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어학연수 나가니? 우리는 방학 때 사업한다"

조선일보
  • 류정 기자
    입력 2008.01.15 00:20 | 수정 2008.01.15 05:58

    대학생 4명의 좌충우돌 '방학 창업기'

    달랑 80만원 들고 '컬러 실내화' 온라인 판매사업
    염색·포장·마케팅 모두 '초짜'지만 패기로 무장
    "돈 몇 푼 못 벌지만 소중한 경험 건지고 있어요"

    "아저씨 실내화 10켤레만 주세요. 도매가로 2200원씩 해주시는 거죠?"

    "내가 우리 아들 같아서 깎아주는 거야. 어디서 이 값에 샀다고 말하면 안돼."

    지난 11일 오전 6시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문구도매상. 새벽 5시에 일어나 이곳을 찾은 대학생 김진효(24·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3학년)씨가 단골 도매상에서 교실용 실내화 값을 흥정하고 있었다. 그는 요즘 겨울방학이지만 학기 중일 때보다 더 바쁘다. 방학 시작과 동시에 실내화 판매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천호동시장에서 실내화를 산 뒤, 남대문시장으로 옮겨 염색약을 구입했고, 다시 동대문시장으로 가서 실내화를 꾸밀 헝겊과 단추 등 액세서리를 샀다. 강동구 명일동 작업실에 돌아왔을 때는 낮 12시를 막 넘긴 시각. 그는 구입한 재료로 함께 사업을 벌인 친구들과 흰색 실내화에 갖가지 색을 입히고, 액세서리를 붙였다. 그렇게 꾸민 실내화를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대학생 4명 모여 '방학 사업'

    김진효씨는 지난해 여름방학 때 친구 3명과 함께 '플라잉슈'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쇼핑몰을 열고 컬러 실내화를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최고경영자(CEO)를 맡았고, 재무관리는 숙명여대 경영학과 3학년 정보연(23)씨, 마케팅 책임자(CMO)는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 4학년 조윤철(24)씨, 디자인 책임자는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4학년 김현주(24)씨가 맡았다. 교회에서 만난 이들은 지난 여름방학 때 어학 연수 나가는 친구들을 보고 "니네들은 어학연수 가니, 우리는 실전사업 하겠다"며 의기투합했다. 김진효씨는 "돈벌이보다는 졸업 후 취업하거나 사업할 때를 대비해 최대한 실전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사업에 '올인' 하지는 않는다. 학기 중에는 사업을 중단하고 공부에 집중하면서, 방학에만 운영하는 '방학 사업'이다.
    정보연(왼쪽)씨와 김진효씨가 14일 자신들이 만든‘컬러 실내화’를 들고 자랑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공부에 집중하다가 방학에만 사업을 하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좌충우돌, 시행착오의 연속

    경험 없는 대학생들이 방학 기간에만 사업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돈이 가장 궁했다. 4명이 20만원씩 80만원을 모았다. 강동구 한 주택의 지하방을 한 달 임차하는 데만 50만원이 들었다. 작업 공간을 나눌 합판 살 돈이 없어, 아파트 단지 폐품 수거장을 돌면서 종이박스를 몰래 가져오다 경비원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종이박스는 잘 세워지지 않아서 내다버렸다. 결국 시간만 낭비한 채 1만5000원을 들여 스티로폼을 구입해 칸막이를 나눴다. 재무 담당 정보연씨는 "돈은 돈대로 쓰고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며 "돈을 계획적으로 쓰되 쓸 땐 쓰고, 아낄 땐 아껴야 한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컬러 실내화'라는 아이디어를 갖고 시작했지만, 이들 중 누구도 염색하는 법을 몰랐다. 지난해 8월에 8켤레라는 '대량 주문'이 들어왔을 때, 신이 나서 하루 종일 염색약에 실내화를 담가 염색을 했지만, 얼룩이 심해 모두 버렸다. 그 뒤 이들은 동대문 의류 염색 단지나 신발 전문 세탁소를 찾아 다니며 약품 배합하는 법, 고르게 약이 배게 하는 법, 얼룩지지 않게 말리는 법 등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 그렇게 배운 실력으로 원하는 실내화 색을 만들기까지는 1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첫 제품을 고객으로부터 "포장에 신경 좀 써달라"는 항의를 받았다. 마케팅 담당 조윤철씨는 "고객을 만족시키기가 얼마나 힘든지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겨울방학에는 온라인 판매만 아니라 오프라인 판매장에도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미 동네 문구점과 학교 매점 7곳, 유명 브랜드의 선물가게 3곳을 찾아갔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름 없는 회사라서" "실내화는 한철 상품이라"는 등의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CEO인 김진효씨는 "홍보자료를 만들어 제품을 더 소개하고 가게 주인들과 안면도 계속 익혀서 다시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돈보다 값진 경험이 최대 실적

    이들이 지난 여름방학 두 달과, 이번 겨울방학 보름 남짓한 기간 올린 총 매출액은 200여 만원. 투입한 재료비와 4명의 인건비를 감안하면 손익분기점도 맞추지 못했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값진 것을 얻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재무를 맡은 정보연씨는 "한 달 매출이 100만원도 안 되는 작은 사업이지만, 상품 기획부터 제작, 마케팅과 영업, 고객관리까지 학교에서 배웠던 이론을 현실에서 응용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디자인 담당 김현주씨는 "내가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이 다를 수 있다는 걸 배웠다"며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봐야 그들의 욕구를 알 수 있다는 교훈도 얻었다"고 했다.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도 이들의 '방학 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SK텔레콤 인사팀 양동기 매니저는 "창업 그 자체로도 적극성·창의성·도전정신을 평가하고 싶다"며 "학생들의 '방학 사업'은 매출 실적보다는 상품 개발과 홍보, 판매 기법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전략적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진효군과 정보연 양이 자신들이 디자인 한 칼라 디자인을 자랑하고있다. 이 신발들은 인터넷을 통해 중고등학생들에게 인기리에 판매되고있다. /정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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