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일본에서 한학자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가 지은 '대한화(大漢和)사전' 1권이 나왔을 때 큰 화제가 됐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한자와 어휘의 풀이·출전·용례를 수록한 방대한 사전을 개인이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가 1960년 한자 4만9000자와 어휘 40만개를 담은 13권의 사전을 완간하자 일본 정부와 중국 정부는 각각 문화훈장과 학술포장을 줬다.

▶'대한화사전' 편찬 작업 중이던 1945년 도쿄대공습 때 이 사전용으로 특별 제작한 활자들이 재가 됐다. 그래도 좌절되지 않은 것은 학자와 출판인의 집념 덕분이었다. 모로하시는 눈을 너무 혹사해 오른쪽 눈이 멀었고 왼쪽 눈도 확대경을 써야 겨우 글자를 알아볼 정도였다. 그에게 사전 출판을 제의했던 대수관서점 스즈키 잇페이(鈴木一平)는 편찬에 사운을 걸었다. 작업이 예상보다 커지자 아들들의 학업을 중단시키고 이 일에 투입했다.

▶'대한화사전'은 한자문화권 종주국을 자부하던 중국인에게 큰 충격을 줬다. 먼저 대만이 학술원 주관으로 사전 편찬에 들어가 1962년 5만 한자와 40만 어휘를 수록한 '중문(中文)대사전' 10권을 내놓았다. 중국은 1975년부터 6개 성(省)·시(市)의 학자 420명을 동원하는 인해전술로 5만6000 한자, 37만 어휘를 담은 '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13권)을 1994년 출간했다.

▶한국에서도 단국대 동양학연구소가 1978년 '한한(漢韓)대사전' 편찬을 시작했다. 원로 국어학자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이 초대 소장으로 지휘한 이래 21년이 흐른 1999년에야 1권을 냈고 지난해까지 12권이 나왔다. 그리고 30년 만인 올해 상반기 3권을 더 내 마침내 15권으로 완간된다는 소식이다. 이 사전에는 6만여 한자와 50만여 어휘가 실린다. 세계 최대 한자사전이 우리 손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사전 편찬은 한 나라의 문화역량을 보여 주는 잣대다. 그 뒤에는 사전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 있다. '옥스퍼드영어사전(OED)'엔 36년을 쏟아 넣은 초대 편집장 제임스 머리를 비롯해 여러 편찬자의 땀이 서려 있다. 우리 '한한대사전'에도 몇 십 년 이 일에만 매달린 전문가들의 노고가 배 있다. 다만 예산과 인력 때문에 마지막에 다소 서둘러 편찬된 것이 아쉽다. 사전은 끊임없이 개정하고 증보하기 마련이다. '한한대사전' 또한 이제 끝이 아니라 다시 출발점에 선 것이다.