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엔진을 갈아 끼워 세계의 역사를 바꾼 리더들이 서울에서 한 자리에 모인다. '제2회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에는 미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등 아·태(亞·太) 지역 국가들의 운명을 바꿔놓은 지도자들이 참가한다. 통합과 실용의 리더십을 새로운 문패로 내걸은 대한민국호에 이들은 어떤 조언을 던질 것인가?

'개혁과 안정'이란 모순되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경험은 고촉통(吳作棟·67) 전 싱가포르 총리(현 선임장관)가 갖고 있다. 고 전 총리는 리콴유(李光耀) 초대 총리가 일군 나라를 이어받은 뒤 14년간 안정된 리더십으로 싱가포르를 번영의 길로 이끌었다. 외환위기(1997년), 이슬람 무장조직의 테러 위협(2001년) 등 동아시아를 휩쓴 위기에 싱가포르가 전염되지 않은 데는 그의 단호하면서도 안정된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안정의 반대편 축에 개혁을 놓고, 싱가포르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시도를 했다.

"건실한 경제성장을 이끌려면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는 믿음으로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밀고 나갔고, 도박이 금지된 싱가포르에 '카지노' 설립 입법을 제안, 관광산업을 활성화시켜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담한 리더십을 보였다.

폴 키팅(Keating·64) 전 호주 총리는 규제를 풀어 경제를 비약시킨 성공신화를 갖고 있다. 키팅은 노동당 밥 호크(Hawke) 총리 정부 때 재무장관(1983~1991년)으로 일하며 관세인하, 세제개혁, 금융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을 통해 숨막히는 관료규제로 정체됐던 호주경제에 개혁의 바람을 일으켰다. 당시 정권의 지지기반인 노조를 설득해 임금인상률을 물가상승률 아래로 억제, 1982년까지 두 자릿수가 넘었던 인플레이션과 금리도 안정시켰다. 그는 호크 총리에 이어 집권한 뒤 28개 중앙 부처를 16개로 통합하고, 금리와 외환시장을 자유화했다. 이후 각국 정부는 키팅이 남긴 '개혁 백서'를 읽어보며 호주의 경험을 참고하고 있다.

'복지병'을 앓던 뉴질랜드에 '작은 정부' 혁명을 일으킨 지도자는 제니 시플리(Shipley·56) 전 총리다. 그는 사회복지부와 보건부 장관 시절, 복지예산을 대폭 줄이고 부처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고강도 개혁을 밀어 붙였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던 복지제도를 과감히 뜯어고쳐, '가장 미움받는 장관'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도덕성과 탁월한 국정수행능력을 함께 갖춘 리더십은 홍콩의 안손 찬(陳方安生·68) 전 정무사장(총리격)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1962년 말단 직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지 31년 만에 중국인 최초이자 여성 최초로 영국인 총독 다음 서열인 수석장관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품위있는 패션 감각으로 대중적 인기도 누렸다.

하지만 그는 "정부만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라면 모두 민간에 넘기겠다"는 신념으로 공무원 조직을 때려부수는 대담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의 별명은 '벨벳 장갑 속 강철 주먹'. 2001년 정무사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지난해 12월 홍콩 입법회(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21세기의 수퍼파워로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중국과 이를 둘러싼 한·미·일의 역학관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외교·안보 전문가로 꼽히는 헨리 키신저(Kissinger·85) 전 미 국무장관이 들려준다. 현직을 떠난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외교문제에 대한 탁월한 혜안으로 여전히 현역시절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는 장관으로 재직(1973~1977년)할 때엔 외교문제에 관한 한 닉슨과 함께 '공동 대통령'이란 소리를 들었다. 중국과의 수교 등 이념 대신 실용을 택한 키신저의 노선은 여러 나라 외교의 바이블이 돼왔다. 최근까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 전략에 조언을 하는 등 미국 정부의 세계 전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0년 만에 재탄생한 한국의 우파 정권과 북한의 관계, 북핵 문제와 통일, 급변하는 아시아 정세 등에 대해 키신저 박사가 내놓을 전망에 관심이 쏠린다.

과거의 역사에 발목이 잡혀있는 일본의 대(對) 동북아 관계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66) 일본 민주당 대표에게서 변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정치적 고향인 자민당에서 1993년까지 황태자로 승승장구한 이력답게 보수 본류에 속하지만, 헌법과 교육기본법 개정을 통한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이나 야스쿠니 신사 A급 전범 합사에 반대하는 실용적 사고방식을 갖췄다.

작년 7월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에 '역사적 대참패'를 안겨 보수강경파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불명예 퇴진시킨 것도 그의 합리적 리더십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