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개발독재… '부패·학살자' 낙인

조선일보
  • 이석호 기자
    입력 2008.01.28 00:19

    ● 사망한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前대통령
    공산쿠데타 진압뒤 집권 재임중 7%대 성장 일궈 평가 극명하게 엇갈려

    "그가 거둔 경제 성장은 국민에게 행운이었다."(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

    "마피아의 우두머리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제프리 윈터스 미 노스웨스턴대 교수)

    27일 지병으로 사망한 수하르토(Suharto)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은 과연 어떤 인물로 후세에 남을까. 그는 인도네시아를 가난에서 건져냈지만, 손에 너무 많은 '피'를 묻혔다. 그래서 그에 대한 평가는 물과 기름처럼 극명하게 갈린다.

    수하르토는 여러모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닮았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거친 뒤 네덜란드 식민군대에 입대(1940년)해 육군 참모차장으로 승진하고, 이후 정권을 장악해 장기 독재를 했다. 정치적으로 독재자였지만, 경제 개발로 국민을 먹여 살린 것도 비슷하다.

    그가 정계에 들어선 건 1965년. 당시 공산당이 주도한 쿠데타가 일어나자 군대를 동원해 무력 진압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스스로 육군사령관에 오르고, 이듬해 수카르노 당시 대통령에게 치안대권을 위임 받은 뒤 사실상 정권을 장악했다.
    AP
    대통령에 취임한 뒤 수하르토는 수카르노의 비동맹·중립 노선을 버렸다. 대신 '신질서(New Order)'란 이념을 내세워 미국 등 서방 세계와 우호관계를 강화하면서 경제 개발에 매달렸다. 당시 그는 '버클리 마피아(미 버클리대 출신 인맥)'로 불린 엘리트 측근을 대거 기용, 재임 기간 40조원이 넘는 대규모 외자 유치를 성공시키며 연 평균 7%대의 경제 성장을 달성했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그를 '학살자', '부패 정치인'으로 언급하며 냉혹하게 평가한다. 그는 1960년대 후반 화교(華僑)들을 공산당원으로 몰아 대량 학살했고, 1974년엔 동티모르를 무력 침공해 20만명을 희생시켰다. 뉴욕타임스는 "그가 재임 중 50만~100만명을 죽이고, 75만여명을 감옥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수하르토는 부정 축재 규모도 상상을 초월한다. 국가투명성기구(TI)는 그가 빼돌린 국가 재산을 150억~300억 달러(약 14조2000억~28조4000억원)로 추정했다. 횡령 혐의로 기소도 됐지만, 죽기 전까지 감옥에 가지도 않았고 재산 반납도 없었다. 그를 보좌하던 사람들과 여섯 자녀들이 아직 인도네시아 정·재계의 요직에 있기 때문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은 그의 사망 전인 26일 "현지 사람들은 사망 직전까지 간 수하르토가 아직 살아있는 것은 의사나 현대 의학 장비 덕분이 아니라, 이슬람적인 신비한 힘 때문이라고 믿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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