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독일의 용기

조선일보
  • 강인선 논설위원
    입력 2008.01.31 22:49

    1942년 6월 독일의 한 수용소에서 분홍색 표시를 단 남자들을 한곳에 모이게 했다. 분홍색은 동성애자, 노란색은 유대인을 의미했다. 동성애자 300여명은 이튿날 나치 지시에 따라 시신 20구를 질질 끌고서 '살인공장'이라 불리는 더 악질적인 수용소로 옮겨갔다. 동성애자들은 가장 잔인한 학대를 받아 사망률도 높았다. 한 동성애자는 "매일 아침 감시관의 채찍질을 견뎌야 했다. 하루가 천년처럼 길었다"고 했다.

    ▶2차대전이 터지기 전 베를린은 자유분방한 도시였다.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바와 나이트클럽, 카바레가 흔했다. 히틀러가 권력을 쥐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히틀러는 동성애가 공중도덕을 해치고 출산율을 떨어뜨려 국가를 위협하는 타락한 행동이라며 '국가의 적'으로 규정했다. 1933~45년 독일 동성애자 120만명 중 10만명이 체포됐고 그 중 5000~1만5000명이 수용소에서 처형된 것으로 추산된다.

    ▶2005년 유럽의회가 아우슈비츠수용소 해방 60주년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아우슈비츠를 '유대인, 루마니아인, 폴란드인, 러시아인, 그외 다른 국적의 수감자들, 동성애자 등 모두 150만명이 살해됐던 죽음의 캠프'라고 규정했다. 유럽의회가 동성애자의 희생을 공식 인정한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다른 나치 희생자와 달리 최근까지도 보상이나 연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

    ▶집시도 잊혀진 희생자 그룹이다. 나치에 희생된 집시는 25만~50만명쯤이지만 유대인들에 비하면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1990년대 말 집시 후손들이 스위스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나치 정권이 집시들에게 빼앗은 귀금속과 보석을 스위스 은행이 받아 돈을 내주고도 해명 한 번 없었다는 것이다. 집시 후손들은 이 소송이 집시의 수난을 널리 알리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독일이 나치 집권 75년 기념일인 그제 나치에 희생된 집시와 동성애자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을 각각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은 홀로코스트기념관부터 유대인 어린이 추모 열차까지 나치의 만행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기념물을 만들어 왔다. 수치스러운 과거를 선명하게 기억해야 이 같은 죄악의 재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든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감추고 부인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독일이 수십년 동안 국제사회에 보여준 이 용기를 왜 일본은 배우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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