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아세요? 와인은 혀가 아니라 코로 맛본다는 걸"

입력 2008.01.19 00:04 | 수정 2008.01.19 17:12

● 만화 '와인의 세계' 펴낸 이원복 교수와 와인을 마시며

1400만 권이나 팔린 베스트셀러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원복 교수(덕성여대)가 '와인의 세계'라는 만화책을 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받는다는'와인 스트레스'를 겨냥한 것이다. 서점에 깔린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2만 부나 팔렸다. "집에 와인도 많을 테니 와인을 함께 마시면서 와인에 대해 논해보자"고 제안했고, 그는 선뜻 응했다. 사실 나는 거창하게 '논(論)하자'고 할 처지가 못 된다. 술에 관한 한 청탁불문(淸濁不問)이라 와인도 마셔왔지만, 와인 지식은 눈곱만큼도 없다. 이 때문에 대다수 독자들의 눈높이와 비슷한 인터뷰가 될 것이다. 어두워진 저녁 7시반, 서울 송파구 잠실 그의 아파트에서는 한강변이 내려다보였다. 그는 '기러기 중년'이다. 거실에는 애완견 사진이 놓여있었다. 8년을 함께 살았던 그 애완견이 얼마 전 죽었다. 그는 "상복까지 입고서 눈물 흘렸다"고 말했다. 가족은 캐나다에 있다. 탁자에는 와인 잔들이 배열됐고, 와인 냉장고 안에는 200병쯤 들어있었다. 이제 마시기만 하면 된다. 그는 5만원대의 이탈리아산(産) 와인부터 땄다.

―와인 음주 이력(履歷)은?

와인 만화책까지 낼 만한 자격인지를 먼저 물은 것이다.

"1999년 미국에 객원연구원으로 갔을 때다. 골프를 안 치니 할 일이 없었다. 나는 만화를 그리고 술 마시는 것밖에 모른다. 심심하니까 이 와인도 마셔보고 저것도 마셔보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고, 그러다가 취미가 붙었다."

―일본 만화책 '신의 물방울'이 국내에서 와인 바람을 일으켰는데.

"그 만화책에는 와인 한잔 마시면서 감격해 눈물 흘리고,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는 식인데, 그건 뻥이 아닐까? 물론 진짜 좋은 와인을 마시면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장면마다 그러니…. 만화적 상상력은 인정한다. 재미있는 스토리로 와인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서양권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에다, 서양인도 잘 모르는 서양 문화를 아는 것을 몹시 자랑스러워한다. 그 만화책을 읽어보면 프랑스 와인이나 서양 문화 자체가 숭배 대상이다. 문화적 콤플렉스 같다. 나는 책 쓰려고 공부했지만, 와인 공부로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마시고 즐기면 그만이지."

이원복 교수가 자신의 아파트 거실에서 기자(뒷모습)와 마주앉아“오감으로 즐기는 술은 와인밖에 없다”며‘와인예찬론’을 펼치고 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와인이 다른 술에 비해 좋은 이유는?

"오감(五感)으로 즐기는 것은 와인밖에 없다. 눈으로 색(色)을 즐기고, 코로 향을 맡고, (와인잔을 쨍 하고 부딪치며) 귀로 소리를 즐기고, 혀로 맛보고, 목으로 넘어가는 감촉과 무게를 즐긴다."


#日 만화 '신의 물방울'은

상상력 돋보이나 과장 돼 서양문화 맹목적으로 숭배 

―와인은 어느 정도 마시나?

"대부분 혼자서 마신다. 서너 시간 걸려 쉬엄쉬엄 한 병을."

―어떤 기준에서 와인을 고르나?

"우선 가격이 맞아야지. 그런 뒤 포도 품종을 본다. 프랑스 와인의 라벨에는 품종 표시가 안 되어있다. 그래서 프랑스 와인을 고르는 게 어렵다. 보르도 와인은 기본적으로 블렌딩(포도 품종을 섞은 것)이다."

―와인 전문가들 중에는 '중요한 것은 품종이 아니라 토양(테루아)이다'고 한다. 같은 밭에서 나온 포도라도 이랑만 달라지면 와인 맛이 달라진다는데.

"프랑스 '로마네콩티'라는 포도밭의 경우 예민해서 몇 발자국만 떨어져도 와인 맛이 달라진다는데, 그거 뻥 아닐까. 다 믿으면 안 된다. 내가 와인 서적 40~50권을 읽었는데, 와인 맛을 결정하는 것은 다 다르다. 토양이니 기술이니…. 다들 자기가 맞다고 떠든다."

―그걸 뻥이라고 하면, 진짜 와인 마니아들이 화낼지 모르겠다.

"그들 중에는 종종 자기 자신의 지식에 갇혀있다. 누가 고급 와인을 선사했더니, '배로 온 거냐 비행기로 온 거냐?'고 먼저 묻더라는 거다. '그것까지 잘 모르겠다'고 하니, '배로 오면 흔들려서 안 좋으니 비행기로 온 것만 사라'고 가르친다. 그렇게 예민한 분은 '왕(王)마니아'다. 우리 서민들이 그렇게 될 필요가 뭐가 있나."

―와인을 선택을 할 때 '빈티지'(연도)를 보라는 충고도 받은 적이 있다.

"프랑스의 보르도는 기후 변화가 아주 심한 곳이다. 어떤 해는 포도가 잘되고, 어떤 해는 잘 안 된다. 당연히 맛이 달라진다. 하지만 미국이나 칠레, 호주 등 신대륙에서는 와인밭의 기후가 순일하다. 연도에 따라 기복이 안 심해, 빈티지의 의미가 별로 없다."



#와인 고르는 기준은

우선 가격이 내게 적당해야 그다음엔 포도 품종을 따져 

―와인의 가격대가 천차만별인데, 실제 가격 대비 맛의 차이는?

"맛이야말로 완전히 자기 취향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로마네콩티'를 시음한 적이 있다. 내가 무식해서인지, 이게 한 병에 180만원부터 300만~400만원 한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났다. 고급 와인은 일종의 명품(名品) 개념이다. 에르메스 핸드백의 가격이 국산의 100배가 되지만, 품질이 100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나 희소성 때문에 그럴뿐. 비싼 와인은 아무래도 검증된 것이겠지. 다만 우리가 그만한 가격을 치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그런데 맛의 차이를 어떻게 느낄 수 있나?

"일부 전문가들은 와인의 즐거움 중 70%가 '코'라고 했다. 혀 맛으로는 별로 큰 차이가 안 나고. 진짜 좋은 와인에 코를 대면 확연하게 다르다. 와인잔을 계속 흔들며 마시는 이유가 그 안에 고여있던 향(香)을 올라오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잔을 계속 흔들 필요가 없고 한번만 하면 된다고 한다. 뭐, 자기 마시고 싶은 대로 마시는 거지. 내 돈 내고 마시는데 흔들든 말든."

―잔을 흔들 때 '와인의 눈물'(와인액이 유리잔 내부에 묻는 것)이라는 게 있다. 이걸 또 대단하게 찬양한다.

"와인의 점도(粘度)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액이 많이 묻으면 점도가 높은 것이다. 점도가 높으면 묵직한 맛이 난다."



# 디캔팅(유리병에 옮기는 것) 이유는   

원래 찌꺼기 거르기 위한 것   영국 풍습… 프랑스선 안 해 

―어느 정도까지 와인의 미세한 맛을 가려낼 수 있나?

"블라인딩(blinding: 상표를 떼고 맛을 가려내는) 테스트에서 '이건 몇 년도 어느 산(産)'이라고 맞히는 이는 세상에 몇 명 안 된다. 난 포도 품종이 뭐라는 것은 대충 짐작해낸다. 요즘에는 잘 쓰는 포도 품종이 5종류 정도다. 최형처럼 좀 묵직한 맛을 좋아하면 이는 '카베르네 소비뇽'품종 쪽이다."

―음식점 종업원이 좀 따라주면서 '테스팅'을 권할 때, 와인 전문가답게 '이건 아니야'라고 돌려보낸 적 있나.

"테스팅을 할 때 제일 먼저 '코르크'를 보여준다. 이는 와인이 변질됐나 안 됐나를 보라는 뜻이다. 코르크에 이상이 없으면 그 와인은 정상적인 것이다. 자기가 선택한 와인인데, 자기가 잘못 골라서 맛이 없다고 물리면 절대 안 된다."

―와인을 따기 전에 눕혀 놓으라고 하던데.

"코르크가 마를까봐 보관은 눕혀서 한다. 하지만 마시기 전에는 두 시간쯤 병을 세워놓으라고 옛날 와인 책에 나와있다. 찌꺼기가 가라앉게. 지금은 기술이 좋아 찌꺼기가 없으니 세워놓을 이유도 없다."

―와인 병을 따고 얼마쯤 기다렸다가 마시는 게 좋다고 들었다.

"레드 와인은 16~18도에서 마시는 게 좋다고 한다. 옛날 지하 보관 창고가 14도인데, 유럽의 실내 온도가 18도쯤 됐다. 그래서 실내 온도에 맞추기 위해 병을 딴 뒤 두 시간쯤 기다리라는 것인데. 그런데 요즘은 난방이 좋아 실내 온도가 20도 정도다. 여기에 맞추면 맛이 없다. 뚜껑 따고 두 시간쯤 놔두면 '와인이 숨을 쉰다'고 하는데, 그것도 뻥이다. 와인 병이 공기와 접촉하는 면적은 3㎠인데 그 시간에 공기 접촉이 되면 얼마나 되겠나."


# 명품 와인이 맛도 있던가  

에르메스 핸드백값 국산 100배지만   품질도 100배차는 아니지 않나 

―그래서 와인을 좀 마시는 이들은 공기와의 접촉을 늘리기 위해 '디캔팅'(바닥이 넓고 주둥이가 긴 유리병으로 옮겨 담는 것)을 하는가?

"디캔팅은 영국에서 나온 풍습이다. 그것도 많이 와전이 됐다. 디캔팅은 공기 접촉이 원래 목적이 아니다. 와인을 배로 싣고 들여오는 동안 통 속에서 출렁거려 와인 찌꺼기가 많이 생긴다. 찌꺼기를 거르기 위해 디캔팅 했다. 옛날에는 통에 담았으니까, 어차피 따라 마셔야 했다. 프랑스에서는 거의 디캔팅을 안 한다. 특히 고급 와인은 절대 디캔팅을 하지 말라고 한다."

―와인 마실 때 안주는 안 먹나?

배는 안 고픈데도, 나는 '촌놈 습관'으로 물었던 것이다

"아, 안주. 까먹었다."

그는 치즈를 들고 왔다.

"나는 사실 음식과 함께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 와인 맛이 아까워서. 고기는 레드 와인, 생선은 화이트 와인이라는 것은 오해다. 근거가 없다. 굳이 맞춘다면 그 음식의 맛에 따라 강렬하면 레드, 부드러우면 화이트 정도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은 포도 품종의 차이인가?

"화이트 와인은 적포도나 청포도로 모두 만든다. 청포도는 껍질째로, 적포도는 껍질을 까고 짜면 화이트 와인이 된다. 샴페인은 화이트 와인을 발포성으로 만든 것이다."

―통상 레드 와인은 '건강에 좋다'고들 선전한다. 그러면 화이트 와인은?

"프랑스 남부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시고도 장수한다. 이게 '프렌치 패러독스(역설)'다. 이들이 마시는 술이 레드 와인이더라. 그래서 마치 레드 와인이 건강에 좋은 것처럼 업자들이 홍보했다. 와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스트레스가 없는 생활 패턴일 것이다. 즐겁게 인생을 사니 오래 살 수밖에 없다. 레드 와인이 몸에 좋다는 것은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지만, 난 그런 거 안 믿는다. 많이 마시면 분명히 안 좋다."

―얼마 전 수입산 와인에 '발암물질'이 들어있다고 시끄러웠는데.

"나도 읽었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산화황(SO₂)은 모든 와인에 다 들어간다. 왜 우리만 시끄럽지? 한국에 들여오는 것만 특별하게 그 가스를 많이 넣었다고? 이산화황 가스는 와인을 병에 담을 때 산화(酸化)를 막기 위해 순간적으로 집어넣고 채운다. 병을 따면 이 가스는 날아가버린다."


#어느 정도까지 미세한 맛 가려낼 수 있나

눈가리고 테스트한다면 포도 품종 정도는 맞힐 수 있어 


―요즘에는 코르크 마개를 안 쓰는 와인도 많다.

"호주 미국 뉴질랜드에서는 대부분 소주처럼 돌려 따는 스크루캡이다. 장기 보관을 하는 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플라스틱 마개로도 충분하다. 코르크를 쓰는 이유는 20~30년 장기 보관을 위해서다. 갈라지지 않으면서 미세하게 공기와 접촉케하기 위해 코르크를 쓴다. 그런 과정에서 오묘하게 맛이 변한다고 한다. 오래된 와인이 좋다는 것이 그 때문이다. 진짜 좋은 와인들은 30년에 한 번씩 코르크 마개도 갈아준다."

―내가 2003년산 와인을 20년쯤 보관해두면 고급 와인이 되나?

"와인에 따라 20년 뒤에는 식초가 되어있는 것도 있고 더 좋아지는 것도 있다. 경매에서 1876년산을 1억 5000만원에 사는 것은 마시려는 것이 아니다. 역사성과 희소가치 때문이다. 오크통(바리크)에서 숙성 기간은 보통 2년이다. 그 뒤 병에 담아 숙성시킨다. 병에서의 숙성은 보통 1년이다. 오래된 와인이란 이 병에서 오래 보관된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고급 와인들은 20년, 50년, 60년까지도 보관이 가능하다. 유럽의 와인 가이드북에는 와인을 몇 년 지나 마시면 맛있다는 정보들이 나온다."

이날 자리에는 인턴기자 4명도 참석했다. 그래서 레드 와인 5병과 화이트 와인 1병을 빠른 속도로 비워댔다. 마지막에는 습관대로 폭탄주를 몇 잔 돌렸다. 다음 날 숙취로 고생했다.


◆이원복(62)은

경기중·고를 나왔는데, 당시 같이 다녔던 친구들 중에는 고(故) 조영래 변호사, 손학규 통합신당 대표, 김근태 전 대표, 서상목 전 한나라당 의원, 김태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 '유명인'이 많다.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은 1년 후배다.

" 조영래는 고등학교 때부터 만날 데모를 주동하고 다녔는데, 3학년 2학기에는 전교 1등을 했다. 손학규는 시원시원한 성격에 데모도 했고 공부도 잘했다. 김근태는 친구가 없고 음지 식물 같았다."

―본인은?

"난 고등학교 때부터 만화 아르바이트 하느라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다."

1970년대 그린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은 지금 대부분 중년 세대들에게는 안 잊혀지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는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를 다니다, 독일 뮌스터대학의 디자인학부로 유학했다. 졸업 때 총장상을 받았다.

"7남매이고, 5형제 중 막내다. 집안 형들이 모두 교수였다. 1984년 독일에서 잠시 귀국했는데, 형들이 '너 그러다가 국제 고아 된다'며 덕성여대에 원서를 냈다. 대학 이사장을 만났을 때 '고등학교 성적이 어땠나?'고 묻기에, '중하(中下)입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즉석에서 채용됐다. 알고 보니 이사장이 고등학교 선배였고 그분은 낙제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1987년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교양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후배 만화가들이 워낙 실력이 좋아 도저히 내가 만화로는 경쟁이 안 될 것 같아 '교양'무기를 동원한 것"이라고 겸사했다.


손학규·김근태와 경기고 동창

'먼나라 이웃나라' 1400만부 팔려


―'먼나라 이웃나라'는 1400만 부 팔렸다. 거의 모든 가정마다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인세 수입이 엄청나겠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렇다면 지금쯤 호화 주택에 살아야 한다. 처음에 만화책이 나왔을 때 정가가 2000원이었다. 만화라고 깔봐 인세도 5%였다. 그러면 책 한 권 팔리면 인세가 100원, 만권 팔려야 100만원이었다. 그때 독일 가는 항공료가 100만원이었다. 나갈 때마다 홀랑홀랑 다 까먹고 그랬다. 요즘은 인세가 10%에다가 책 정가도 비싸지만."

―책을 쓸 때 자료를 어떻게 수집하나?

"가는 데마다 책방 뒤지고 사람과 만나 이야기한다. 현지 사람들과 술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책에 없는 것들을 얻는다. 과거에는 외지(外誌)를 사보는 데만 매달 몇백만원씩 들었다. 인터넷으로 좋은 세상 만났다. 요즘은 금방 검색이 되고 훨씬 편해졌다. 나는 불어·독어판까지 검색한다."

이원복 교수의 와인이야기. /주완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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