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은 과연 어떤 책일까? 이수광의 '지봉유설'(1614년)을 꼽는 사람들도 있지만, 윤호진(尹浩鎭)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는 임진왜란 직전인 1589년(선조 22년) 편찬된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이야말로 최초의 백과사전이라고 말한다. 모두 2만개가 넘는 항목을 20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에 담았고 지리·국호·성씨·인명·효자·열녀·수령(守令)·선명(仙名)·나무·꽃·동물 같은 11개 테마를 망라한 이 책이야말로 조선 중기에 나온 본격적인 백과사전이라는 것이다.

윤 교수가 책임연구원을 맡은 남명학연구소 경상한문학연구회 연구팀은 지난 2001년에 시작한 '대동운부군옥'의 번역과 주석 작업을 최근 끝내고 책을 냈다. 500여 년 만의 첫 완역이다. 200자 원고지 3만 장 분량의 번역본을 원서의 권수와 같은 20권에 담았지만 4년 전 나온 1~10권은 소명출판에서, 이번에 나온 11~20권은 민속원에서 출간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만큼 내용이 방대하고 어려웠습니다."

이 책은 놀랍게도 권문해(權文海·1534~1591)라는 학자 혼자서 30여 년 동안 집필해 낸 것으로 오늘날에도 상상하기 힘든 열정과 노역이 깃들여 있는 작업이었다. 퇴계 이황의 제자인 그는 조선 선비들이 중국 역사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우리 역사에 대해선 문외한인 현실을 통탄했다. "이것은 눈 앞의 일은 보지 못하면서 천 리 밖의 일을 주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래서 그는 이 책에서 단군부터 조선 중기까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물을 집대성했다.

오늘날의 백과사전은 '맥주(麥酒)'라는 항목에서 '맥아로 즙을 만들고 여과한 뒤 홉(hop)을 첨가해 발효시켜 만든 알코올 함유 음료'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동운부군옥'의 '맥주' 항목에선 "이제현이 쓴 시의 주석에 '대그릇에 거르지도 않고 눌러서 짜지도 않으며 단지 가운데 죽통을 꽂아서 마신다'고 했다"며 보리술을 마시는 옛 풍속을 설명한다. 정사에선 찾을 수 없는 옛 이야기들과 저자가 조합해 낸 '한국형 사자성어'들도 숱하게 등장한다. '살수칠석(薩水七石)' 항목은 "수 양제가 고구려를 칠 때 살수에 진을 쳤는데 7명의 중이 옷을 걷고 건넜다. 병사들이 물이 얕은 줄 알고 앞다퉈 건너다 빠져 죽어 시체가 강을 막았다. 뒷날 7개의 돌을 줄지어 놓아 7명의 중을 형상화했다"고 설명한다.

권문해가 참고한 우리나라 서적은 무려 172종이다. 그가 어떻게 이 자료들을 다 수집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인데, 그 중 현재 전해지지 않는 책만 해도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과 '은대문집(銀臺文集)' 등 40종이 넘는다. 한 마디로 한국학의 보고(寶庫)인 셈이다. 오죽하면 책을 본 권문해의 친구인 학봉 김성일이 깜짝 놀라 국가 사업으로 간행하려 하다가 임진왜란으로 무산되는 일까지 벌어졌을까.

역자들은 "아직 큰 일이 하나 남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 책의 활용도가 낮을 수 밖에 없었던 책 자체의 '미로'를 푸는 작업이다. 한자의 운(韻)별로 항목을 분류한 뒤에 표제어의 끝 글자별로 배열해 놓았기 때문에 좀처럼 항목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용색인과 역순(逆順) 색인집 두 권을 곧 간행할 겁니다. 그러고 나면 책의 진가가 더욱 드러나겠지요."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조선[大東]의 여러 귀중한 것들[群玉]을 운(韻)의 순서대로 배열한 책[韻府]' 정도의 의미가 된다. 중국 원(元)나라 음시부(陰時夫)가 지은 '운부군옥'의 체제를 따랐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우리나라와 관련된 것들을 수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