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브리핑룸 통·폐합과 취재통제 조치 등 언론탄압에 앞장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됐던 국정홍보처가 결국 8년 8개월 만에 문을 닫는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16일 "홍보처는 본연의 업무보다 고객인 언론과 정부 각 부처를 규제하고 간섭하는 일에 치중했다"며 폐지 이유를 밝혔다. 대통합민주신당 등도 반대하지 않고 있어 홍보처는 이제 정부조직법 개정안 확정 때까지 시한부 생명이 됐다. 홍보처는 김대중 정부 당시인 1999년 5월 3국(局) 규모로 출발했지만, 현 정부에서 '노무현 코드' 조율에 앞장서며 1실 4단 20개팀으로 몸집을 불렸다.
◆"아래 직원만 죽어나가게 생겨"
홍보처 공무원들은 이미 체념한 분위기였다. 중간간부급 공무원은 "인수위 보고 때부터 예견된 일 아니냐"며 "당선인 주변이나 국회를 상대로 한 '구명(救命) 로비'는 생각조차 안 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처장은 대학으로 간다 하고, 선진화 방안을 만든 주역들은 미국으로 간다고 한다"며 "아래 직원들만 죽어 나가게 생겼다"고 했다. 이날 김창호 처장 등 홍보처 고위간부들은 별다른 움직임 없이 사무실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별정직 공무원은 "홍보처 직원 364명 중 절반쯤이 계약기간이 있는 별정직"이라며 "문화부에 흡수조차 되지 못하고 퇴출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크다"고 했다.
◆대선 3일 전까지 기사송고실에 '대못질'
노 대통령이 작년 1월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 담합하고 있다"고 언급한 이후 홍보처는 취재통제안 마련에 착수했다. 홍보처는 작년 5월 어떤 공무원을 만나는지 신고해야 기자들의 청사 출입을 허락하고, 공보실을 통해서만 취재를 가능하게 만든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란 것을 발표했다. 언론계와 국제언론인협회(IPI)의 반대는 물론 심지어 정치적 우군(友軍)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합민주신당 등 모든 정당과 대선후보들의 지탄의 목소리에도 홍보처는 귀를 막았다. 결국 작년 10월 총리실·외교부 등 11개 부처 기사송고실이 강제 폐쇄됐다.
기자들은 이에 대항, 청사 로비와 복도에 '임시 기자실'을 만들어 취재통제 조치 저지에 나섰으나 노 대통령의 "공무원들이 이 문제(취재통제안)를 분명하게 대처해 주기 바란다"(10월 23일 국무회의)는 발언 이후 홍보처는 임시 기자실마저도 철거했다. 관련 예산만 55억원 이상이 투입됐다.
대선이 임박한 시점까지도 국정홍보처의 취재통제안 밀어붙이기는 계속됐다. 경찰청은 12월 12일 송고실 폐쇄 방침에 맞서 촛불 농성 중인 기자들에게 "폐쇄 안 한다"며 유인한 뒤 송고실을 전격 폐쇄했다. 국방부도 12월 13일 양정철 대통령 홍보기획비서관과 안영배 국정홍보처 차장의 방문을 받은 사흘 뒤인 12월 16일 0시를 기해 송고실에 자물쇠를 채웠다.
'마지막 국정홍보처장'이 될 운명에 처한 김창호 처장은 퇴임과 함께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로 복귀할 계획이지만, 명지대 평교수들의 모임인 교수협의회의 반대에 직면해 있는 상태다. 언론계, 국내외 언론단체,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의 충고도 무시한 채 오로지 노 대통령의 '명령'만을 추종했던 홍보처의 폐지는 스스로 자초한 자살행위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