 토플과 토익의 수요는 우리가 스스로 창출했는지 모른다. 각종 고시, 대학이나 대학원 입학과 졸업, 취직 시험에 이런 시험 점수가 요긴하기 때문이다. 영어 실력이 필요해서라기보다 시험·평가에서의 간편한 잣대로 말이다.

    토플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이 미국서 대학 교육을 받을 만한지 평가하는 시험이다. 어째서 한국 사람이 한국서 대학을 가고, 판·검사가 되고, 취직을 하는데 이 점수가 필요한 것일까? 무역업에 종사할 인력이나 영어 판례를 다룰 판사를 뽑아야 한다면 그 목적에 합당하게 영어를 시험해야 하지 않을까?

    정부가 할 일은 국민들이 언어라는 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도록 후원하는 일이다. 후원의 가장 큰 원칙은 강요하지 않기다. 필요성을 절감하고 배우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교육을 제공하면 된다.

    기초적인 영어가 필요하다면 적절한 한도를 정하고 그 후엔 고급 영어를 필요로 하고 원하는 사람은 더 배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중국어나 불어 혹은 아랍어를 배울 수도 있어야 한다. 다른 외국어를 배우고 싶어도 영어 못해서 받을 불이익이 하도 커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곤란하다. 영어 과외 안 받고 대학에 갈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전공을 하려는 사람은 영어 좀 못해도 대학에 갈 수 있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정부가 국민의 언어자원 개발에 좋은 후원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스웨덴 사람들이 학교 교육만으로 영어를 잘 배워 사용한다고 부러워하지만 스웨덴은 자국 출신 재미 영어교육학자였던 펄스턴(Christina Paulston) 교수에게 장기간의 정책 연구를 의뢰해 1960년대에 언어정책을 세웠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은 스웨덴 학생들은 이동 교실 등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언어를 주 2회 배울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신청 가능한 언어가 124개이고 실제로 아이들이 배우는 언어가 80개를 넘는다. 언어 학습에 자율이 주어지자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편안하게 배워 쓰는 좋은 결과가 나왔다.

    우리의 영어문제에도 언어에 관한 올바른 이해에 바탕을 둔 정책 수립이 중요하다. 어린이 외국어 학습을 모국어 습득과 어떻게 병행할 것인지, 어떤 언어를 언제 어떻게 얼마나 배우게 해야 할 것인지, 여러 외국어 교육을 조화시키고 언어 교육기관을 다양화할 방안은 없는지 숙고해 보아야 한다.
    R>대통령 당선자와 인수위에서 영어 교육에 관련된 결정을 모두 내리기보다 전담 부서를 설치해 신중을 기하면 어떨까? 영어 교육 개혁이 국어와 다른 외국어를 포함한 총체적 언어정책의 큰 틀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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