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국내 복귀한 핸드볼 스타 윤경신

조선일보
  • 고석태 기자
    입력 2008.01.12 00:05 | 수정 2008.01.12 16:29

    [왜 그는]
    獨 분데스리가에서 전설적 활약 "한국 핸드볼 발전에 보탬됐으면"

    한국 남자 핸드볼의 최고 스타 윤경신(35)이 국내 무대에 복귀한다. 남자 실업팀 두산은 3일 독일 굼머스바흐와 함부르크에서 12년 동안 활약했던 윤경신과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본지 1월 4일자 보도

    키 2m4. 한국에서 운동선수를 했다면 인기가 있는 농구나 배구를 택했을 법하다. 그러나 윤경신은 비인기 종목 핸드볼을 선택했고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됐다. 1996년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던 그가 지난 3일 국내 실업팀 두산과 3년 계약을 맺고 국내 복귀를 결정했다. 분데스리가 2007~2008 시즌을 마친 뒤인 오는 8월부터 한국에서 뛴다.

    윤경신은 '세계적인' 핸드볼 선수다. 95년 세계선수권대회 득점왕에 오르며 이름을 날렸고,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핸드볼의 본고장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비인기 종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내 핸드볼 무대에 머무르기는 그의 그릇이 너무 컸다.

    왼손잡이인 윤경신은 세계 핸드볼리그 중 가장 강하다는 분데스리가에서 12년간 뛰면서 득점왕만 7차례를 차지했다. 97년부터 2002년까지는 전무후무한 득점왕 6연패의 위업도 달성했다. 2790골은 분데스리가 통산 최다득점 신기록. 2001년 국제핸드볼연맹(IHF)이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에 뽑힌 건 당연한 결과였다. 야구의 박찬호, 축구의 박지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 업적(?)을 남겼다.

    35만 유로(약 4억2000만원)의 연봉을 받던 윤경신이 왜 한국으로 돌아올까? "그 정도면 많이 뛰었죠. 나이도 많고. 팀에서 계약 연장을 요청했지만 한국에 돌아오기로 결정했습니다. 굳이 이유를 대라면 한국 핸드볼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죠."

    윤경신은 자신처럼 해외 진출 기회를 잡지 못한 선후배들에게 무척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해외 진출의 혜택을 받은 만큼 이젠 한국 핸드볼에 조금이나마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제가 들어온다고 해서 한국 핸드볼이 갑자기 인기 종목이 되지는 않겠죠. 그래도 핸드볼에 대한 팬들의 관심을 조금이나마 더 끌어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당장 경기장에서 큰 활약을 펼쳐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케팅이나 홍보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내 권순균(34)씨에 대한 배려도 복귀를 결정하게 된 이유. 권 씨는 독일에 가기 전까지 패션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결혼과 함께 그만뒀다. "외국 생활에 굉장히 외로워했어요. 처음 소속팀이었던 굼머스바흐는 작은 시골 도시여서 한국 교민이 거의 없었거든요. 함부르크에서 좀 교민들을 사귀었지만 그래도 외롭죠. 그래서 언제나 아내에게 미안했어요."

    윤경신은 독일에서 유명 스포츠 스타다. 핸드볼에 대한 인기가 우리나라 농구쯤 된다. "유럽에선 핸드볼 인기가 정말 좋죠. 우리 팀 홈 경기장이 1만2000명 수용 규모인데 거의 매 경기 꽉꽉 찹니다. 물론 축구 인기엔 못 따라가지만 전체 스포츠 중 2, 3위는 되는 것 같아요. 경기가 끝나면 사인 요청이 쇄도하는데 한마디로 뛸 맛이 납니다." 독일에서 그의 별명은 '닉(Nick)'. '고개를 끄덕이다'는 뜻의 독일어 'nicken'에서 따온 말이다. 독일 진출 초기 당시 언어 소통 문제로 감독의 지시를 받으면 고개만 끄덕였던 그에게 붙은 애칭이다.

    독일 분데스리가는 1부 리그 18개 팀, 2부 리그 36개 팀 등 5부 리그까지 3000여개의 팀이 있을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윤경신의 소속팀 함부르크는 2006~2007 시즌 준우승 팀. 작년 5월에 끝난 유럽컵에서 윤경신은 팀을 정상에 올려놓으면서 최우수선수상과 득점상을 거머쥐었다. 이번 시즌엔 19경기를 마친 전반기 현재 팀의 랭킹은 3위. 그는 "후반기엔 16게임이 남았는데 1위와 승점 1점 차에 불과해 우승도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고려고와 경희대를 나온 윤경신은 큰 키에 어울리게 농구에도 일가견이 있다. "대학시절 농구 동아리에서 활약하며 진짜 경희대 농구팀과 겨뤄서 이긴 적도 있다"는 게 그의 자랑. 덩크슛은 손을 다칠까봐 삼간다고 했다. 결혼은 9년 전에 했지만 '자식 농사'는 늦었다. 아들 재준이가 이제 33개월이다.

    한국에선 학업도 병행한다. 모교인 경희대 대학원에서 스포츠마케팅을 공부해 박사학위까지 도전할 계획이다. 원래 독일 진출 초기에 공부를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첫 소속팀 굼머스바흐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불발됐다.

    휴식기를 맞아 새해 첫날 귀국했던 윤경신은 13일 독일로 돌아간다. 문제는 베이징올림픽 아시아 예선전 재경기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것. 작년 9월 일본에서 열렸던 아시아 예선전에도 출전했던 윤경신은 "쿠웨이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겠다"고 별렀지만 쿠웨이트가 장악하고 있는 아시아핸드볼연맹(AHF)의 반발로 재경기 성사가 불투명하다.

    윤경신은 "1월 말까지는 휴식 기간이라 출전이 가능한데 만약 대회가 2월로 연기되면 뛰지 못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1월까지는 구단의 허락을 받았지만, 후반기 첫 경기가 2월 2일이라 대표팀 합류가 어렵다는 것. 한국 대표팀으로선 적지 않은 전력 손실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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